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Book Story/즐거운 지식경영

좋아하는 작가가 생겼다

카잔 2010. 11. 9. 15:06


두 달 전인가, 나는 한 소설가에 관하여 신나게 떠들어 댔다. 김영하가 얼마나 훌륭한 글을 썼는지에 대해서 나는, 『퀴즈쇼』의 어떤 대목을 그대로 읽기도 하고, 나의 견해를 덧붙이기도 하며 한참을 이야기했다. 지루했을 법한 긴 이야기를 '갑자기' 들어야 했던 이는 친하게 지내는 동네 누나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기는 하지만, 책에 대해서 이리 침 튀기며 이야기한 적은 처음이었다. 그만큼 『퀴즈쇼』라는 소설이 내게 안겨다 준 감동은 컸다. 누나가 20대에 대해 알고 싶어하긴 했지만, 그래도 나의 김영하 자랑은 분명 누나에겐 뜬금없음이었고, 갑작스러운 것이었다.

『퀴즈쇼』 이후, 나는 김영하의 단편집 두 권을 더 읽었다. 『오빠가 돌아왔다』(이하 오빠)와 『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이하 엘리베이터). 오빠를 읽으며, 나는 김영하의 저력이 무엇인지 서서히 깨달아갔다. 김영하는 세상과 사람을 세밀하게 관찰하는 듯 했다. 관찰 결과에 대해 도덕적 판단을 내리거나, 세상과 사람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명제나 이론을 정리하지도 않았다. 그저 정확하게 이야기로 옮겨 놓는데 천부적인 재능을 보이는 듯 했다. 그랬기에 그의 책 속에는 진짜 세상살이의 모습이 그대로 담겼다.

특히, 김영하는 인생에서 일어나는 일들의 원인과 결과를 모두 파악하기란 불가능하다고 믿는 듯 했다. 오빠는 인생의 비합리적이고 모순적인 상황을 탁월하게 짚어주는 책이다. 나같은 이는 인생살이의 단면이 이론화되고 도식화되는 순간에 벌어지는 삶으로부터의 괴리감을 싫어한다. 삶과 멀어진 이론과 도식은 더 이상 '진짜'가 아니고, '진짜'를 설명하지도 못한다. 물론, 이론과 도식의 유익을 모르는 바 아니다. 이해를 돕기도 하고, 더 깊은 논의를 위한 구분하기는 필요하다. 이론과 구분의 유익이나 필요성을 모르는 바 아니나, 많은 이론가들은 자기 이론이 삶과 괴리되는 시작한 것도 모른 채 필요 이상의 지점까지 나아간다. 나는 그것이 싫은 것이다.

김영하에게서 맛보는 쾌감은 그의 소설이 삶과 괴리되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오빠와 엘리베이터를 읽으면서, 줄곧 삶에 대해 한 수 배우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우리의 삶, 다시 말해 희노애락애오욕의 모든 삶의 모습들이 김영하의 책에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앞서도 말했지만, 어떤 사건을 듣기 좋은 명제로 갈무리하거나, 인생의 지혜를 몇 단계의 지침으로 조언하지 않는 점은 정말 대단하게 느껴졌다. 도덕적 판단이나 조언 없이도 그의 단편들은, 이를 테면 「이사」는 삶을 돌아보게 하는 힘이 있었고, 「크리스마스 캐럴」은 혼외 정사를 저지른 이들이 뜨끔하거나 반성하도록 이끄는 힘이 있었다. 오빠를 읽으며 나는 점점 김영하의 저력에 빠져 들었다.

엘리베이터, 그거 되게 답답하게 읽었어. 이 책을 나보다 먼저 읽은 누나가 던진 말이었다. 그래요? 응, 너도 한 번 읽어 봐. 근데 주인공이 널 닮았더라. 나는 또 한 번, 그래요? 라고 말할 수 밖에 없었다. 그 땐 책을 읽기 전이었으니까. 그리고 오늘 엘리베이터를 읽었다. 단행본에 함께 실린 다른 단편들도 읽었다. 이제 나는 김영하의 저력에 빠져 든 정도가 아니라, 그를 좋아하게 되었다. 김영하입니다. 누군가가 내게, 좋아하는 작가가 누구세요? 라고 물어 오면 내놓을 답변이다. 나도 (누군가의 추천이나 평론가들의 힘을 빌지 않고) 내 가슴과 머리로 좋아하는 작가를 갖게 된 것이다.  

깔깔거리며 웃기도 하고, 무릎을 치며 감탄하기도 하고, 사건이 어떻게 전개될지 가슴 졸이며 책장을 넘기기도 하며 좋아하게 된 작가, 김영하! 소설 속에서 보여 준 그의 인간 이해에 전율하는 횟수가 많아지면서 그를 더욱 좋아하게 되었다. 김영하의 소설들을 재료 삼아 삶에 대해 사색하고 싶어졌다. 어제는 한 후배와 다른 이야기를 하다가 김영하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지난 번 누나에게는 김영하가 얼마나 좋은 책을 썼느냐 정도로 이야기했다면, 이번에는 김영하의 인생관이 얼마나 깊은지, 그가 얼마나 좋은 소설가인지에 대해 이야기한 셈이었다. 그것 또한 갑자기였다. 어느 새 나는, 책 한 권을 잘 쓴 저자가 아니라, 훌륭한 통찰력을 지는 소설가요 작가로서 김영하를 존경하고 있는 게다.

그 사람 블로그에 한 번 써 봐. 언젠가 누나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김영하 작가의 블로그에 가서 내가 당신을 참 많이 좋아한다, 라고 써 보라는 것이다. 에이 누나, 이제 전 겨우 책 3권 읽었는데요 뭘. 그걸 갖고 어떻게 좋아한다는 말을 써요? 아니지. 그 정도면 많이 좋아하는 거지. 내가 보니까 흠뻑 빠져 있구만 뭐. 그런가요? 하며 하하하 웃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좋아하는 것은 분명한 것 같다. 김연수가 대단하다길래, 그의 책을 읽었는데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김영하에게만큼 빠져들지는 못했다. (김연수와 같은 리스트는 몇 분 더 꼽을 수 있다.) 기억을 더듬어 보니, 오래 전 김영하의 『굴비낚시』도 즐겁게 읽었던 것 같다.

사실, 김영하가 얼마나 훌륭한지는 잘 모른다. 하지만, 내게 얼마나 큰 즐거움과 깊은 배움을 주고 있는지는 잘 안다. 바로 그 점이 참 좋다. 한 장, 한 장 책장을 넘겨갈 때마다 조금씩 매료되기 시작했고, 매료된 원인이 무엇인지 알게 되면서 더욱 그를 존중하게 되어 좋아하는 작가가 생겼다는 사실이, 난 참으로 좋다. 2009년 독일을 여행하며 읽은 『괴테와의 대화』, 그리고 괴테를 향한 열정이 떠오른다. 지난 해에 괴테를 만나 행복했다면, 올해는 쏠비치에서 김영하를 만나서 행복하다. 책을 통한 만남이 언젠가는 삶에서의 만남으로 이어졌으면 좋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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