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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광구>, 시시한 영화 대처법

카잔 2011. 8. 7. 22:18


주의 : 별 내용이 없는 시시한 글일 수 있음.


<7광구>를 보았다. 아쉬운 영화였다. 서사는 비약적이었고, CG는 엉성했다. 영화의 중반부에서부터 흥미를 잃었지만, 하지원의 열연 덕분에 잠들지는 않았다. '7광구'가 무엇인지 전혀 몰랐던 내가, 7광구의 존재와 중요성을 어렴풋하게나마 알게 된 것이 영화가 나에게 준 유익의 전부였다. 

영화를 보다가 결정적으로 흥미를 잃은 대목은 캡틴의 탈출 장면이었다. 해준(하지원 분)의 말처럼, 캡틴은 '현장의 치열함을 모르면서 이론만으로 결정'하는 리더일 뿐만 아니라, 사람들의 마음도 헤아릴 줄 몰랐다. 그리고 자신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부하들을 버린 인간이었다. 

그도 부하들의 절규를 보며 잠시 갈등하긴 했다. 하지만, 선택은 '자신의 목숨'이었다. 캡틴이 부하를 버린 대목에서, 나는 (표현이 좀 이상하지만) 좋았다. 캐릭터가 일관성을 유지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가 몰염치한 인간이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그 상황에서 부하에게 문을 열어 주는 사람이 있다면, 그가 영웅일 것이다.

문제는 다음 장면이다. 캡틴은 잠수정을 타고 석유 시추선을 안전하게 탈출했다. 해저로 서서히 돌진하는 잠수정! 그런데 돌연 괴물이 나타나 잠수정을 습격하여 캡틴을 죽인다. 불의한 자의 비참한 결말에 속이 시원할지는 모르겠지만, 스토리의 리얼리즘은 크게 손상되었다. 괴물을 자신이 쫓던 이들을 잠시 놓아두고 시추선에서 어찌 해저로 한걸음에 달려왔단 말인가.

(시추선 아래로 떨어진 동수(오지호)가 밧줄을 타고 탈출하는 장면, 괴물과 해준(하지원)기나 긴 사투도 사실성이 떨어졌다. 캐릭터 중에는 송새벽과 박철민의 활약이 컸다. 약방 감초처럼 적절할 때마다 웃음과 감동을 주었다. 비중 있는 오지호와 안성기보다 인상 깊은 장면을 연출했다고 생각한다.)


SF  액션 장르에 리얼리즘을 요구하는 건 아니다. 최소한의 스토리를 요구하는 것이다. 서사는 극의 기본이다. <7광구>에는 그 기본이 없다. 석유시추선에 오르게 된 인물들의 사연도 없고, 괴물의 탄생 배경도 시간 설정이 헷갈렸다. 해준과 동수의 러브 라인도 약했고, 위기 대처 상황에서의 등장 인물들이 보여 준 캐릭터의 표현도 악했다.


영화 속 인물들은 자기 캐릭터를 일관되게 표현해야 한다. 표현의 결과로 괴물은 괴물다워야 하고, 주인공은 주인공다워야 한다. 불사조가 되어야 한다는 말이 아니라, 위기나 갈등과 같은 다양한 상황 속에서 자기 캐릭터를 보여 주어 관객의 몰입을 이끌어내야 한다는 뜻이다. <7광구>의 위기는 그저 쫓고 쫓기는 위기일 뿐, 위기를 통한 인물의 캐릭터 표현과 극적인 긴장감을 몰아가는 데에는 실패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정적으로 장르 영화의 승부처가 되어야 할 컴퓨터 그래픽도 엉성했다. 해준과 동수가 오토바이를 타는 장면은 영화가 아니라 게임의 배경처럼 어색했다. 나는 영화에 대한 집중도가 좋은 편이지만, 서너 번은 '저건 정말 CG 티가 너무 나는구만' 하고 생각할 정도였다.
 


결론! <7광구>는 실망스러웠다. 영화 지식이 없어 실망의 원인을 분석할 순 없다. 그저 아쉬운 감정을 나열할 수 있을 뿐이다. 나는 실망의 감정을 나열하기 위해 이 글을 쓴 것인가? 아니다. 질문 하나가 생긴 것이다.
"삶을 살다가 어떤 것에 실망하게 될 때, 어떡해야 하는가?" 흔히들 얘기하는, 실망을 줄이는 법은 기대를 낮추는 것이라는 말에, 나는 동의할 수 없다. 기대감이 주는 떨림과 흥분은 긍정적인 것이니까.

실망을 느낄 때의 대처법은 모르겠지만, 분명한 것은 실망을 줄 만큼 시시한 것들이 세상에 많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인생의 모든 것이 시시한 것이 아님을 기억해야 한다. 세상에는 감탄을 줄 만한 대단한 것들도 많으니까. 시시한 것을 만날 때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자신이 조금씩 시큰둥해지는 것을 막는 것이다. 그리고 대단한 것을 분별할 수 있는 안목을 키우든지, 안목 있는 이들의 조언을 듣기 위해 부지런히 검색하는 일도 필요할 것이다.

시큰둥해지는 것을 막는다는 것은 '에이 한국 영화는 역시 별로야'라고 성급하게 일반화하지 않는 것이다. 방금 보았던 영화가 시시했을 뿐이다. 부분의 특성을 전체의 특성으로 착각할 때, 우리는 편협해진다. 전체에 대한 판단은 섣불리 내릴 수 있는 게 아니다. 그것은 한 사람의 성격이 복합적인 것 만큼이나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그리고 또 하나, 가장 새로운 최신의 것이 항상 가장 좋은 것은 아닐 수 있다는 교훈도 기억하자. 감탄할 만한 대단한 영화를 찾는다면 신작 개봉관만을 찾을 일이 아니라, 영화사에 길이 빛나는 명작을 찾는 게 빠를지도 모른다. 가슴을 뒤흔들 대단한 책을 찾는다면 신간 코너를 뒤적일 게 아니라 인류사라는 시간의 검증을 견뎌 온 고전 한 권을 읽는 게 나을지도.

시시한 영화 하나를 먼저 접한 자로서, 누군가에게 "이것은 시시해요"라고 말하는 것도 의미 있지 않을까? 어쩌면 나는, 시시한 것에 투자한 내 시간에 나름의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런 노력이 부질없는 일이 아니기를 바라면서. 보지 않으려고 했다가 이 글 때문에 '7광구'를 보게 된다면 그것은 또 무슨 상황일까? 인생은 그렇다. 예측불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글: 리더십/ 자기경영전문가 이희석 유니크컨설팅 대표컨설트 ceo@younico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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