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y Story/거북이의 자기경영

더 이상 이대로 살 수는 없다!

카잔 2010. 12. 21. 10:27

[연재] 내가 꿈꾸는 삶을 살아가기
1. 더 이상 이대로 살 수는 없다.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한 것이 사고나 시간이 아닌
                   당신 자신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 슬플 것이다."

                                      - 릴리안 헬만, 미국의 여류극작가

『프리에이전트의 시대』 서문은 강렬했다. 저자는 묻는다. 더 이상 이런 식으로 일할 순 없다고 생각했던 적이 있느냐고. 내게는 있었다. 2005년 연말, 회사원이었던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내가 속한 사업부의 특성상, 연말은 모든 임직원들이 무지 바쁜 시즌이다. 당시 나는 (팀원들과 함께) 거의 매일 야근을 했고, (일을 빨리 빨리 처리하지 못하여) 주말에도 홀로 회사에 나와 일했다. 너무 바빠 힘들었지만, 일을 배우는 재미가 있었기에 견딜 수 있었다. 팀내 선배들과의 관계도 좋았고, 책을 통해 배웠던 자기경영의 지식들을 회사 생활에 적용해가며 성장하고 싶다는 열망도 있었다.

일년이 지나 2006년 연말이 되어가면서, 나는 일년 전과는 다른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1) 나의 열심에 비하면 보수가 적다고 생각했다. 당시 나는,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을 정도로 참 열심히 일했다. 2) 영업도 즐거웠지만, 내가 더 잘할 수 있는 일이 있다고 생각했다. 당시 나는, 책을 쓰는 일이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인지 실험해 보고 싶었다. 3) 직장 생활이 너무 편안해졌다. 당시 나는, 편안함보다는 힘겹더라도 성장할 수 있는 길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 모든 생각들은 이대로 일할 순 없다는 생각으로 귀결되었다.

그.래.서. 2007년 1월 7일부로 나는 자유인이 되었다. 퇴사했던 것이다. 방금 읽은 두 문장에서 방점은 '그래서'에 찍힌다. 생각한 바가 있다면, 두려움을 떨쳐내고 생각한 대로 실행하는 것이 중요하다. 여러 가지 그럴 듯한 변명을 끌어안으며 제자리에 주저 앉아서면 안 된다. 실행하지 못하는 것의 실체가 두려움이라면, 힘껏 맞서 싸워야 한다. (두려움에 맞서는 용기는 그냥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10년 가까이 읽어 온 '좋은' 자기경영서의 메시지가 도움이 되었다. 반드시 좋은 자기경영서라야 한다. 허접한 책이 많기 때문이다. 두려움을 컨트롤하고 싶다면, 수잔 제퍼스의 책 한 권을 정복하길 권한다. 서른 이후에 읽은 것이 아쉬울 만큼 좋은 책이었다.)

자유인이 되려고 퇴사했지만, 머지않아 깨달았다. 퇴사를 실행하는 것만으로는 진정한 자유인이 되지 못한다는 사실을! 자기경영을 잘하지 못하면 시간은 손안의 모래알처럼 사라져 버렸고, 독립성을 갖추지 못하면 내 발로 걸어나온 회사에 대한 아쉬움이 찾아온다는 것을 알았다. 퇴사는 자유로운 삶을 향한 첫걸음일 뿐 보증수표는 아니었다. '홀로 천천히 자유롭게' 걸어가기 위해서는 철학이 필요했고, 그 철학을 현실 속에 실현할 기술과 실천이 필요했다.

퇴사 전후의 일들을 아주 간략하게 정리했다. 극단적인 사유방식이긴 하지만, 이런 생각을 할 때가 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내가 가장 잘 한 일은 무엇인가?' 이럴 때마다 가장 잘못한 일이 떠올라 괴롭기도 하지만, 이제부터라도 깨끗하게 살 것을 다짐하며 잘 한 일에 집중해 본다. 내가 잘한 일, 두 가지가 떠오른다. 20대 중반에 시작한 일 하나, 삼십대에 접어들면서 시도한 일 하나다. 그것은 와우팀을 시작한 것과 회사를 나온 것이다.

나는, 힘들면서도 '괜찮아. 나는 행복해'하며 스스로를 기만하는 사람이 아니다. 나의 있는 모습, 어두운 그늘을 모두 인식하며 나의 실체를 힘껏 받아들이려는 사람이다. 자기기만은 "후" 불면 날아가 버리는 한 장의 티슈와 같아서 조금만 힘에 부쳐도 힘들어하는 자신을 드러내게 된다. 이 말을 하는 까닭은 앞서 말한 두 가지는 정말 내가 잘한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임을 강조하고 싶어서다. 독립 후의 생활이 힘들어 조직 생활이 더욱 좋았다고 생각하면서도 도전할 용기가 없는 나를 보며 자위하는 말이 아니다. 나는 온 마음을 다해 고백할 수 있다. 퇴사는 내가 가장 잘 한 일이다! 라고.

