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y Story/아름다운 명랑인생

나의 음악감상실이 좋은 3가지 이유

카잔 2010. 9. 1. 23:00

나의 음악감상실은 이렇게 멋지지는 않지만, 충분히 좋은 곳이다.



나의 음악감상실이 좋은 3가지 이유

밤 10시 남짓한 시각, 귀가하는 길.
지하철 역에서 노래 한 곡을 흥얼거리기 시작했다.
아마도 내겐 영원한 음악적 진원지가 될 8~90년대 발라드들.
그 중 유난히 입에 착 달라 붙고, 마음을 감성으로 적시는 노래가 있었으니.

"보고 싶었던거야 단지 그 마음뿐이었어
헤어졌던 그 이유와 상처는 모두 잊은 채 위~~
누군가를 다시 만난다는게 생각처럼 쉽진 안았어
니가 있던 그 자리엔 누구도 들어올수가 없었던거야
수없이 부서졌던 내마음 기도가 아마도 너를 울렸는가봐
힘겨웠던 지난날을 딛고 서서 다시 한번 시작해 보라고~ 사랑해!"

열창할 때 목에 핏줄이 붉어지는 모습이 그리도 멋있었던 김정민의 <애인>이다.
'오늘은 집에 가서 기타를 치며 이 노래를 불러야지.'

집에 도착하여 샤워를 끝내자마자 기타부터 잡았다.
노래책을 뒤적였는데 <애인>은 없었다.
유재하의 <사랑하기 때문에>와 김현식의 노래 몇 곡을 불렀다.
하지만, 여전히 <애인>의 가사가 나의 마음을 두드렸고,
나를 과거의 추억 속으로, 후회스러운 장면 속으로 데려다 놓곤 했다.
<애인>의 가사 몇 소절은 그대로 나의 마음이었다. 인터넷을 뒤적여 <애인>을 찾았다.

방 안을 음악 감상 모드로 바꾸었다. 특별한 것은 없다.
불을 끄고 침대 위에 나를 벌렁 던져 놓으면 된다.
마음 준비는 필요 없다. 자연스레 편안해지고, 점점 감상적이 된다.
볼륨을 좀 높여도 괜찮다. 내 집이고, 이 집에는 나 외에는 아무도 없으니. 
지금부터 이 곳은 집이 아니다. 나만의 음악감상실이다.

'아! 좋다.'
이것이 행복인지는 모르겠지만, 무지 좋은 순간임에는 분명하다.

왜 좋으냐고 물으면, 쉬이 대답할 수 있다.
1) 내가 꿈꾸었던 삶의 한 장면이고, 2) 자유를 누리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하나 더, 3) 나는 음악이 좋기 때문이다.

1) 집에는 언제든지 내가 몸을 누일 수 있는 침대 하나가 있다.
하루 일정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나는,
오늘 듣고 싶었던 음악을 방 안 가득히 채워 넣는다.
Jazz 곡이면 좋고, 유난히 듣고 싶은 발라드여도 괜찮다.
곡이 시작되면 나는 얼른 불을 끄고, 발랑 드러눕는다.
음악을 한껏 온 몸으로 받아들이기에는 큰 대(大)자로 누웠다가
몇 분 후에 팔배개를 만들어 일자로 눕는 것이 좋다. 나에게는.
이것이 오랫동안 꿈꾸었던 일상의 한 장면이었다.
듣고 싶은 곡은 때마다 바뀌지만, 이 꿈은 늘 똑같다.
매일 이러지는 않지만, 자주 이런다. 할 때마다 기분이 좋다.

2) 어제 연구원 후배분(이지만 나이로는 형)과 함께 저녁 식사를 들었다.
이번 그리스/ 터키 여행을 함께 다녀온 사이다. (이렇게 말하면 서운해 하실 테지)
여행을 함께 다녀 온 사이 그 이상이다. 의형제를 맺기로 했으니. (허허, 이건 또 뭔지... ^^)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나에게 적합한 배우자가 어떤 이냐, 라는 주제가 되었다.
"너는 이번 여행에서도 내가 느낀 거지만, '자유'라는 가치가 참 중요한 것 같애.
그것을 존중하고.."
"이해해 주고"
"그래 이해해 주고, 다르다는 것을 인정해 주는 여자를 만나는 게 중요할 거야."

그래, 나는 자유가 좋다. 자유의 뽕맛을 알아 그런지, 자유롭게 살지 못해 그런지
아니면 남들이 좋다 하고 수많은 피가 자유를 얻기 위해 희생된 것을 지식으로 배워 그런지
그것은 잘 모르겠다. 그저, 나는 홀로 자유롭게 천천히 사는 것이 좋다.

