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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해> 남자를 움직이는 것들

카잔 2011. 1. 7. 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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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해>

남자를 움직이는 것들

★★


2010년 1월 개봉한 <파라노말 액티비티>란 영화를 보셨는지? 영화는 잔인하지 않다. 피를 흘리는 장면은 하나도 없고, 무서운 흉기나 귀신이 등장하지도 않는다. 그런데 나는 무서움으로 전율했다. 공포영화나 스릴러를 많이 보지 않아서 이런 말 하긴 머쓱하지만, <파라노말 액티비티>는 내가 보았던 가장 무서운 영화다. 며칠 동안, 밤마다 영화 장면이 생각나 잠을 못 이룰 정도였다. 어느 날엔, 잠자리에 들었다가 다시 옷을 주섬주섬 집어 입고 친구 집에 가서 잤다. 무서워서라고 말하진 않으련다. 야밤에 친구가 보고 싶었던 게다.


내가 본 가장 무서운 영화


<파라노말 액티비티>의 무서움은 일상적이고 점진적이다. 그래서 현실적이다. 영화의 배경은 외진 산장이나 으스스한 분위기의 거대한 저택이 아니라 평범한 가정의 침실이다. (내가 잠드는 방과 비슷하다.) 나는 영화에 쉽게 몰입했다. 매우 일상적인 장면이니까. 영화가 나를 사로잡은 도구는 일상성으로 조여드는 무서움이었다.


잘 알려진 것처럼, 스필버그는 이 영화를 보고 극찬을 했고, 판권을 구매했단다. 나 역시 스필버그의 호평에 힘입어 관람했다. 며칠 동안 밤잠을 설치게 만든 영화였지만, 바로 그런 경험을 해 주었기에 이 영화를 오랫동안 기억할 것 같다. 일상성으로 공포 연출에 성공한 영화, 잔인하거나 괴기스럽지 않아 더욱 무서웠던 영화로.


잔인함은, 슬픔이나 불운보다 일상적이지 않다. 부모님과 일찍 사별한 아이들은 많지만, 끔찍한 사건으로 잃은 이들은 그보다는 적다. 잔인함으로는 관객들의 감정이입을 끌어내기 힘든 까닭이다. <추격자>는 달랐다. <추격자>는 매우 잔인하면서도 관객의 감정이입을 매우 잘 이끌어냈는데, 그것은 깡패나 살인청부업자가 아닌 일반인 여성이 영화 끝까지 살아남아 주었기 때문이다. 나도 관객들도 여자 주인공의 무사귀환을 바랬을 터이고, 그랬기에 가게에서 그녀가 살해되는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그토록 안타까워했다.


황해를 본 첫소감, 글쎄?!


반면, <황해>를 보며, 나는 어느 인물에게도 깊이 몰입하지 못한 채, 멀찌감치 떨어져서 관람했다. 죽이는 사람도, 죽는 사람도 모두 평범한 사람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잔인했지만, 그것은 살인청부업자들과 깡패들의 싸움에서 벌어진 사건들이었다. 그들의 죽음이 하찮다는 것이 아니다. 나와는 다른 세계의 이야기라고 생각되었다는 말이다. 그래서 잔인했지만 무섭지는 않았다.


<황해>를 보는 나의 감정이입은 처음에는 면가(김윤석)에게, 후반부에는 구남(하정우)에게 이루어졌다. 면가는 처음부터 구남의 귀국을 고려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나는 뒤늦게 깨달았다. 그 전까지는 면가를 지독한 악인이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자신의 일을 하면서도 구남에게 선의를 베푸는 것으로 착각했으니까. 이것이 영화 이해를 다소 방해했던 것 같다.


영화를 보고 난 후, 실망했다. <파라노말 액티비티> 이후로 공포영화를 전혀 보지 않았지만 <황해>는 예외였다. <추격자>가 워낙 좋았기 때문이다. <추격자>는 무서웠지만 시종일관 손에 땀을 쥐게 하고 마음을 졸이게 하는, 잘 만든 영화라 생각했다. <황해> 관람은 감독의 전작을 좋아한 내게는 당연한 수순이었다. 하지만, 첫 소감은 당황스러움이었고, 시나리오도 엉성하고 감정이입에도 실패했다고 생각했다.


남자를 움직이는 것들


영화를 본지 이틀이 지나 리뷰를 쓰는 지금은 영화에 대한 소감이 바뀌었다. 감독의 인터뷰와 <황해>의 줄거리를 다시 읽으며 영화에 이해가 생겼기 때문이다. 나홍진 감독은 인터뷰에서
"남자들은 대부분 그 정도와 방식의 차이만 있을 뿐 근본적으로 돈, 여자, 가정 이 세 가지에 따라 움직인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감독의 말에 영화에 대한 궁금증 혹은 답답함이 많이 해결되었다. 물론, 남자들도 고상한 가치를 추구하며 살고,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기 위한 노력도 한다. 다만 감독은, 남자들이 어떻게 살려고 노력하는가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실제로 남자들은 어떻게 살아가는가를 다룬 것이다. 사람은 이상과 현실을 모두 가진 존재지만, 감독의 '현실'의 모습만을 카메라에 담고자 했다.