오늘, 새삼스레 퇴사했던 날을 떠올린 것은 '춘천가는 기차' 때문이다. 2010년 12월 20일은 서울과 춘천을 오가는 낭만열차가 사라진 날이다. 경춘선을 달린 역사상의 마지막 열차가 춘천역에 접어들자 최광용(37) 기관사는 안내 멘트를 내보냈다. "경춘선을 사랑해주신 승객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잠시 후 70여년을 달려 온 열차의 정착역인 춘천역입니다. 항상 건강하고 행복하시기 바랍니다." 눈물이 나려고 했다. 경춘선이 그리워서가 아니다. 살려고 했던 대로 살아가지 못한 것이 아쉬워서다.

2010년 12월 20일, 마지막 운행을 마친 경춘선


경춘선이 사라진다는 소식을 알게 된 것은 두어 달 전이었다. 그 때, 기사를 읽으면서 생각했다. '으악! 낭만열차가 사라지네. 그 전에 춘천에서 꼭 소주 한 잔 마시고 김현철의 노래를 들으며 홀로 돌아와야지.' 그 때는 경춘선 운행이 중지되는 날까지는 시간이 남아 있어서 플래너에 기록하지도 않고 그냥 미뤄두었다. 그러다가 12월 21일 아침, 인터넷 포털을 열었더니 '내 젊은 날의 경춘선이여, 이젠 안녕'이라는 기사가 보였다.

순간, 아니길 바랬다. 이제 며칠 후면 경춘선이 사라진다는 기사이길 바랬다. 손으로는 기사를 클릭하며, 머릿 속으로는 일정을 훑어본 후 '23일에 홀로 춘천 여행을 가야지' 하고 생각했다. 내 가슴은 '제발'을 외치고 있었다. 그.러.나. 나의 바람은 순식간에 꺾였다. 기사의 첫 문장을 읽자마자 가슴이 먹먹했다. "20일 오후 11시27분, 경춘선을 달리는 마지막 무궁화호 열차인 청량리발 춘천행 1873호 열차를 기다리는 강촌역에는 기둥마다 애틋한 낙서가 가득했다."

눈물이 날 뻔 했다. 또 하나의 하고 싶은 일을 하지 못하게 되었다. 춘천가는 기차를 타고 호젓한 여행을 떠나는 것은 늘 마음 속으로 하고 싶은 일 중의 하나였다. 물론 한 번도 가지 못한 것은 아니다. 올해 봄, 나는 경춘선을 타고 남춘천까지 달려갔다. 춘천에서 소양강 댐을 보고, 김유정 문학관을 다녀왔다. 즐거운 추억이었다. 나는 그 호사를 계속 누리고 싶었지만 이제는 이룰 수 없는 희망이 되었다.

청량리역에 롯데백화점이 들어서면서 쾌적해진 것이 좋은 반면, 추억과 낭만이 줄어들었다. 경춘선이 사라지니 그 남은 추억과 낭만이 사라진 것 같아 아쉽다. 나는 반문명주의자는 아니다. 경춘전철 개통으로 많은 사람들의 삶이 편리해졌을 것이다. 문명 자체는 나쁜 것이 아니다. 자연과 인류를 배려하지 않은 개발이 나쁜 것이다. 지각있는 사람이라면 이런 개발을 반대할 것이고, 이번 경춘선 운행 중지가 나쁜 개발은 아닐 것이다. 나는 지금 경춘선 운행이 중지된 것이 아니라, 운행 중지 전에 하려고 했던 일을 하지 못한 나의 게으름과 살고 싶은 대로 용기내어 살지 못하는 나의 무능함을 미워하는 중이다.

더 늦기 전에,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아야 한다. 하고 싶은 일'만' 하며 살 생각은 없다. 내게 주어진 최소한의 의무와 책임을 완수하려고 노력할 것이다. 해야 하는 일에 성실하면서, 하고 싶은 일'도' 하면서 살련다. 경춘선 여행을 놓친 것이 내 안에 큰 외침을 만들었다. "더 이상 이대로 살 수 없다!" 외침은 메아리가 되어 이 글을 쓰는 내내 가슴 속에 울려 퍼지고 있다. 오늘은, 수개월 동안 그려 온, 살고 싶은 대로의 모습을 선언해야겠다. 

미국의 극작가인 릴리안 헬만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한 것이 사고나 시간이 아닌 당신 자신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 슬플 것이다." 내겐 오늘이 슬픈 날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자기실현전문가 이희석 와우스토리연구소 대표 ceo@younico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