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y Story/거북이의 자기경영

고통의 의미

카잔 2010. 11. 21. 22:22

[주간성찰] 고통의 의미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연속 5일 동안 예비군 훈련이 있었던 일주일이 지났다. 이제 11월 30일에 있을 8시간짜리 훈련만 받으면 연기했던 훈련을 모두 완수하게 된다. 생각하니, 유쾌해진다. 지난 금요일 귀가할 때에는 힘겨운(^^) 훈련 5일을 조퇴하지 않고 모두 받았다는 성취감으로 뿌듯할 줄 알았는데, 저녁 약속을 위해 허겁지겁 이동하느라 그 감격을 누리지 못해 아쉽다. 역시 여유가 없는 삶에는 못마땅한 나다.

일주일 동안 참 바빴다. 독서토론회, 와우모임, 공연 관람 등이 예정되어 있어서 예비군 훈련이 끝난 후 집에 도착하자 마자 쉬지 못하고 바로 이동해야 했다. 훈련장에서 집으로 오는 길은 빨리 움직여도 한 시간이 걸렸다. 집에 도착하여 재빨리 샤워하고 약속 장소로 이동하고, 일정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면 밤 11시. 자고 나면 다시 예비군 훈련~!

이렇게 일주일 보낸 후의 금요일 밤이 압권이었다. 공연을 보기로 한 홍대까지 이동했다. 공연 시각을 맞추기 위하여 서둘러 움직인 데다가 서서 이동하느라 조금 피곤했다. 그래서 앉아서 편안히 공연을 보며 쉬면 되겠다고 생각했는데, 아뿔싸~! 공연장에 들어서니 스탠딩 공연이었다. 하하하. 지금 생각하니 우습다. 2시간 30분 가까이 서서 공연을 보았다.

인디 가수들의 공연이었고, 생소한 힙합 음악이었다. 그건 좋았다. 의자가 없었던 것만 제외하면 즐거웠다. 특히, 게스트 김건모의 출연이 백미였다. 딱 2곡을 불렀는데, 두번째 노래로 <잘못된 만남>이 나올 때의 전율은 잊지 못할 것 같다. 280만 장을 팔아치운 기념비적인 김건모 3집의 노래를 라이브로 들었다~! 나 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가장 열광했던 순간이었다.

공연 후 사케를 마셨고, 나는 취했다. (술이 무지 약해졌다. 맥주 두 캔에도 취하는 요즘이다.) 택시를 타면 머리 아플 것 같아 근처 찜질방에서 자고, 바로 다음 날 강연이 있는 이대로 갔다. 홀로 찜질방에서 잠을 잔 것도 매우 드문 일이다. 내 기억으로는 처음인 것 같기도 한데, 언젠가 한 번쯤 있었던 것 같다. 술취해 홀로 찜질방에 간 것은 처음이다. 술 취한 것보다는 택시 타기가 두려웠고(멀미 때문에), 내일 오전 강연이 이대에서 있었기 때문이다.

다음 날 아침, 일어나니 멀쩡했다. 강연 끝나고 식사를 하고 이화여대 캠퍼스가 예뻐 잠시 교정을 둘러보고 나니 조금 피곤했다. 피로가 쌓였나 보다고 생각했다. 이른 저녁 식사로 닭갈비를 먹었는데, 맛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미각의 상실을 보며 몸이 안 좋구나 싶었다. 식사 후, 몸이 급격이 안 좋아져 집으로 와서 잤다. 쉽게 잠들지 못하다가 몸이 아픈 원인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체했다. 먹은 음식물을 눈으로 모두 확인했던 게다. 홀로 앓으며 하룻밤을 보냈다.

그리고 주일 아침, 몸이 조금 무거울 뿐 아프지는 않아 카페 데 베르에 와서 늘 그렇듯이 커피와 블루베리 토스트를 주문했다. 이때의 나는 어서 일상으로 복귀한다는 생각 뿐이었기에 늘 주문한 메뉴를 시켰던 게다. 내가 빈 속이라는 걸, 빈 속에 마시는 커피는 속이 쓰릴 수 있다는 걸 생각지 못할 만큼 나는 어서 밀린 일들을 하고 싶다는 생각 뿐이었다. 결과는 안 좋았다. 속이 아팠다. 토스트를 못 다 먹었다. 독서리뷰 하나를 쓰고 집으로 돌아와 쉬면서 주일을 보냈다. 예배도 못 드렸다.