'김승현이 누구지? 도대체 무엇 때문에 면가는 김승현을 죽이려고 하지?' 영화 초반, 나의 의문이었다. 영화가 전개되면서 쉽게 드러난 김승현의 실체. 그의 공식 직함은 교수지만, 실체는 어둔 밤 업계의 큰 손이었다. 김승현을 죽이려는 또 하나의 진범을 확인한 것은 영화 끝 무렵이었다. 표면적으로 드러난 김승현 살인자는 면가의 살인청부를 받은 구남(하정우), 김승현의 운전기사다. 요컨대, 구남과 운전기사는 '김승현을 죽이고 싶은 이들'이 아니라, 죽이고 싶은 이들의 부탁을 받은 '김승현을 죽여야 하는 이들'이었다. 왜?


죽이려는 자들과 죽여야 하는 자들


이 모든 사람들을 움직인 것은 무엇일까? 구남에게는 돈이 필요했다. 그것은 가정을 지킬 돈이기도 했다. 운전기사 역시 거액의 돈에 매수된 듯하다. 우리 남자들은 움직이게 만드는 것 중 하나는 분명 돈이다. 돈은 가정을 지키기 위해서도 필요하다. 영화 초반, 구남의 가정 이야기 등장한 것은 사건 전개상 불필요하다고 생각했는데, 감독의 의도를 전하는 중요한 장면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어머니가 등장하고 장인어른이 등장하고, 영화 내내 구남의 딸아이 사진이 등장한다. 남자를 움직이는 또 하나는, 가족을 지키려는 책임감이다.


한편, 구남과 운전기사에게 돈을 준 이들은 무엇 때문에 김승현을 죽이려고 했는가? 살인을 청부한 두 남자는 김태원과 김정환이다. 이들은 여자 때문에 움직인 사람들이다. 영화 도중, 깡패 두목 김태원이 "그 자식(김승현)이 내 여자를 건드렸어"라고 말하는 대목이 나온다. 자신의 애인인지 아내인지를 김승현이 '건드린' 것에 열받은 것이다.


은행원 김정환은 김승현의 아내와 내연 관계다. 김정환은 사랑하는 여인을 차지하기 위해, 다소 우발적으로 그녀의 남편을 죽이기로 한 것이다. 우발적이라 한 것은, 김정환이 어느 술집에서 "죽이고 싶다"고 말한 것을 조선족이 듣고 자기 아는 여인이 살인청부업자를 안다고 소개한 것이다. 그 살인청부업자가 면가(김윤석)다.


영화의 상세한 줄거리를 읽고 나서야, 감독의 시나리오가 리얼리즘을 잘 담아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러니 '엉성한 시나리오'라는 표현은 취소해야겠다. 2시간 40분이라는 긴 러닝타임 동안 긴장감을 풀어주지 않고 영화를 이끌어가는 힘은 여전했다. 다만, 나는 왜 영화를 잘 이해하지 못했을까? 라는 의문이 남는다. 나의 이해력이 엉성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으련다. 나는 영화에 꽤 잘 몰입하는 편이고, 이해력도 평균은 된다고 생각하니까.


그렇다면, 감독의 자신의 좋은 시나리오를 제대로 표현하는 데에는 실패한 것은 아닐까? 내가 영화를 뒤늦게야 이해한 원인은 둘 중 하나일 것이다. 감독이 자신의 의도를 효과적으로 전달하지 못한 2% 부족한 연출 때문이거나 혹은 극도의 리얼리즘을 받아들이기에는 아직은 내가 너무 나이브(naive)하거나.


[덧1] 구남의 아내는 죽었을까? 살았을까? 영화의 마지막 장면, 몽환적인 분위기에서 기차에서 내리는 아내의 모습은 구남의 꿈일까? 아니면, 구남에게 아내의 사망 사실을 확인해 준 남자 역시 돈에 의해 움직였을 뿐이라는 또 하나의 슬픈 리얼리즘일까? (그는 얼굴이 일그러진 변사체를 보고 구남의 아내라고 확신하지 못하면서도 "아내가 맞다"고 말했다.) 감독은 구남의 아내가 살아 있다고 믿고 싶었단다. 나도 말하고 싶다. 구남이 죽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어차피 마지막 장면은 리얼리즘과는 거리가 먼 장면 아닌가. 중국을 여러 번 다녀 온 바에 의하면, 기차에서 구남의 아내처럼 홀로 내리는 장면은 있을 수 없으니까. ^^


[덧2] 구남에게 연민 혹은 죄책감 비슷한 감정이 드는 까닭은 뭘까? 조선족이라 부르는 것은 그들에게 기분 좋은 호칭일까? 항상 식당에서 조선족을 만나 몇 마디라도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는데, 나의 선한 의도를 잘 실천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사용자 삽입 이미지  자기실현전문가 이희석 와우스토리연구소 대표 ceo@younico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