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Book Story/즐거운 지식경영

진정한 독서가를 향하여

카잔 2010. 10. 25. 10:16

마이클 더다의 책 『북 by 북』을 읽으며 자주 떠오른 책이 다치바나 다카시의 『나는 이런 책을 읽어왔다』였습니다. 다치바나 다카시 덕분에 저의 2000년대 독서 생활이 풍성해진 것은 분명합니다. 세계관과 연구 분야가 달라 저는 다치바나 보다는 오히려 드러커가 좋다는 말을 제 책에서 한 적이 있지만, 지금까지의 독서 생활 면에서는 가장 많은 영향을 받은 사람이 다치바나 다카시입니다. 독학의 비결, 인터뷰어의 자세 등에서 특히 감동적인 배움을 얻었고, 독서가로서 쫓아갈 하나의 푯대가 되어 주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꼭 10년 전에, 그 책을 읽고 쓴 리뷰가 있어서 아래에 소개합니다. 문장의 어미와 형용사 정도를 고쳤을 뿐, 글을 새로 고쳐 쓰지는 않았습니다.

출판칼럼니스트 표정훈 씨가 『나는 이런 책을 읽어왔다』를 읽은 분들의 반응을 잘
정리한 바 있어, 그 내용을 옮겨본다.
"읽어 본 분들의 반응은 대략 두 가지였다. 우선 다치바나가 대단한 독서광이고 특유의 독서 노하우를 지닌 범상치 않은 사람임은 분명하지만, 그의 독서술, 독서론이 일반인들에게는 부적합하다는 반응이 있었다. 책을 읽고 책을 집필하여 먹고사는 저술가나 저널리스트에게는 적합할지 모르지만, 대다수 일반인들에게는 먼 나라 이야기가 아니냐는 것이다. 그리고 이와는 달리, 문자향, 서권기의 세계를 주유하며 인류 선단의 지식정보를 갈무리하는 다치바나의 모습에서 감동마저 느껴지더라는 반응이 있었다. 그런 반응을 보인 분들 가운데는 자신의 독서 생활을 반성했다는 분도 있었고, 자기 방 서재의 책들이 달라 보이더라는 분도 있었으며, 책 세상에 대한 동경 내지는 그리움이 고개를 들더라는 분도 있었다."

나는 이 두 가지 반응 중, 단연 후자에 속하는 부류다. 『베스트셀러 죽이기』독자리뷰에 잠깐 언급한 것처럼, 나는 책을 무지 좋아한다. 『베스트셀러 죽이기』서평을 쓴 이후, 교보문고에서 또 4권의 책을 샀다. 불과 하루만의 일이다. 다치바나 씨와 비교하기에는 열정의 정도 차이는 있지만, 열정의 순수함에서는 차이가 없다. 지금 내 방엔 다치바나 씨가 말하는 것처럼 각 분야별로 책이 50~60cm씩 쌓여 있다. 세 개의 책장에 책을 다 꽂고도 흘러 넘치는 책들을 둘 때가 없어서 이 곳, 저 곳에 쌓아 둔 것이다. 리더십, 경영, 금융, 사상, 과학, 철학, 사회학, 역사, 종교, 재즈, 문학, 영어 등 여러 분야의 책들이다. 아직 각론을 깊이 파고 든 흔적은 없지만, 꽤 전방위적인 독서편력이다.

50cm이상 되는 책기둥(?)들만 10개가 넘는다. 작은 책장에 기대어 있는 책기둥 하나는 1미터가 넘는다. 경영서 중에 읽고 싶은 것들만 뽑아 놓은 것들이다. 이러한 기둥들이 책상 위의 공간까지 차지해버려, 나는 책을 읽거나, 공부할 땐 앉은뱅이 책상에 앉아서 해야만 한다. 게다가 자료를 모은다는 명목으로 신문더미까지 있으니, 그야말로 작은 방은 온통 책 투성이다.

이러다보니, 당연 나는 다치바나 씨의 얘기가 마치 내 얘기인냥 재미있고, 감동적으로 들려 왔다. 이제 갓 인생을 배우려고 첫 발걸음을 뗀 젊은이에게 고명(高明)한 종교가나 학자의 말씀은 가슴에 팍팍(!) 와 닿을 수 밖에 없다. 이처럼 내가 가려는 길 최전방에 있는 다치바나의 얘기들은 모두 나에게로 와서 내 안으로 들어왔다. 다치바나 씨의 독서술, 독서론, 서재론은 내게 '하나의' 모델이 되었다. 표정훈 씨 말대로 '단 하나의' 모델은 아니지만, 분명 아주 고무적인 모델임에는 틀림없다.

특히, 그가 인터뷰를 할 때의 준비하는 모습과 고전에 대한 그의 생각, 그리고 독학하는 방법과 책을 선택하는 요령은 당장 내게 꼭 필요한 말들이었다.(이 부분들이 특히 좋았다. 궁금하시면 읽어 보시라. p.10~20, 51~61, 64~81)  한 분야를 정복하기 위해 거금을 챙겨 서점에 가서 몇 시간을 투자해 고른 책을 싸들고 집에 돌아가는 발걸음은 정말 가볍다. 양팔에 무거운 책을 든 발걸음이 정말 가볍다. 마음이 하늘을 날고 있기 때문이다. 나도 언젠가는 지적인 사람이 되겠지, 라는 비전 날개를 달고서 미래를 날아다니는 것이다.

많은 독서가들에게 하나의 이정표가 되어 준 다치바나 씨에게 진한 고마움이 느껴진다. 다치바나는 책을 모으고, 아끼는 것에서 그치지 않는다(사실 그는 책을 애써 소중히 다룰 필요는 없다고 한다). 그는 실제로 속독법과 발췌독을 통해 그 책들을 읽어나감으로 실전(인터뷰, 글쓰기 등)에서 그 책들을 이용한다. 이런 점에서 표정훈 씨의 조언 "책을 읽는 리더(reader)에서 더 나아가 책을 부릴 줄 아는 유저(user)가 될 필요가 있다"라는 말이 적절한 표현 같다. 나 또한 '내 방에 책이 많다'로 만족하는 사람이 아니라, '나는 이런 책을 읽어 왔다'라고 사람들에게 도전을 주는 동시에, 내 가슴에는 읽은 책이 있다"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고 싶다. 그리고는 다시 읽어야 할 좋은 책들을 묵묵히 읽어나가는 성실한 독서가이고 싶다.

책을 사랑하는 이들, 독서를 (취미로서가 아니라, 전문가가 되려는 수단으로) 즐기는 이들에게 이 책은 최고의 선물이 될 것이다. 독서가들에게 이 책, 『나는 이런 책을 읽어왔다』를 권한다.

[인상깊은구절]
하나의 학문 세계로 들어갈 때, 우선 무엇보다도 필요한 것은 그 세계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밑그림을 하루라도 빨리 머리 속에 그리는 일이다. 그 학문 분야에서는 무엇을, 어떻게 문제로 인식하고 있는가? 그 문제에 대한 접근 방법-방법론에서는 어떤 것이 있는가? 그 학문으로 무엇을 알 수 있고, 무엇을 알 수 없는가? 이 '무엇을', '어떻게'라는 물음은 어떤 학문 세계로 접근해 들어가더라도 가장 주의해야 할 점이다.

2001. 10.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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