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y Story/거북이의 자기경영

우리는 종종 혹독한 일을 맞는다

카잔 2010. 12. 12. 14:15

[주간성찰]

주일 오후, 한가로운 시간이다. 나를 만나기에 바쁜 시간이기도 하다. 나는 매주 이 시간에 맛보는 여유로움이 좋다. 어제를 살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내일을 살 수 있는 사람 역시 없다. 누구나 지금 이 순간을 산다. 법정 스님의 말처럼, 삶은 '소유'가 아니라 순간의 '살아있음'이다. 나는 지금 살아 있다. 내 삶의 향기가 어떠한지 킁킁 대며 맡아보고 있고, 일년 동안 무얼 해 왔는지 내 두 눈으로 살펴보고 있는 것이다.

'2010년, 나의 10대 뉴스'를 선정했다. 1위는 항상 기쁘고 즐거운 일이었는데, 올해는 불미스럽고 괴로운 일이 뽑혔다. 나는 인생에서 몇 번의 혹독한 일들을 겪었다. 그러한 일들은 상상 속에서나 다른 사람들의 삶에서가 아니라, 실제로 내 삶에서도 일어나는 것이었다. 가장 혹독한 일은 어머니와의 사별이었다. 그것은 수년 동안 내 삶에 어두운 영향을 미쳤다. 슬펐지만, 누군가에게 슬퍼보이지 않기 위해 제대로 슬퍼하지도 못했던 시절이었다. 캄캄한 밤과 같은 시간이었다.

다행히도 스무 살이 넘어서면서 내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나의 꿈을 쫓기 시작했던 것이다. 꿈은 어두운 내 인생의 별이었고, 별은 빛을 밝혀 주었다. 결국, 나는 다시 환히 웃을 수 있게 되었다. 슬픔을 기만한 얄팍한 웃음이 아니라, 내 삶의 모든 부분을 한껏 긍정한 깊은 웃음이었다. 삶의 대전환이 벌어진 것이고, 이 사실이 무척이나 고맙다. 홀로 해낸 일이 아니기에, 잊지 않으려고 愛쓴다. 삼촌과 숙모, 할머니의 마음을, 잘 보살펴 주었던 학창 시절의 선생님들을, 세상과 선한 것을 공유하기 위해 노고를 다하여 책을 써 준 얼굴 모를 저자들을 영원히 기억하고 싶다. 온 마음을 다해 감사 드린다.

또 다른 혹독한 일은 배수경 선생님의 사별 소식을 들은 것이다. 졸업한지 십오년이 지나서야 그리운 선생님을 찾아간 못난 제자는, 선생님께서 2년 전에 유명을 달리하셨다는 소식을 듣고서 참 많이도 울었었다. 학교를 떠나올 수가 없어 교실을 모두 둘러보면서 학창시절의 그 때로 시간을 거슬러올라갔다. 배수경 선생님의 얼굴이 떠오를 때마다 눈물을 흘렸다. 준비한 꽃다발은 동료 선생님께 전해 드렸고, 정성스레 써 갔던 편지는 도로 가져와야 했다. 편지는 아직 내 책상에 있다. 언젠가 내가 하늘의 사람이 되고 나서야 선생님께 읽어드릴 수 있는 편지가 되었다. 슬픈 추억이다. 혹독할 만큼의 시련은 아니지만,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밀려오는 아픔이다.

2010년 나의 10대 뉴스 1위 역시 혹독한 일이었다. 순서를 따지자면, 어머니와의 사별 이후로 최악의 사건이었다. 그 일이 있은 후, 나는 한동안 블로그에 글을 올리지 못했고, 사람을 만나는 것이 두려워지기도 했다. 끝없는 죄책감에 시달리기도 했고, 말 못할 비밀 하나를 가지게 된 것이 괴롭기도 했다. 너무나도 큰 금전적 손실이 뒤따른 일이라 경제적으로 압박감을 느끼기도 했다. 지금도 그 일을 생각하면 두려워지고 움츠러들게 된다.

