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y Story/끼적끼적 일상나눔

일상에서 만난 리영희 선생님

카잔 2010. 12. 6. 17:56

곧고 순수한 길, 그 한 길을 걸어오신 리영희 선생님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편히 잠드시옵소서!"


오랫동안 일하다 보니 목이 뻣뻣하여 잠깐 휴식하려고 카페 밖으로 나왔다. 바람은 차가웠지만 상쾌했다. 테헤란로의 고층 빌딩 사이로 보이는 파란 하늘이 예뻤다. 청랭한 바람이 불어와 주어 정신이 맑아졌다. 하늘을 올려다 보고 있으니, 어제 새벽에 저 먼 하늘나라로 떠나신 리영희 선생님이 떠올랐다. (잇달아 어머니와 배수경 선생님, 그리고 저 먼 곳에 사는 분들의 소중한 얼굴이 그리워지기도 했다.)


나는 지식인 담론에 관심이 많았다. 대학 시절, 강준만, 진중권은 늘 내게 감탄을 주던 지성인이었고, 월간지 <인물과 사상>을 읽는 일은 즐거움이었다. 좌파나 진보가 무엇인지 제대로 모르면서도, 그들의 이야기는 나의 흥미로운 관심사였다. 그 중 강준만 교수님의 글이 가장 큰 울림을 주었다. 강준만 교수님의 좋은 '영향을 받았다' 라고 표현하고 싶지만, 그 분과 나 사이에 놓여 있는 앎의 괴리가 커서 그럴 수가 없다. 어렴풋이 강준만 교수의 『한국 지식인의 주류 콤플렉스』, 『이문열과 김용옥』 을 읽었던 기억이 난다.
지금도 가끔 시간을 내어 진보적인 사상을 지닌, 혹은 실천하는 지식인들의 책을 읽곤 한다.

리영희 선생님은 내가 스승으로 여기었던 분들이 자신들의 사상적 스승으로 여기었던 분이다. 말하자면, 내게는 할아버지 스승이시다. 리영희 선생의 『전환시대의 논리』를 읽은 것은 2007년이었다. 그 때의 감격은 참 컸다. 리영희 교수님을 닮고 싶었지만, 내 삶은 선생님의 강직함과 진정성에 비할 바가 아니기에 결국 나는, 타고난 대로 자기경영전문가의 길을 가고 있다. 줏대 있는 말 같지만, 사실 이것은 거짓에 맞서지 못하는 비겁함이다. 곧은 길을 따르는 고단한 삶 대신 편안하게 살려는 게으름이기도 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내 마음 한 구석에는 지식인적 소명이 자리하고 있다. 지식인이 되고자 하는 열망은 장 폴 사르트르의 지식인론으로 개념 정리를 할 수 있었다. 『지식인을 위한 변명』의 ‘지식인’과 ‘지식전문가’ 개념이 내가 추구할 삶의 방향이 어떠한 것인지를 명쾌하게 보여 주었던 것이다. (장 폴 사르트르의 지식인론과 내가 생각하는 지식인에 대해서 정리해 두는 것도 재밌는 작업이 되겠다.) 오늘부로 나는, 스스로를 자기경영지식인이라 생각하련다. 자기경영지식인은 <자기경영전문가 + 지식인>을 내 마음대로 통합한 거다. 나의 삶을 잘 경영하는 것과 세상에 공헌하는 것의 조화를 이룬 자, 수신제가치국평천하의 삶을 이뤄가는 자가 되고 싶다.


<보보의 독서카페> 12월 도서가 법정 스님의 『아름다운 마무리』다. 지난 해에 읽다 만 책인데, 남은 부분을 끝까지 읽으려고 펼쳐 들었다. 114쪽을 읽을 차례인데, 공교롭게도 바로 앞장이 리영희 선생의 책에 대한 이야기다. 하늘을 볼 때에도, 책장을 펼쳐 들 때에도 리영희 선생을 만난 것이다. 이 시의적절한 만남에 묘한 기분을 느끼며 113쪽을 읽어보았다. 법정 스님은,


“내가 최근에 감명 깊게 읽은 책이 있다. 오랜만에 책다운 책을 읽었다. 한길사에서 펴낸 리영희 씨의 『대화』. 이 책은 대화 형식으로 된 그의 인생 회고록이며 또한 자서전이다. 우리가 일찍이 겪었던 무지막지하고 야만적인 지난 세월을 거쳐 오면서 투철한 세계인식 아래 자기를 지켜 낸 한 지식인의 삶과 사상을 담은 우리 시대의 뛰어난 기록이다.”


라고 쓰셨다. 강준만은 리영희 선생은 “순수 그 자체”라고 말한 바 있다. 내가 『전환 시대의 논리』에서 읽었던 리영희 선생은 강직함 그 자체였다. 순수함과 강직함이라는 두 개의 상반된 가치를 모두 지녔기에 법정 스님의 가슴을 치고 들어갔다는 생각이 든다. 『대화』는 나를 움직이게 했다. 2009년 4월 『대화』를 읽고서 가슴이 뜨거워져, 실명 비판을 시도했던 것이다. 시도는 좋았으나 방법이 어설펐기에 결과는 참담했다. 그 때, 욕을 많이도 얻어먹었다. 하지만, 그 경험으로부터 깨닫게 된 것들이 많다. 거슬러 올라가 보면, 『대화』를 읽어 용기를 얻어 행한 일이니 리영희 선생님 덕분이다.


리영희 선생님의 발인이 9일(수) 오전 6시다. 수원 연화장에서 화장이 진행될 것이고, 오후에는 5.18 국립공원에서 영면하실 것이다. 광주까지 내려가서 선생님 마지막 가시는 길이라도 함께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지만, 수요일 저녁에 중요한 일정이 있어서 그러지는 못할 듯하다. 아쉬움과 간절함이 내게, 순수하고 강직한 태도로 살아가는 힘이 되어 주기를!

사용자 삽입 이미지  자기실현전문가 이희석 와우스토리연구소 대표 ceo@younico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