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y Story/끼적끼적 일상나눔

관계의 어려움을 겪고 있다면

카잔 2011. 3. 31. 23:31


몇 분이랑 함께 밤을 지샜다. 이른바 번개 MT 였다. 시간이 되는 이들끼리 만나 저녁 식사를 하고 밤새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튿 날에는 조조영화를 보고 밥 먹은 후 차를 마시고서야 헤어졌다. MT는 따뜻하고 편안했지만 우리가 나눈 주제는 무거웠다. 삶의 힘겨움, 관계의 어려움, 개인의 아픈 과거 등 자신들의 가장 속 깊은 이야기를 끄집어 냈다. 꺼내기도 쉽지 않고, 해결하기도 결코 쉽지 않은 주제였다. 이런 이야기를 나누었다는 것은 우리의 친밀함을 잘 보여주는 일이긴 했지만, 우리 모두가 성장통을 겪고 있거나 앞으로 겪어야 한다는 걸 의미했다.

집에 돌아온 날 밤, <MT 후기>라는 제목의 메일이 왔다. 깊은 이야기를 나눈 정감 있는 시간이었다는 말로 시작한 메일은 본론이 펼쳐지자 나를 감동시켰다. 메일을 보낸 그는 지난 밤에 관계의 어려움을 토로했었다. 일년 동안 지켜보았던 그는 '관계'보다는 '개인'을 추구해 왔었다. 지난 밤, 나는 그에게 때로는 완곡하게 때로는 강하게, 앞으로는 신뢰와 사랑을 선택해야 함을 요구했다. 그리고 신뢰와 사랑을 선택하지 않았던 지난 날들과 다르게 행동해야 함을 말했다. 추상적이고 공허한 조언처럼 들리지 않도록,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가며 이야기했다.

하지만, 그는 '나는 변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이미 여러 번 들은 말이었다. 그럴 때마다 내가 해야 할 일은 그의 말을 더욱 경청하며 적절한 기회에 그가 마음을 돌릴 수 있도록 돕는 것이었다. 관계의 어려움이 생겼을 때, 서로가 '내가 먼저 변해야지' 하는 생각을 하지 않으면 개선도 회복도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음이 닫히고 상처를 받고 상대가 이해가 안 될 때, 내가 먼저 변하겠다고 생각하기란 무지 힘들다. 그의 나눔을 듣고 순간적인 무력감을 느낀 까닭은 무지 힘든 일에 도전해야 했기 때문이다.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고 난 후 24시간이 지난 후부터 감동과 울림을 주는 영화가 있다. 누군가와의 대화는 이야기를 나눌 때에는 별다른 감흥이 없다가도 집으로 돌아오다가 혹은 일상을 살아가다가 점점 이야기의 내용이 떠올라 나를 흔들어 놓을 때가 있다. 그런 일이 있기를 바라며 나는 그에게 하소연했다. "이제는 더 이상 물러 설 곳이 없는 것 같아요. 지금 변화하지 않으면 더 큰 어려움이 올 것 같아요." 나의 진심이었다. 책임감 있고 능력 넘치는 그가 관계에서도 그런 모습을 보여 주기를 바랬다.

그가 보낸 메일에 담긴 내용은 이랬다. 상대에게 이렇게 말했단다. 내 책임도 있을 터이니 그 부분을 인정하고 나도 노력하겠다, 이런 의지적 선택도 사랑의 방식이라 생각한다, 함께 열심히 노력해 보자 등등. 분명히 변화하고 노력하겠다고 결단한 내용이었다. 상대도 누그러진 마음으로 들어주었다고 한다. 상황을 변환시키는 주도적인 행동을 해 준 점이 무척 고마웠다. 아직 문제는 종료되지 않았다. 오히려 본격적으로 문제 해결이 시작된 것이다. 그가 어두운 터널을 잘 통과해 주기를, 머지않아 터널 끝 밝은 빛을 만나기를 기도한다.