감사하게도, 시간은 모든 것을 안고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혹독한 일도 시간이 지나가면서 잊혀져갔다. 정확히 말하자면, 잊혀진 것은 아니고, 일상을 살아갈 때에는 잊고 지내게 된 것이다. 살다 보면, 영원히 잊혀지지 않을 장면이 생겨나곤 한다. 앞서 말한 일들이 목록에 들어 있는데, 올해 하나의 장면이 추가되었다. (자세한 이야기는 '10대 뉴스' 포스팅을 올릴 때 하련다.)

물론 기쁜 일도 있었다. 와우들과 함께 여행을 떠났던 순간들, 여러 권의 책이 될 만한 기획 아이디어를 정리하고 다듬은 일, 한동안 소원(疏遠)해졌던 친구와 다시 즐거운 시간을 보냈던 것은 행복한 날들이었다. 행복했던 날이든, 혹독했던 날이든, 지난 날을 되돌아보고 들여다보는 일은 유익하다. 우리는 모든 것으로부터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성찰은 잘못된 길에서 되돌아서게 하고, 행복한 길을 더욱 힘차게 전진할 수 있게 돕는다. 성찰은 '오늘의 나'를 차분하게 되짚게 만들고, '내일의 나'를 기대하게 한다. 성찰은 '더 좋은 나'를 만들어가는 힘이 있다. 생각하며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 내가 자주 성찰의 시간을 가지려는 이유다.

지난 주에 주간성찰을 건너뛰었기에 2주간을 돌아보았다. 와우팀원의 집들이가 있었고, '전문가로 가는 길'이라는 강연을 했었다. 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송년회에 참석하기도 했다. 가장 큰 사건은 리영희 선생님의 소천 소식이었다. 비보를 듣는 순간, 번개처럼 나를 찾아온 것은 반성이었다. 나의 시대의식이 옅어져 가고 있구나, 실천하는 시민지식인으로의 삶에 너무나도 게을리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잠들어있는 나의 양심과 지성을 깨우고자, 그 날로 신영복 선생님의 강연회가 있는지 알아보았다. 이 시대의 스승으로 생각했던 분을 직접 만나 가르침을 듣고자 함을 더 이상 미뤄서는 안 될 것 같았다. 다행히도 지난 수요일(8일)에는 신영복 선생님의 강연이 있었고, 나는 가서 듣고 왔다. 올해 연말과 내년 1사분기 동안 신영복 선생님의 저서를 읽으며 '진보'와 '지식인'에 대해서 생각해 볼 요량이다.

두 주 동안의 개인적인 생활은 어떠했나?  독서, 영화, 만남, 여행, 글쓰기, 운동을 들여다 본다. 『아름다운 마무리』의 뒷부분 130페이지 정도의 분량을 읽어 책을 완독했고, 독서토론회를 위해 『사람풍경』을 읽기도 했다. 그리고 『현대철학의 거장들』, 『21세기를 바꾸는 상상력』『면벽침사록』을 조금씩 읽었다. 모두 합치니 350페이지 정도의 책을 읽은 듯 하다. 주간 목표에 한참 못 미치는 성적이다. 불성실을 영화에서 조금 만회할 수가 있겠다. <워리워스 웨이> <이층의 악당> <하류인생> 이렇게 세 편을 보았으니까. 모두 한국영화인데, <하류인생>이 가장 인상 깊었다. 50년대 후반부터 70년대 후반까지를 다룬 시대물이다. 임권택 감독과 태흥영화사의 합작품 한 두 편을 더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행을 가려던 계획은 취소되었다. 동행하려던 친구가 함께 하지 못하게 되니, 괜히 나도 가기 싫어졌다. 여행일정이 리영희 교수님이 영면하신 이튿날인 것도 하나의 '작은' 이유였다. 브라질에서 온 교환학생이랑 서울 나들이를 떠나려던 계획도, 학생이 아픈 바람에 취소되었다. 두 개의 여행 계획이 모두 틀어져 버린 주간이다. 덕분에 업무 시간이 늘었고, 글을 썼다. 마르크스에 대한 글도 썼고, 신영복 선생님의 책을 읽으며 보냈다. 운동은 여전히 게을렀다. 말만 앞선 계획인 것 같아 부끄러워진다. 내주는 어떠할지? 또 부끄러워하고만 있을지, 뿌듯함으로 주간성찰을 할 수 있을지? 게으름을 경계하며 새로운 한 주를 맞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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