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y Story/거북이의 자기경영

욕심은 자기경영을 방해한다

카잔 2011. 4. 22. 08:15

Y는 문자 하나를 받았다. "이번 달 마지막 금요일, 기수별 모임 있는 거 아시죠?" 미리 참가 신청하라고 요구하는 문자메시지였다. 참석 인원이 대략적으로라도 정해져야 준비가 수월해진다는 애원성 부탁도 있었지만, Y는 답변을 미뤘다. 하루 저녁을 미리 결정한다는 것은 그에게는 어려운 일이었다. 어쩌면 그 날, 동문회보다 더 즐거운 일이 생길지도 모르는 일이니까. 

문자를 보낸 이는 Y가 3~4년 전부터 활동해 오던 온/ 오프라인 학습 커뮤니티의 같은 기수 멤버다. Y는 커뮤니티에서 중요한 사람이 되고 싶어한다. 자기 직업에서는 탁월한 전문가를 꿈꾼다. 두 가지 소원을 이루기에 Y에게는 '헌신'이 부족하다. 그가 선택하는 것은 헌신이 아니라, 더 나은 기회나 대상을 찾는 '탐색'이다. 탐색하는 것 자체는 나쁘지 않지만, 그는 어떤 일에도 헌신한 적이 없다.

욕심이 많기 때문이다. 욕심으로 인해 지금 자신에게 다가온 것들에게 헌신하지 못한다. 헌신 없이 탐색만 하는 것이다. 아직 드러나지 않은 일 혹은 다가올지 모르는 기회가 지금보다 더 좋은 것일지도 모른다는 맹목적인 욕심을 가졌기 때문이다. 헌신 없는 탐색으로는 삶의 만족감과 전문성 그 어느 것도 얻을 수가 없다.  

헌신이란 몸과 마음을 바쳐 있는 힘을 다함을 뜻한다. 욕심이 헌신을 방해하고, 헌신의 결여가 자기경영을 망친다. (우리 문화에서는) 아무리 좋은 이성이라고 해도 두 사람과 결혼할 수는 없다. 하지만 Y는 마치 두 사람과 결혼하기를 추구하며 살아가는 듯하다. 하나를 포기하지 못하여 두 개를 안고 비합리적으로 살아간다. 스스로도 비합리적이란 걸 알면서도 욕심을 내려놓지 못한다.


Y에게 필요한 것은 '헌신'이다. '좀 더' 좋은 것을 탐색하느라 이미 많은 날들을 허비한 그다. 좋은 것이 자기 손 안에 들어와도 (모든 것을 다 가지려는 욕심 때문에) 자기 손 안의 좋은 점 보다는 좋지 않은 것을 먼저 발견한다. 그러면서 다른 이의 손 안에 있는 것을 아쉬워하거나 부러워한다. 자기 손 안에 쥔 기회와 일에 헌신해야 할 찰나에 Y는 결정을 뒤집거나 새로운 탐색을 시작한다. 

물론, 탐색을 통해 다른 좋은 일이 생길 수 있다. 문제는 그 때도 Y가 헌신보다는 또 다른 탐색을 시작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이다. 비전을 이루는 사람들은 탐색과 헌신의 균형을 아는 사람이다. 특히, 시간적으로는 헌신에 훨씬 많은 비중을 두는 사람이다. 이들은 선택의 시기에 과감하게 자기 스스로 결정한다. 그리고 자신이 선택한 일에 헌신한다. 땀을 흘려야 결승선에 이를 수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들이다. 사람을 얻고 비전을 이루는 사람들이다.


Y는 승리자의 월계관과 명예를 추구하지만, 자신이 직접 땀을 흘리며 달리는 일에는 주저한다. 대가를 치르지 않으려는 마음 때문에 길을 달려야 하는 일도 힘들고, 더 나은 길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에 '하나의 길'을 진득히 달리기도 힘들다. 욕심과 두려움, 그리고 검증되지 않은 생각에 사로잡혀 헌신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 모든 생각으로 인해, Y는 탐색과 헌신 사이에서 괴로움을 느낀다. 탐색이 헌신을 낳고, 헌신이 탐색을 완성하기에, 탐색과 헌신은 상호보완적이다. 그러면서도 독립적이다. 헌신을 하려면 탐색을 멈추어야 한다는 말이다. 헌신을 하려면, 다른 것을 내려놓아야 할 때도 있다는 의미다. 자기 결정이 옳는지에 대한 부담감과 삶에 대한 책임감이 느껴지는 일이다.

명심해야 한다! 목표를 향해 전진한다는 것 자체가 헌신의 의미를 포함하고 있음을. 처음 가는 여행지를 향해 자동차를 몰고 가는 것과 같다. 목표지점으로 향하는 길로 전진해야 한다. 이것이 헌신이다. 이 길 조금 진입하고, 저 길 조금 진입하는 패턴을 아무리 반복한다고 해도 여행지에 다다를 수도 없고, 그 여행지가 자신이 머물 적합한 곳인지 가늠할 수도 없다.

