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사람은 자신만의 숙명을 안고 태어납니다. '날 때부터 타고나서 이미 정해진 운명'을 숙명이라 부릅니다. 어떤 이는 자신의 숙명을 탓하기도 하지만 부질없는 일입니다. 바꿀 수 없는 것이니까요. 나의 친부는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나는 가난한 가정에서 자랐습니다. 의붓아버지는 술과 여자를 좋아하여 나의 어머니를 불행하게 만들었습니다. 이것은 나의 숙명입니다. 한 때는 바꾸고 싶었지만 결코 그럴 수 없었던 숙.명.
숙명을 탓하지 않는 법을 가르쳐 준 것은 인생입니다. 세월이 지나도, 애써 노력해도 숙명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으니까요. 바꿀 수 없는 것과 바꿀 수 있는 것을 구분하면 인생이 달라지기 시작합니다. 숙명은 바꿀 수 없지만 숙명을 대하는 나의 태도는 바꿀 수 있습니다. 나무들이 결코 자신이 태어난 땅을 원망하지 않듯이 나도 나의 숙명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인고의 세월이 가르쳐 준 교훈입니다.
1911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모리스 마테를링크는 '벨기에의 세익스피어'라고 불릴 정도의 역량 있는 작가입니다. 초기에는 희곡을 많이 썼지만 후기에는 자연을 관찰하여 인생의 지혜를 담은 에세이로 관심을 옮겨 갔습니다. 『꽃의 지혜』가 그런 책입니다. 책에는 이런 구절이 나옵니다. "지금 당신을 괴롭히는 거대한 법칙들 가운데 무엇이 어깨를 가장 짓누르는지요?" 그리고 모리스는 이렇게 이어갑니다.
"식물에게 그것은 너무나도 쉬운 질문입니다. 두말할 나위 없이, 태어나면서부터 죽을 때까지 한 자리에만 붙박혀 있게끔 만드는 바로 대자연의 법칙일 테니까요. 뒤엉킨 뿌리의 어둠으로부터 거슬러 올라 스스로를 형성하고 꽃의 광채로 활작 피어나는 일편단심의 에너지는 그 무엇에도 비할 수 없는 장관을 연출합니다. 오로지 하나의 의지, 아래로 끌어 내리는 숙명에서 벗어나 위로 솟아오르는 일에 자신의 모든 것을 걸지요."
식물들은 빛을 향한 전진을 멈추는 법이 없습니다. 자신을 살아있게 하는 빛을 향하여 힘차게 나아갑니다. 우리를 살아있게 하는 것은 꿈과 희망입니다. 나무가 빛을 향하여 전진하여 결국 자기 하늘을 열어야 생존할 수 있듯이 우리도 꿈과 희망을 추구하여 자기 세상을 열어야 행복할 수 있습니다. 만약 어떤 씨앗이 모태의 바로 곁에 떨어져 어미의 그늘에서 살아간다면 죽어 없어지거나 보잘것 없는 싹을 틔우게 됩니다.
그래서 부모 식물은 씨앗을 멀리 멀리 보내기 위해 저마다의 방법을 고안해 두었습니다. 사람이나 동물의 몸에 달라 붙게 하여 씨앗을 이동시키는가 하면, 작은 바람에도 실려 이동할 수 있는 씨앗도 있습니다. 맛난 열매 속에 '소화되지 않은 씨'를 집어 넣어 두기도 합니다. 그러면 새가 달콤한 열매를 먹고 난 후 먼 곳으로 이동하여 배설하는 것입니다. 식물들은 이렇게 움직이지 못하는 자기 숙명에도 불구하고 씨앗을 멀리 보내기에 성공하고야 맙니다.
식물들은 기발한 아이디어와 노력으로 자신의 숙명을 이겨나갔습니다. 땅에 박힌 채 꼼짝 못하는 가혹한 운명의 주인공에서 스스로의 삶을 개척하여 아름다운 꽃을 피워낸 승리자로 거듭난 것입니다. 도종환 시인의 말처럼, 흔들리지 않고 피어나는 꽃이 없음을 제대로 깨닫습니다. 나는 식물을 닮고 싶습니다.『꽃의 지혜』를 옮긴 성귀수 선생은 꽃의 강인한 정신력에 대하여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꽃은 더 이상 화려한 빛깔과 오묘한 향기로 세상을 즐겁게 해주는 아름다운 꽃송이가 아니다. 어쩌면 천형일지도 모를 숙명에 굴하지 않고 생존 영역을 확장하기 위해 악착같이 머리를 쓰고 계략을 구사하는 삶의 전사다." 삶의 전사, 나는 이 표현이 참 좋습니다. 모두가 맹금이나 야수의 지략을 쫓느라고 혈안이 된 세상에서 한 송이 꽃의 지혜를 배워가면 좋겠습니다. 자기 땅을 탓하기보다는 숙명을 넘어설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고 열심히 노력합시다.
모리스는 단언합니다. "누구든 정원에 핀 작은 꽃 한 송이가 발휘하는 에너지의 절반 만이라도 자신을 괴롭히는 온갖 역경을 극복하는데 투여한다면, 지금과는 아주 다른 운명을 맞이할 수 있을 거라고 믿어도 좋습니다." 꽃이 보여주는 삶의 지혜를 좀 더 얻고 싶다면 『꽃의 지혜』를 읽어도 좋을 것입니다. 이 글로도 뭔가 영감을 얻었다면, 한탄 대신 오늘을 스스로 감탄할 수 있는 하루로 만드는 일에 전념해 봅시다.
날마다 인생의 꽃이 피어나는 아침을 맞이하시기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