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y Story/나름대로 예술만끽

고농도 리얼리즘에 감탄한 영화

카잔 2010. 12. 3. 17:38



부당거래

★★★★☆


극장을 나오며 든 생각은 인간의 본성을 참 잘 다뤘다는 것이고 집으로 돌아와 한 일은 누가 각본을 썼는지 확인하는 것이었다. 각본 박훈정. 각본까지 챙겨 기억하기는 처음이다. 영화가 준 감동이 컸기 때문이다. 감격적이거나 아름다운 스토리가 아닌 비열한 이야기로 감동을 얻을 수 있음이 놀랍다. 세상이 얼마나 아름다울 수 있는가를 보여 준 영화도 감동적이지만, 인간이 얼마나 추할 수 있는지를 있는 그대로 옮겨 놓은 영화도 감동적일 수 있음을 보았다. 세상의 빛과 그늘을 모두 체험하고 느껴야 균형있는 지성을 가질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빛과 그늘을 '이해'하려는 노력 없이는 항상 반쪽짜리 지혜가 전부라고 생각할 것이다.  

<부당거래>를 통해 얻은 것은 재미와 감동 뿐만이 아니었다. 관람 후 '폭풍처럼' 밀려든 생각들로 나는 수십 분 동안 멍하게 있어야 했다. 한꺼번에 매우 많은 생각이 몰려왔다는 점에서, 그리고 폭풍이 지나가고 난 뒤 잠잠해졌다는 점에서 
폭풍이라 할 만했다. 생각을 금새 잊었다는 것이 아니라, 차곡차곡 정리되었다는 말이다. 잘 마른 옷을 색깔별로 서랍장에 개어넣듯이 영화의 주요 스토리는 사람의 본성에 대한 나의 패러다임에 생각별로 잘 정돈되었다. 낭만주의-시인 휠덜린-자연의 아름다움과 인간의 가능성 그리고 마키아벨리즘-김훈-야만성과 리얼리즘. 

영화는 엔딩 무렵의 반전이 놀라웠고, 비운의 형사 최철기(황정민 분)가 의리파에서 권력욕으로 파멸해가는 과정이 절묘하게 잘 표현된 것에 감탄했다. 특히, 검사 주양(류승범 분)과 장인어른이 나눴던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 매우 인상깊었다. 그 장면을 들여다 본다. 부당거래로 인해 모두가 죽거나 파산하지만, 현직 검사인 주양만이 빠져나왔다. 자신의 말썽에 대하여 법조계 실세인 장인 어른께 연신 "죄송합니다"고 말하는데, 장인 어른의 '말씀'이 그야말로 가관이다. "대장부가 그만한 일로 기죽으면 되겠나? 어깨 펴."

그만한 일이라니! 주양이 사다리 오르기에 도움이 될 이번 사건을 맡게 된 것도 장인 어른이 힘써 준 덕분이고, 지은 죄로 따지면 최철기에 못지 않다. 정서적으로는 가장 열 받게 만든 이가 주양인데, 그만한 일이라니! 이 장면은 우리 사회 일각의 현실인지도 모른다. 적확한 사회 비판이기에 무릎을 치며 감탄하면서도 씁쓸했다. <부당거래>의 힘은 이러한 리얼리즘에 있었다. 물론 리얼리즘 만이 세상 이해를 돕는 것은 아니다. 유머와 풍자, 이상과 낭만주의도 세상 이해를 돕는다. 그러니 어느 한 가지의 견해를 무시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나만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최철기는 애정이 가는 캐릭터였다. 영화가 진행되면서 불행하게도 최철기는 조금씩 더 깊은 수렁으로 빠져들었다. 그것은 영화 <델마와 루이스>처럼 매우 현실감 있게 꼬여가는 '점진적인' 악화였다. 점진적이었기에 개연성이 있었고, 사건과 사건의 흐름이 자연스러웠다. 두 영화의 비슷한 점은 주인공들이 자신도 모르게 조금씩 더 큰 범행을 저지르게 된다는 점과 주인공이 죽는다는 것이다. 두 영화가 다른 점은 델마와 루이스가 그저 주말 나들이를 떠난 것이 사건의 발단인데 반해 최철기는 첫 출발부터 범죄라는 점이다.