"행복을 재는 저울이 있다면 자유보다 무거운 것은 없다."


어디서 주워들은 말인지, 출처가 어디인지도 알지만 그냥 가련다.
그걸 찾아볼 시간이 없다. 지금까지는 시간을 만들어서 찾곤 했다.
인용할 책이 집에 있는 경우에는 확인하기 위해 임시저장을 해 두고
귀가하여 찾는다. 이러면서 글 등록이 늦어지고 때로는 수일이 걸리기도 한다.
그래봐야 고작 표현을 바꾸는 것 정도다. 기억력이 좋은가 보다.
열에 아홉은, 표현이 약간 다를 뿐이지 의미를 왜곡하는 일은 없으니.
그럴 줄 알면서도, 열 중 하나의 경우를 대비해서 벌인 일들이다.
이제는 조금 다르게 살아보자는 거다. 조금은 느슨하게, 조금은 덜 까다롭게.
당분간은 나를 위해서만 살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럴 순 없으니
삶의 어떤 한 영역 만으로도 다른 방식의 삶을 시도해 보는 중이다.

나는 스스로 생각했던 것보다 홀로 지내는 것을 잘 즐겼다.
외향적인 사람들은 홀로 지내지 못한다는 것은 아니다.
그들에게도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하지하지만 그것은 보완적인 차원에서 필요한 것이고
외향적인 사람들이 에너지를 얻는 근원은 누군가와 '함께' 어울리는 시간이다.
항상 함께만 있다 보니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하다 생각하는 것과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지 않으면 기운과 사라지고 의기소침해 지는 것은 다르다.

40여일 홀로 여행한 적이 있었다. 그 때에도 나는 한국에 돌아오기 싫었다.
혼자만의 여행은 달콤했고, 나는 함께함 없이도 꽤 오래 버틸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것을 즐기었다고 표현하지 않은 것은 이 글은 읽은 누군가가
'아! 보보는 혼자만의 시간을 좋아하는구나'라고 단정할까 봐 겁이 나서다.(^^)
홀로 여행하는 것, 혼자 있음이 좋은 것은 그것에 자유가 깃들기 때문이다.
홀로 있을 때, 더욱 무너지는 사람들이 있는데, 다행히도 나는 그렇지 않다.
이것이 그나마 자기경영 강사로 살갈 수 있는 까닭인가 보다, 하며 감사해하고 있다.

혼자 있지 않으면 자유롭지 않으냐고 묻는다면, "물론이지"라고 대답해야겠다.
누군가와 함께 있으면 자유의 문제는 그야말로 상황윤리의 문제가 된다.
때(Time)와 장소(Place), 그리고 상황(Occation)에 따라 고려해야 할 요소가 많아진다.
무엇 때문인지, 나는 주변 사람들의 마음 변화를 잘 감지하는 편이다.
좋게 말하면, 다른 이의 호불호에 민감하다여 배려를 잘 한다는 것이다.
내 생각에는 배려의 방향이 타인이 아니라 자신을 향하는 사람은
민감이 아닌 예민으로 빠지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

카페에서 작업하다가 노트북 콘센트를 꽂을 때, 옆테이블을 확인한다.
옆테이블에 콘센트가 있다면 상관없지만, 만약 없다면
나는 옆테이블에 가까운 콘센트를 남겨 두고 보다 나쪽에 가까운 곳에 꽂는다.
만사가 이렇다. 착하다고 생각하면 나야 고맙지만 그런 문제는 아닌 듯 하다.
(생각한 바가 있지만 다른 주제를 다룰 때 쓰는 게 나을 것 같다.)

여기까지는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사는 모습이다.
누가 시켜서 그런 것도 아니고, 자연스럽게 그렇게 된다.
글로 쓰니까 몇 줄 씩이나 되지만, 이렇게 사는 데에는 1~2초가 더 소요될 뿐이다.
늘 함께해 왔던 생각이기에, 별도로 생각할 필요 없고,
어찌 되었든 노트북 전원은 꽂아야 할 테니까.

문제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이다.
다른 이와 함께 있을 때, 남들을 배려하느라 혹은
다른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바라보는지 그 시선을 의식하느라
내가 원하는 삶을 살아가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정확히 말하면 시선을 의식하는 편은 아니지만
배려하느라 나를 위한 시간을 지켜내지 못하는 경우는 많다.
하지만, 그것 때문에 피해의식은 없다. 수년 동안 이렇게 살아도 우울증이나
내가 왜 이렇게 살았나, 하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사람은 누구나 서로 돕고 도우며 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미 수많은 도움을 받아 왔음을 절절히 느끼고 있기 때문인지는 모르겠다.