파트너와 함께 인생길을 걷다가 문제가 일어나면, 어떻게 해야 할까? 얼핏 떠오르는 좋은 방법은 파트너를 바꾸는 것이지만, 이것이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닌 경우가 많다. 문제의 원인이 서로 간에 맺어진 관계성에서 온 것이 아니라, 두 사람 각자가 지닌 개인성에서 오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누군가와의 관계에서 문제가 생겼다면, 나로 인해 발생한 문제가 무엇인지 파악해야 한다. 그 영역에서 성장하기 위해 노력하지 않으면 파트너가 바뀌어도 머지않아 똑같은 문제를 겪게 될 것이다.

파트너와 문제가 생기면 파트너를 바꿀 게 아니라, 나를 바꾸어 새로운 파트너십을 형성해야 한다. 그래야 문제를 넘어설 수 있다. 신혼 부부는 두 가지, 자기 일과 서로에게 충실하면 된다. 그러다가 충실해야 할 새로운 영역이 생겨나게 된다. 언젠가 아기가 태어난다는 말이다. 이 때, 새로운 파트너십이 필요하다. 지금까지는 둘이서 테니스 게임을 즐겼다면 이제는 축구 감독과 코치가 되어 가정이라는 작은 조직을 경영해야 한다. 그리고 때로는 감독과 코치의 역할이 바뀌기도 한다. 밤마다 칭얼대는 아기를 돌보는 일을 번갈아가며 맡아야 할 수도 있다는 말이다. 이처럼 새로운 파트너십은 다양한 모양이지만 그 본질은 항상 사랑이다.

사랑은 자아의 붕괴를 동반한다. 모든 것을 다 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붕괴는 자발적이다. 사랑이야말로 최고의 선택임을 깨닫게 된 자들은 기꺼이 혹은 가까스로 자아의 붕괴를 선택한다. 이것은 의미 있고 자신의 존재 전체를 성장시키는 일이지만 힘겹고 고통스럽다. 그래서 자아의 붕괴를 거부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 결과로 사랑이 붕괴되는 것을 목격한다. 그들은 이혼하거나 사랑 없이 함께 산다. 이것은 자아의 붕괴보다 더욱 불행한 삶이다. 자아의 붕괴, 사랑의 붕괴 둘 다 힘겨운 일이지만, 사랑을 재건을 선택하기 위해 자아의 붕괴를 선택해야 한다. 이것은 괴로운 일처럼 보이지만, 실은 행복으로 가는 길이다.  

물론 둘의 관계가 가해자와 피해자의 위치에 있다면 그것은 구조적인 문제라고 보아야 하고, 이 글과는 또 다른 논의가 있어야 한다. 가해자 - 피해자 정도의 인간관계의 어두운 측면에 대해서는 로빈 스턴의 『가스등 이펙트』를 읽어 보길 권한다. 이 분야에서 내가 알고 있는 책 중에 가장 실제적이면서도 유익한 책이다.  서로를 조종하려 드는 상황이나 진실이 왜곡되고 서로를 비난하는 관계에 빠진 이들에게 도움을 준다. 오늘 이야기의 주인공에게는 『내면 세계의 질서와 영적 성장』을 권했다. 삶을 성찰하고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 보아야 하는 그의 지금 상황에 적합한 책이었으면 좋겠다. 적합한 책은 항상 우리를 위로하고 도와주고 변화시켜 주니까.

그에게 메일을 썼다. 이런 저런 이야기와 함께 이 글을 첨부했다. 당신의 메일을 읽고 쓴 글인데 혹 괜찮다면 블로그에 올려도 되겠냐고 물었다. 회신이 왔다. 어제, 오늘을 지혜롭게 보낸 이야기가 담긴 메일이라 읽으면서 기분이 좋았다. "두고두고 저를 성찰할 수 있는 글로 삼겠습니다"라는 말과 함께 블로그에 올려도 좋다는 말도 있었다. '성찰'하겠다는 말은 나를 무척 설레게 했다. 행동이 신속하고 에너지가 넘치는 활동파인 그가 성찰의 힘을 갖게 되면 삶이 훨씬 진보할 것이다. 성찰이 깊어지도록 내가 섬길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이 질문으로 잠들어야겠다. 내 마음이 한결 가볍고 편안해졌다. 기분 좋은 밤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자기실현전문가 이희석 와우스토리연구소 대표 ceo@younico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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