목표지점으로 향하되 앞만 보고 달리라는 말은 아니다. 이정표가 나오거나 갈림길이 나오면 잠시 주변을 둘러보아야 한다. 지도(자기 비전)도 들여다보고, 길을 먼저 간 이들에게 물어보기도 해야 한다. 이것이 창조적인 탐색이다. 이미 출발지에서 멀리 떠나온 새로운 지점에서의 탐색이기에 새로운 길을 열어준다. 이것은 늘 비슷한 지점에서 탐색하는 Y의 모습과는 다르다.

Y의 헌신하지 못함은 욕심에서 기인한다. 본인도 여러 번 인정했다. 문자 회신을 하지 않은 것도 조율하는 상대의 형편보다는 자기만을 생각한 이기적인 행동인 동시에 욕심에 지배당한 모습이기도 하다. 이제 나는 그에게 요청한다. 아니 부탁한다. 삶의 태도를 바꾸어 헌신을 선택하라고. 24시간을 헌신적인 태도로 살 순 없지만, 헌신 없이 의미 있는 성공을 이룰 순 없다. 


욕심은 자기경영을 방해한다. 헌신보다는 또 다른 기회를 기웃거리게 한다. 기회의 정체는 대부분 자신의 욕심이다. 기회는 준비된 자에게 찾아온다. '준비'가 '기회'를 만나는 것을 두고, 우리는 행운이라 부른다. 준비됨이 없는 데도 어떤 기회가 찾아 왔다면, 그것이 자기 욕심이 아닌지 살펴야 한다. 하나를 선택하여 집중하지 못하고, 두 세 개의 선택안으로 고민하는 것도 욕심 때문이다. 

욕심과 합리적인 의사 결정의 구분은 의외로 쉽다. 자기 삶에 헌신이 있었나를 묻는 것이다. 물건을 하나 샀다면, 이제 내것이 되었다고 생각하며 정을 붙이며 살아가야 한다. 그렇지 않고 물건을 구입하며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물건의 단점에 집착하며 선택에서 배제된 물건의 장점을 떠올린다면 이것은 욕심이다. 데이트도, 결혼도 마찬가지다.


Y에게 들려줄 수 있는 조언이 있을까? 문득 생각난 이야기가 있지만, 해결책이 될지는 모르겠다. 나는 최근에 플래너 대신 스마트폰으로 일정관리를 시작했다. 오랜 만에 만난 Y가 물었다. "플래너를 펼치면 한 눈에 할 일이 쫘악 들어오는데 이건 그런 맛이 없잖아요?" 나는 답했다. "그건 그렇지. 하지만, 스마트폰은 휴대하기가 편하고 부피가 적지."

대부분의 선택은 선과 악, 좋음과 싫음, 우량과 불량 사이에서의 결정이 아니다. 일장일단이 있는 두 가지 중에 하나를 결정하는 일이다. 그래서 매우 힘들어진다. 각각의 선택안이 일장일단이 있다면, 하나를 취할 때, 다른 하나를 포기해야 한다. 나는 종이 플래너가 주는 장점을 알지만 포기한 것이다. 다 취한다는 욕심을 버린다는 의미다. Y는 이것이 안 되는 것이다. 항상 손 안에 것에서 단점을 먼저 발견하는 부정적인 사고 방식이 한 몫 했는지도 모르겠다.

나의 이야기는 Y에게 도움이 될까? '아냐, 어딘가에는 두 가지의 장점만을 합친 것이 있을꺼야!' 라고 생각하며 또 다른 탐색을 하고 있지 않기를 바란다. 그건 탐색이 아니라, 대가를 치르려 하지 않고 욕심에 끌려 다니는 모습일지도 모르니까. 물론 가끔씩은 대안이 등장할 수도 있다. 하지만 '가끔'을 추구하며 사는 것은 고달픈 일이다. 탐색이 나쁜 것도 아니다. 하지만 탐색하느라 헌신할 기회를 흘려보내는 것은 아쉬운 아쉬운 일이다.

실력과 인격, 그리고 진정성은 중요한 순간에 드러나지만, 이런 멋진 가치들이 형성되는 곳은 평범한 일상이다. 헌신이라는 가치를 추구하면서 만들어진다. 관계도, 리더십도, 전문성도! Y가 온갖 좋은 것들을 창조해 내는 헌신을 추구해 주기를 바란다. 시간과 애정을 들여 작성한 이 글이 그에게 '욕심종결문'이 되기를! '헌신의 세계'로의 초대장이 되기를!


사용자 삽입 이미지  자기실현전문가 이희석 와우스토리연구소 대표 ceo@younico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