한 주 동안의 개인적인 생활은 어떠했나?  독서, 영화, 만남, 여행, 글쓰기, 운동 등 모든 활동이 멈추었던 한 주였다. 활동은 커녕 집에서 10분 이상 쉬었던 날이 없었던 일주일이었다. 토요일 저녁에는 영화를 보기로 했는데, 몸이 안 좋아 다음으로 미뤘고, 우선순위가 높은 블로그 업데이트를 할 시간도 절대적으로 부족했었다. 여행은 한 주 당겨서 다녀 왔으니 OKay~! 

독서에서는 나름 선전했다. 피천득 선생의 『수필』(범우문고 001)과 <Coffee with Celebrity> 시리즈의 1권인 『셰익스피어』를 완독했다. 두 권 모두 주머니에 쏘옥 들어가는 크기다. 전투복의 건빵 주머니에 넣어가서 훈련 중간 중간에 읽기에 좋은 책이었다. 약속 장소로 이동하면서 『고슴도치와 여우』, 『책을 읽을 자유』 몇 장을 읽기도 했다. 일주일 동안 읽은 분량은 350페이지 정도지만, 문고본이라 단행본 분량으로 치면 200페이지 정도가 될 듯 하다.

가만히 앉아, 아팠던 순간을 돌이켜 본다. 금방 잊어버리고 다시 건강을 소홀히 할까 봐 염려되는 바도 있지만, 그보다는 더욱 활기찬 삶을 기대하기 때문이다. 아팠던 이야기를 들은 몇 사람이 '혼자서 아프면 서러운데' 라고 위로해 주었다. 염려해 주어 고마웠으나, 사실 서럽지는 않았다. 이번 아픔은 견디기 힘들 정도가 아니었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서럽지 않았던 진짜 이유는 누구나 아픔은 홀로 감당할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을 하기 때문이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몫의 삶을 산다. 이 말은 누구나 자신만의 기쁨과 성취를 이루기도 하지만, 누구나 자기 몫의 고통과 슬픔을 맞아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살다가 때때로 맞게 되는 몸의 아픔도 결국 혼자서 맞는 것이다. 이것은 마치 어렸을 적 엄마를 여읜 아픔에 대해, 세상을 탓하지 않고 그저 나의 삶으로 받아들이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런 생각으로 인해, 홀로 아픈 밤을 보냈지만 서럽지는 않았다.

사람들이 나의 이 말을, '아! 너는 아플 때에도 혼자 잘 견뎌내는구나. 내가 곁에 있을 필요가 없구나' 하고 이해하지 않기를 바란다. 내가 잘 견뎌내는 것은 맞지만, 누군가가 곁에 있어 줄 필요가 없다는 말은 틀렸다. 나를 아껴 주는 누군가가 곁에 있으면 더욱 잘 견뎌내고, 더욱 힘이 난다. 육체적 고통은 홀로 맞는 것이지만, 고통에 맞설 수 있는 정신력과 마음의 힘은 가족이나 친구들에게서 얻는 것이니까.

우리는 100% 독립적일 때, 100% 상호의존할 수 있는 것이다. 독립적이지 못한 정신으로 의존하면 서로에게 짐이 되고 자신의 성장을 가로막게 된다. 하지만 독립적인 영혼이 서로 의존하면 시너지가 되고 서로의 성장을 돕는다. 의존적인 사람들은 독립적인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해야 하고, 독립적인 사람이 된 후에는 다시 상호의존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요컨대, 이틀을 아프면서 느낀 것은 서러움이 아니라, (진짜 아픈 이들에 대한) 안쓰러움과 (신을 향한) 고마움이었다. 하룻밤 아픈 것도 힘든데, 불치의 병을 안고 살아가거나 난치병에 맞서 투병하는 이들의 삶은 어떠할까. 아픈 와중에도 그네들의 삶이 떠올라 안쓰러워 마음이 살짝 아팠고, 더 크게 아프지 않은 상황이 고마웠다. 변기를 붙잡고 속 내용물을 게워 낼 때에는 나 역시 몹시 괴로웠는데, 그 순간에 떠오른 장면이 있었다. 오래 전, 정말 못견딜 정도로 속이 아팠던 날의 내 모습이었다. 그러면서 '오늘 밤은 그 때만큼은 아프지 않기를' 이라고 속으로 기도했다. 다행히도 기도했던 대로 나는 어느 정도만 아팠다. 나는 그것이 참 고마웠다. 잠 못드는 밤 이불 속에서 하늘에게 말했다. 고맙다고. 

그리고 다시 하루가 지나 이렇게 노트북 앞에 앉을 수 있게 되었다.
짧고 작은 아픔이었지만, 일상을 누리는 것에 대한 고마움을 느끼게 해 주었다.
고통은 삶의 세밀한 영역을 보여주는 현미경이요,
세상의 작은 소리를 확대해 주는 메가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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