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Book Story/즐거운 지식경영

'올해의 책'에 관한 3가지 단상

카잔 2010. 12. 27. 10:09

며칠 전, 2010년 독서를 결산하는 나만의 '올해의 책' 선정을 했었지요. 선정 기준은 '제 삶에 영향력을 미친 정도'입니다. 저는 '앎'보다는 '삶'에 미친 영향을 더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다윗'이라는 필명을 쓰는 블로거는 "앎의 크기가 곧 존재의 크기를 결정한다"는 말을 대문에 걸어 두었는데, 저에게는 절반 정도만 들어맞는 이야기라 생각합니다. 저는 앎과 실천 사이의 거리가 꽤 큰 사람이니까요. 그래서 저는, "실천의 크기가 존재의 크기를 결정한다"고 말하고 싶네요. 제 블로그의 어떤 글이 실천이 아닌 바람을 말하는 글이라면, 그것은 아마 실제의 제 존재보다 조금 나은 모습일 것입니다.

'올해의 책'을 선정한 포스팅 제목을 <2010년 올해의 책>이라 하지 않고, <나를 감동(感動)시킨 책들>이라고 하였습니다. 목록이 나를 감(感)하고 동(動)하게 만들었던 책들이기 때문입니다. 감동의 사전적 의미는 깊이 느껴 '마음'이 움직인다는 뜻이지만, 저는 느끼어 '몸'을 움직이게 만들었다는 의미로 썼습니다. 언어의 사회적 소통 기능을 반(反)했지만, 머리와 마음 속에 머물러 있는 지식을 손과 발로 끌어내려는 제 의도에는 잘 합(合)하는 변용입니다. 목록이 매우 주관적이다, 라는 말입니다. 제가 뽑은 목록은 올해 출간된 저서가 아니란 점에서, 많이 팔린 책이 아니란 점에서, 언론사의 목록과는 다르니 주관적이지요. ^^

'올해의 책'이라는 제목의 글을 여러 개 읽으며 몇 가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중 3가지만 언급하고 물러갑니다. 따뜻한 연말 보내세요~


1. 올해의 책 ≠ 베스트셀러

국민일보의 박동수 기자님은 12월 24일자 칼럼에서 "올해의 책 선정엔 여러 기준이 적용될 수 있지만 판매 부수가 가장 중요시돼야 하는 것이 상식이다"고 썼습니다. 저는 판매 부수가 가장 중요한 기준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올해의 책으로 선정된 책들이 판매 부수와는 무관한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2005년과 2006년 연말, 직접 올해의 책과 베스트셀러와의 연관성을 비교해 본 적이 있습니다. 출판저널와 3개 메이저 언론사의 '올해의 책'으로 공동으로 선정된 책에는 『블루오션 전략』이나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와 같은 대박 베스트셀러가 있는가 하면, 『대담』이나 『강의』 와 같이 베스트셀러 목록에 이름을 올리지 못한 책들도 있습니다.  『대담』의 한 해 판매부수는 8,000부 정도였습니다. 책을 출간한 출판사의 팀장에게 직접 들은 이야기니 크게 틀리지 않을 겁니다. 저도 그 해 『대담』을 읽었지요. 매우 유익한 책이었는데, 적게 팔려 아쉬워했던 마음이 지금도 기억납니다.

올해의 책은 베스트셀러와 일치하는 것은 아닙니다. 2005년도의 경우, 올해의 책 10권 중 4권이 베스트셀러라고 불릴 만한 판매부수였습니다. 많이 팔리지 않아도 좋은 책이면 올해의 책에 포함될 수 있습니다. 판매부수는 올해의 책을 선정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이 아니라, 고려할 여러 기준 중의 '하나의' 기준입니다. 

신간은 매혹적이지만, 그래서 고약합니다.
고전을 향한 관심을 앗아가기 때문입니다.



2. '올해의 책'을 바라보는 태도 한 가지

우리는 콜럼버스에게 "왜 오세아니아주는 발견하지 못했냐?"고 따지지는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모든 매체에게서 '궁극의 리스트'를 기대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진보성향의 언론사와 보수성향의 언론사가 선정한 목록은 당연히 다릅니다. 과학잡지와 인문계열의 교양지가 선정하는 목록도 다를 수 밖에 없지요. 독자로서 목록의 균형을 요구할 때에는 분별있게 요청해야 합니다. 그들의 정체성을 흔드는 균형이 아니라, 그들의 전문 분야 내에서의 치우침이 없는 목록을 요청해야 합니다. 어설픈 균형을 요구하는 것보다는 치열함에 가까운 성실함을 요구하는 것이 나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각 매체의 성격과 특징을 잘 파악하는 혜안이 아닐까요? 그리고 나에게 결여된 부분이 있음을 깨닫고, 그것을 보완해 주는 매체를 찾아내는 열정과 열린 마음 아닐까요? 과학도를 꿈꾸는 대학생이 뽑은 올해의 책 목록을 보며 '너는 왜 인문학이 없냐?'고 지탄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 질문이 부드러운 권면 정도면 좋겠지만, 균형을 잃었다는 꾸짖음이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인생의 어느 시기에 극단을 향한 몰입이야말로 우리에게 성장을 안겨다 줍니다. 진정한 균형은 서로 다른 양 극단으로의 몰입을 통해 이뤄지는지도 모르지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우물에 가서는 숭늉을 찾고,
방앗간에 가서는 떡을 찾는 상식입니다.



3. 제목을 기억해 두는 것보다 유익한 것

좋은 책의 제목을 알아두는 것은 유익한 일입니다. 책을 읽을 기회가 열려 있다는 점에서뿐만 아니라, 그것 자체로도 이야기꺼리 하나를 더 가진 셈이니까요. 그런데 독서가들 중에는 책의 제목을 아는 지식이 책의 내용을 이해하는 지식보다 앞서 있는 이들이 있습니다. 저를 포함하여 독서에 관련된 책을 출간한 저자들 중에도 이런 분들이 많습니다.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좋은 책의 목록을 수집하는 일을 멈추고, 책 한 권을 잡아 진중하게 읽는 것입니다. 진짜 실력을 키우고, 지성인의 사고력을 갖고 싶다는 꿈을 가졌다면 말이죠. ^^ 

명실상부는 전문가의 도덕이요, 목표입니다. 
이름과 내실의 균형을 추구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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