™ My Story/거북이의 자기경영

시행착오를 경영하라!

카잔 2010. 8. 21. 06:13

이스탄불에서 이즈니크로의 1박 2일 여정을 계획하면서, 나는 짐을 따로 꾸렸다.
대부분의 짐은 캐리어에 남기고, 이틀 동안 필요한 것들만 챙겨 보조 가방에 담았다.
마지막까지 가져 갈까, 말까를 두고 고민한 것은 컵라면과 햇반이었다.
일행 중 막내가 '이거 오빠 먹을래?' 하면서 살갑게 남겨 주고 간 게다.
결국 이즈니크 행 가방을 가볍게 하자는 쪽으로 결정했다.

외국에 오래 머물 때에도 한국 음식이 그리워지는 일이 별로 없는 나다.
그 나라에 가면 그 나라에서 먹을 수 있는 음식을 먹어야지 뭣 하러 한국 음식을 싸 간담?
이것이 내 생각이다. 간혹, 생각은 이렇게 하지만 몸이 안 따라 주어
한국 음식을 찾는 이들이 있는데, 나의 몸은 생각을 잘도 따라 준다.
며칠 남지 않은 여행 일정, 터키 음식 먹기도 바쁜데, 무슨 컵라면이냐!

그 때는 몰랐다. 이즈니크에 도착한지 채 한 시간도 못 되어,
이스타불에 두고 온 컵라면과 햇반을 그리워하게 될 줄을.
이즈니크의 중심부에 와서 식당을 찾으려는데 한 남자가 내게 다가왔다.
도와 줄까요? (터키인들은 이리도 친절한 오지랖 맨들이 많다.)
나는 식당을 찾는다고 했고, 그는 라마단 기간이라 식당이 모두 문 닫았을 거라 말했다.
 
그와 몇 마디도 나누고, 내가 찾는 식당의 위치도 알아 두기도 했다.
여행 책자에 소개된 식당이었는데, 찾아가 보았더니 문을 닫았다.
두 번째 식당도 마찬가지! 모두들 영업을 하지 않았다.
이젠 식당이란 곳을 모두 들어갔는데, 하나같이 문을 닫았다.
식사 시간이 훌쩍 지났고, 늘 그렇듯이 아침은 빵으로 떼웠기에 몹시 배가 고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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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이 음식점도 문을 닫는 라마단


이즈니크 호수로 걸어가기로 했다. 숙소도 정하고
호수 근처에는 관광객 상대의 식당이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배고픔을 참고 걸었다. 숙소는 정했지만, 모든 식당은 문을 닫았다.
결국, 슈퍼에서 요구르트와 오렌즈 주스 등으로 배를 채웠다.
빵집이 있어 들어갔더니 온통 '피데'라고 불리는 빵 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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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집에 진열되어 있는 피데


이즈니크로 출발한 아침, 점심, 저녁 그리고 이튿날 오전까지
나는 빵과 주스로 배를 채워야 했다. 컵라면과 햇반이 어찌도 그립던지!
이런 일화의 교훈은 무엇인가? 긴가 민가 하면 챙겨 가야 한다?
아니면, 만약의 사태를 대비하여 항상 준비를 철저히 해야 한다?
여행지의 문화를 파악하여 그에 대한 준비가 중요하다?

글을 쓰는 이들은 일화를 통해 교훈을 찾곤 하는데,
나는 그런 과정에서 지나치게 일반화하려는 시도에 거부감이 있다.
앞서 말한 교훈은 그것 자체로는 옳은 이야기지만,
상황과 시기, 그리고 장소에 따라 불필요한 조언이 될 수도 있다.
일반론으로 인생을 잘 살 수 있을 거란 기대를 버려야 한다.

인생은 절대로 단순하지 않고, 상황은 항상 변하기 때문이다.
살면서 생기는 여러 가지 문제에 대하여 정확한 처방을 내리기란 힘든 일이다.
이전의 문제를 능숙히 다를 만큼 성장하고 나면 곧 새로운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
인생의 시기마다 특수한 문제가 발생한다. 그 문제는 이전에 만나지 못한 것들이다.
삶을 잘 영위하고자 하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시행착오의 정신이다.

시행착오의 정신이란, 자기 삶의 관조자가 되지 않는 것이다.
자기 삶에 뛰어들어 시험하고, 결과를 관찰하며 스스로를 성장시키는 정신이다.
실패가 두렵기도 하지만, 실패 없이는 성장도 없음을 믿고 뛰어드는 것이다.
이런 과정을 실행한다면, 그것은 시행착오의 '수행'이 아니라, 시행착오의 '경영'이라 할 수 있다.
드러커는 경영이 학문으로 정립되기를 원하지 않았다. 경영은 살아 숨쉬는 분야이기 때문이다.

인생도 마찬가지다. 인생도 살아 숨쉰다.
어제의 교훈, 특수한 상황에서의 조언으로 전체 인생을 살 순 없다.
시행착오를 경영하라! 나는 그 어떤 조언보다 시행착오를 경영하는 태도가
우리의 삶을 훌륭하게 만들어 가리라고 믿는다.

라마단을 예상치 못한 것은 아쉬운 일이다.
그러나, '다음엔 꼭 한국 음식을 준비해야지' 라는 교훈을
내게 주지시키지 않음은 참 잘한 일이다.

인생을 통제하려 하지 말자. 로드맵을 세우느라 시간 낭비하지 말자.
다만, 어떠한 상황에서든 인생길을 헤쳐나갈 수 있는 무기 하나를 갖자.
(남을 헤치기 위함이 아니라, 자신을 지키기 위한) 그 무기가 바로 '시행착오의 경영'이다. 

통제 불가능한 인생을 해석하여 이론화하려는 시도를 멈추자.
강물처럼 흘러가는 인생에 한 조각의 배가 되어 물결따라 유영하자.
'시행착오의 정신'이라 불리는 돛대가 비바람에도 당신을 지켜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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