결정적으로 엔딩을 처리하는 방식이 달랐다. 두 영화의 주인공들은 모두 죽음을 맞지만, <델마와 루이스>는 상징적으로 처리되고, <부당거래>는 피가 쏟아지는 장면을 모두 보여주는 적나라한 방식으로 처리된다. <델마와 루이스>의 마지막은 명장면이다. 절벽을 향한 자동차에 앉아 있는 엠마 톰슨과 지나 데이비스는 손을 꼭 잡은 채로 악셀레이터를 밟는다. 자동차는 절벽을 떠나 공중에 떠오른다. 이것은 주인공의 죽음일까, 여성 해방의 상징일까? <부당거래>의 마지막은 문자 그대로 '파멸' 혹은 '끝장'이다. 이것은 부당거래의 끝일까, 모든 힘 없고 연줄이 없는 사람의 종말일까?


최철기의 파멸은 부당거래를 시도했음에도 불구하고 뒤집을 수 없는 사회적 권력을 상징하는일까? 그럴지도 모른다. 모든 힘 없는 사람들의 현실일지도 모르지만, 끝은 아니다. 현실을 딛고 일어서는 자들은 항상 존재해 왔다. 하워드 진은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를 모아 '권력을 이긴 사람들'을 썼다. 감동적인 사람들의 이야기는 오늘 우리가 이어갈 수 있다. 그런 사람들은 현실을 직시하는 것이 꿈을 죽이거나 가능성을 배제하는 일이 아님을 안다. 현실을 직시하라는 말은 꿈을 현실적으로 낮추라는 의미가 아니다. 꿈은 원대하게 꾸되, 현실을 꿈으로 끌어올리기 위해 제대로 파악하라는 말이다. 

<부당거래>는 다시 보고 싶은 영화다. 관람 내내 몰입하게 만드는 영화였기에 재미있었고, 인간의 야누스적인 본성에 대해 생각하게 만들었기에 유익했다. 내가 뽑은 명장면은 최철기가 주양 검사와 통화한 후, 공중전화 부스를 나오며 통화내역조회 기록부를 찢으며 울부짖는 장면이다. 상황의 주도권이 주양에게 넘어가게 된 전환점이었고, 최철기가 주양에게 무릎을 꿇게 된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던 그 장면이 왠지 슬펐다. 자신의 '부당거래'가 검사에게 탄로난 것을 알게 되어 절규하는 장면에서는 나도 함께 절망했었다. 이후, 최철기가 실수로 부하 형사를 쏘게 되고, 다시 부하의 손에 죽게 되는 마지막 장면까지 나는 최철기에 몰입하였다. 영화의 결말은 내가 원했던 방향으로 진행되지는 않았지만, 아쉬움은 들지 않았다. 리얼리즘 하나 만큼은 제대로 보여주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나는 류승완 감독이 인간을 바라보는 태도를 지지하지는 않는다. 감독 본인도 스스로 그리고 인간에 대한 존엄성을 깊이 생각하지 못했다고 말한 바 있다. 하지만, 그의 리얼리즘은 높이 평가한다. 그의 멋진 한 마디도 참 마음에 든다. “
<부당거래>는 시간이 지날수록 '후진' 영화가 되었으면 좋겠다. 시간이 흐를수록 작품의 가치가 떨어진다는 건 감독으로서 불행한 일이다. 하지만 시민으로서는 행복할 것 같다.” 아름다운 세상이 되어 리얼리즘이 떨어지는 영화라고 평가 받기를 원하는 것이다. 그런 세상은 올까? 촘스키는 이렇게 말했다. 

"당신이 더 나은 사회를 향한 변화의 가능성이 없는 것처럼 행동한다면,
더 나은 사회로의 변화는 없을 것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자기실현전문가 이희석 와우스토리연구소 대표 ceo@younico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