다른 사람과 함께 있을 때의 문제라 함은,
자유 외에도 추구해야 할 가치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사랑이 대표적이다. 자유, 사랑...
참 추상적인 단어이니 사례를 쓰지 않을 수 없다.
글이 길어지더라도 말이다.

이 즈음에서 원래 글의 흐름으로 돌아가자.
나는 지금 '불끄고 음악 듣는 시간' 의 유익을 말하던 중이었다.
첫째 이유로 꿈의 실현을 들었고, 둘째로 자유롭기 때문이라 했다.
그렇다. 음악을 듣는 시각은 하루 일과를 마치고 난 후다.
대체로 10시 30분~11시경이 된 이 시각에는 휴대폰이 조용한 시간이다.
홀로 있을 때 자신을 컨트롤할 수 있다면 완벽한 자유 시간이다.
그 시간을 아무 생각없이 TV 시청에 보내거나
인터넷 포털 카페의 유혹적인 기사에 끌려 시간을 보내버리면 흘러가버리는 시간이다.
다행스럽게도 나는 그렇지 않다고 했다.
음악을 듣는 순간, 나는 하루를 잘 살았다는 느낌이 찾아들고
지금 이 순간만큼은 완벽하게 컨트롤한다는 생각이 들기에 좋은 것이다.

사족을 하나 달면,
삶의 작은 영역, 짧은 순간만이라도 스스로를 컨트롤하거나 상황을 이끌어간다면
조금씩 조금씩 자신감이 생겨날 것이고 서서히 삶이 변화되기 시작할 것이다.

이런 말을 붙이고야 말다니, 자기계발 강사라는 직업병인지도 모르겠다.

자유는 좋은 것이지만, 지혜롭게 살고 싶다면
스스로 자유를 희생할 줄 알아야 한다. 또 다른 소중한 가치가 많기 때문이다.
나는 자유로움도 좋지만, 함께 어울릴 때 경험하는 사람 사이의 '관계'도 좋다.
결혼을 하게 되면 나의 자유는 많은 부분 사라질 것이다. 아마도 처음엔 힘들지도 모른다.
그 때가 되어 얼마나 잘 헤쳐나갈지는 모르겠지만, 각오는 하고 있다.
친구들이 자기 아이랑 떨어지기 싫어 출근하기 싫다는 얘기를 하면, 부럽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힘겨움이 있음을 안다. 아이가 울어 밤새 잠을 뒤척이기도 한다.
그러다가 아내와 다투기도 하고, 아이를 혼자만 봐야 한다며 아내가 우울해졌다는 친구도 있다.
어떤 친구는 아내와 번갈아가며 아이를 재워가며 겨우 겨우 지내는 친구도 있다.
이 모든 것은 자유 대신 사랑을 선택한 이들이 겪는 삶의 모습이다.
내가 사랑을 추구하겠다는 것은 사랑의 달콤함 뿐만이 아니라,
이렇듯 사랑이 가져온 삶의 모든 것들을 위해 기꺼이 자유를 희생할 각오가 되어 있다는 의미다.
물론, 상황이 닥쳐봐야 알겠지만 말이다. 그 때, 나의 태도가 돌변한다면
부디 나의 아내가 이 글을 찾아 읽지 않기를 바란다.

다른 사람과 함께 있을 때, 자유롭게 살기 힘든 까닭이 바로 이런 점이다.
자유 외에도 추구할 가치가 생겨나기 때문이다.
물론, 자유롭게 살기 힘든 다른 원인도 있다.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는 것 말이다.
자기 기준보다 세상이 기준을 따르느라 자기 삶을 살지 못하는 것도 포함되어야 하리라.

3) 나는 음악이 좋다. 꿈의 실현이기에, 자유롭기에 라는 이유는 나에게서 오는 원인이다.
셋째는 순수하게 음악이 좋기에 나는 혼자만의 음악 감상 시간을 즐기는 게다.
꼬마였을 때부터 늘 음악을 들었고, 카셋트 테이프를 수집하였다.
노래를 잘 부르지 못해, 내가 음악에는 소질이 없다고 생각하였다.
하지만 소질과 관심은 종종 다르기도 한 것이었다.
나는 항상 음악과 함께 작업하고 종종 음악과 함께 잠든다.

블로그 포스팅 치고는 긴 글이었다. 읽어 주신 분들에게 고마움이 든다.
뭐 하나라도 드리고 싶은데 별 다른 게 없다. 다음과 같은 제안으로 맺는다.

하루 중 5분이라도 완벽한 자유 시간,
소박한 바람이라도 이뤄가는 시간을 가져 보세요.
좋으실 거세요. 아주 좋으실 거세요.
자유는 행복의 다른 이름이고, 꿈의 실현은 짜릿한 것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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