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y Story/아름다운 명랑인생

그립고 보고 싶고 아쉬운.

카잔 2011. 6. 12. 10:46


이런 글은 쓰지 않으려 했다. 넋두리가 될 테니까. 이미 나에게는 일상이 된 이야기이고, 누군가에게는 관심 없는 일이니까 정말 쓰지 않으려 했다. 내가 'N 사건'이라 부르는 그 일! 절대(Never) 일어나지 않았으면 하는 일이고, 하지만 일어났으니 다시 일어서서 새롭게(New) 시작하자는 뜻에서 이름붙인 N사건은 2011년 1월 17일에 일어났었다. 20개국을 여행한 사진들, 여러 책의 원고들(나는 몇 권의 책을 동시 집필 중이었다), 와우수업을 진행하며 기록해 둔 내용들, 그리고 강연 PPT들이 모두 지워졌다. 2개월 동안의 복구 작업 결과는 '현재로서는 복구 불가'였다.

N사건은 지금도 여전히 생각난다. 힘들거나 괴롭지는 않다. 이제는 익숙해졌다. 그저 생각이 난다는 것이다. '아, 자료가 있으면 좋을 텐데' 정도다. 하지만 하루 중 딱 한 순간, 아침 샤워할 때에는 진한 아쉬움이 찾아든다. 하루를 시작하는 기운이 샘솟는 샤워 시간은 기분 좋게 하루 다짐을 하는 때다. 그 순간에는 N 사건에 대한 아쉬움이 찾아든다. 어떤 날에는 조금 힘겹기도 하다. '다시 만들어야 하는구나' '아, 책 원고만이라도 건질 수 있으면 좋겠다' '그 사진도 이젠 없구나' 같은 생각이 밀려오는 것이다. 오늘 아침도 그랬다. 뭐 하나 시작하려 할 때마다 떠오르는 N 사건이다.

내가 하지 않으려 했던 이야기는 바로 이런 나만의 넋두리다. 포스팅하게 된 것은 정옥숙 여사 때문이다. 그는 최진실, 진영 남매의 어머니다. 정 여사는 프리랜서 작가의 도움을 받아 책을 냈다. 책을 읽지는 않았다. 그저 몇 문장을 검색으로 읽었을 뿐이다. "유난히 사이좋은 남매였으니 저 먼 곳에서도 서로 의지하며 잘 지내고 있을 거라 믿는다. 하지만 어제도 나는 그 시절 생각이 나서 한숨도 잠을 이루지 못했다. 아름답게 핀 목련만 보아도 하루에도 수 십 번 마음이 내려앉고 바람에 날리는 벚꽃만 봐도 눈물이 난다."

어떠한 심정인지 헤아릴 수 있었다. 나는 교통사고로 하루 아침에 어머니를 여의기도 했고, 굳이 슬펐던 그 시절로 거슬러 올라 가지 않더라도 올해의 N 사건도 그러했기 때문이다. 여사의 슬픔과 나의 슬픔을 견주어보려는 것은 아니다. 그저 할머니이자 어머니인 그녀의 삶에 깊은 공감이 일었던 것이다. 정 여사는 최진실의 자녀 환희, 준희를 키우고 있단다. 그녀는 말한다. "나는 두 아이의 엄마였고, 지금도 두 아이의 엄마이다.” 나의 외할머니도 큰 딸을 떠나 보낸 뒤, 큰 딸의 아들(나)을 다시 자녀처럼 애틋함으로 대하셨다. 느즈막한 연세에 막내 아들이 하나 생긴 것이다. 

정 여사의 마지막 소원은 두 아이를 잘 돌보는 것이었다. "마지막 가는 날까지 그 순간까지 나는 환희, 준희에게 부끄럽지 않은 할머니로 기억되고 싶다. 그리고 다른 세상에서 진실이와 진영이를 만났을 때 엄마가 정말 해야 할 일을 하고 왔다고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꼭 껴안아 주고 싶다." 나의 외할머니도 엄마에게 이런 말을 하고 싶으실 거라 생각하니 눈물이 하염없이 난다. 지난 달, 어버이날을 맞아 할머니에게 선물과 편지를 보냈더니 답장을 보내 주셨다. 편지지 세장에 큰 글씨로 삐뚤삐뚤하게 쓰인 편지글은 두서가 없고, 같은 말의 반복이었다. 미안하다는 말, 사랑한다는 말 그리고 보고 싶다는 말... 정 여사가 쓴 책 제목과도 같다. 『엄마가, 미안해 그리고 사랑해』.

나는 정 여사를 실제로 보았는지도 모른다. 최진실 씨의 장례식에 조문을 다녀왔으니 말이다. 최진실이라는 사람이 세상을 떠난 날, 나는 참 슬펐다. 그녀가 <무릎팍도사>에 나와 새벽에 참 외롭다는 말이 귓가에 울리는 듯 했다. 그래서 조문을 갔고 조의금을 냈고 명복을 빌었다. 그 때 정 여사님을 지나가는 시선으로 보았는지도 모른다. 1945년 생이신 그녀, 오래오래 건강하시어 환희, 준희를 잘 키워 가셨으면 좋겠다. 그리고, 나. 해 오던 일이 싹뚝 싹이 잘린 느낌이지만, 지치지 말고 힘을 내어 다시 키워 나갔으면 좋겠다. 정 여사의 삶에 깊은 슬픔과 공감을 느끼다가 나의 슬픔과도 만났다. 감상적이고 연약한 나의 모습. 

엄마도 그립고, 할머니도 보고 싶고, N 사건에 대한 아쉬움도 진하게 드는 휴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