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y Story/끼적끼적 일상나눔

지금 어디에 사세요?

카잔 2011. 10. 20. 11:30

5년을 강남구 역삼동에 살았다. 선릉역 5번 출구로 나와 첫번째 골목길에서 우회전하여 경복아파트 사거리로 이어지는 골목길 어딘가에 살았다. 3분만 걸어나가면 테헤란로지만, 사는 곳은 주택가가 밀집된 구역이다. 차를 몰고 나가지 않는다면 교통이 편리한 곳이다. 2호선과 분당선이 가깝고 차를 타고 두어 정거장 가면 9호선을 탈 수 있다. 5분 거리에 선릉공원이 있어 도심에서 숲의 기운을 느낄 수 있고, 집 주변에 수십 개의 카페가 있어 마음 당기는 대로 즐기는 맛도 있다.

역삼동으로의 이사 결정은 난관이 많았다. 월세가 비쌌기 때문이다. 내 형편에는 분명 과분했으니 그 과분함을 설득할 수 있는 나름의 합리적인 이유가 필요했다. 누군가에게 허영심 많은 사람으로 비치고 싶지는 않으니까. 나는 신앙인이기도 해서 '거룩한 이유'도 가져야 했다. 이번 이사가 '하나님이 보시기에 타당한 처사'인지를 묻는 신앙인들에게 내놓을 카드도 필요했던 것이다. 게다가 나를 지켜보는 몇몇의 와우연구원들도 있다. ^^

아! 나는 이렇게 관계와 사회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이것은 한탄이 아니다. 어렵다고 엄살부리는 것도 아니다. 한 사람의 어떤 행동 이면에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원인이 있기도 하고,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진짜 이유를 숨길 수 있는 합리화의 달인이란 점을 말하고 싶을 뿐이다. (문득, BMW를 사고 싶어했지만 사람들의 시선 때문에 구입하지 못하고 있다는 친구의 말이 떠오른다. 그의 형편상 외제차는 과소비로 비칠 위험이 있었다.)

비싼 월세를 낼 만큼 합리적인 이사란 것을 스스로 설득하는 것은 쉬웠다. 나는 늘 회사 근처에 살아 왔으니까. 출퇴근 시간을 무척 아까워하는 나다. 회사가 수서에 있을 때에는 지하철로 7분 거리인 경원대역 인근에 살았고, 회사가 선릉으로 이전하면서 역삼동으로의 이사를 감행한 것이다. 성남과 강남은 세 배에 가까운 월세 차이가 났지만, 나는 '시간이 돈'이라는 관념에 삶으로 동의했다. 출퇴근 시간을 돈으로 산 것이 역삼동으로의 이사였던 셈이다.

거룩한 이유도 있었다. 김용규 선교사님의 『내려놓음』에는 자동차와 집이 전도하기에 가장 좋은 장소라는 언급이 나온다. 집으로 초대해 손대접을 하거나 차로 집까지 데려다 주면서 '좋은 소식'을 전하면 상대방이 어찌할 수 없이 듣게 된다는 이유다. 역삼동 집에서는 성경공부를 하기에 좋았다. 교통이 편리했기 때문이다. 역삼동 집에서는 매주 성경공부 모임을 가졌고, 와우팀원들과의 수업이나 크라스마스 이브 파티를 갖기도 했었다. 

어디에 사세요? 역삼동이요. 좋은 데 사시네요. 아, 네. (그리고 침묵)

종종 어디에 사느냐는 물음을 받을 때가 있다. 역삼동이라 대답하면 가장 자주 듣는 소리는 '좋은 데 사시네요'다. 잘 사시네요, 보다는 우회적이면서도 상대에게 약간의 관심을 표현하는 대답일 것이다. 청담동, 논현동, 삼성동 등의 동네에 살면 잘 사는 것처럼 보이나 보다. (실은 나만 해도 아닌데 말이다.) 좋은 데 라는 말에 별달리 할 말이 없어서 침묵을 하곤 했다. 문제는 언제부터인가 내가 그 말에 으쓱할 때가 있다는 사실이다.

내 안에 '강남'과 같은 좋은 동네에 살고 싶은 욕망이 있는 것은 분명하다. 나는 잘 살고 싶으니까. 하지만 사람들로부터 사는 지역에 대한 부러움을 받고 싶었던 것은 결코 아니다. (어떤 이는 역삼동, 잠실동에 사는 나를 부러워했다.) 사는 동네를 말하고 나면, 동네 집값의 시세나 재테크로 이야기가 이어질 때도 있다. 물론 이런 주제로도 즐겁게 말을 주고 받을 순 있지만, 진정으로 내가 나누고 싶은 주제가 아님은 대화를 하면서도 인식하고 있다. 양평군 양서면 복포리에 살아요, 라고 답할 때에는 전원생활이나 삶의 여유에 대한 주제 등과 같은 대화를 하게 된다.

나는 경제적인 대화보다는 경영적인 대화를 좋아한다. 내가 가진 것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 그리고 목적 달성을 위해 내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인지에 대한 이야기 말이다. 또한 철학적인 대화를 좋아한다. 이것은 어떤 것에 대하여 사색하고 의미를 묻고 나누는 대화다. 내가 만약 누군가를 만날 때마다 대화 주제를 원하는 대로 컨트롤할 수 있다면 '소심하게' 부탁 드리고 싶다. 나에게 '어디에 사세요?'라는 질문을 하지 말기를. 문화 예술의 도시나 전원 마을에 살지 않는 이상, 자칫하면 경제적인 대화로 흐르기 쉬우니까 말이다.

나는 고상함을 추구하는 속물인지라, 강남이든 송파구든 좋은 동네에 살고 싶다. 소심하게 부탁할 수 밖에 없는 이유다. 그곳에 사는 모든 이들이 속물이란 말이 아니라, 내 안의 한 구석이 속물 같다는 말이다. 물론 나에게도 멋진 구석이 있다. 고상함을 추구하며 속물 근성을 벗어나고픈 열망이 있다. 올해 초, 그런 열망과 그간 써온 많은 글들을 갈무리하여 책으로 내자는 현실적인 이유로 인해 역삼동에서 양평 원룸 전셋집으로 이사를 갔다. 

지금은 비즈니스와 편의를 목적으로 서울 잠실에서 사무실을 하나 마련했다. 졸지에 양평에 서재 같은 집을 두고, 잠실에는 사무실을 둔 부자가 된 것이다. 허나, 실속은 없다. 하우스푸어라고 들어보셨는가? 그것이 나다. 내 집이 아닌 전세요, 월세이니 실은 하우스푸어도 아니지만 말이다. 이처럼 속물이 고상함을 추구하다 보니 문제가 발생하기도 한다. 이것은 넘지 못할 장벽이라기보다는 꿈을 추구함에서 오는 난관이다. 속세에 마음을 두고 있는 중처럼 나는 수련이 많이 필요한 사람이다. 고승이 되고 싶어하니까.

이런 나에게 중요한 질문은 '어디에 사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사느냐'다.
지난 5년, 나는 강남구의 부유한 재정에 견줄 만큼 빛나는 삶을 살아왔던가.
부디, 사는 곳에 따라 목에 힘을 주거나 부끄러워 하는 사람이 되지 말자.
내가 살아가는 모양에 따라 하늘 앞에서 부끄러워 할 줄 알고
삶의 모양으로 떳떳한 사람이 되자. 그리하여 사람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펼쳐가자.

당신은 지금 어디에 사는가?
아니, 지금 어떻게 살고 있는가?

사용자 삽입 이미지 글: 리더십/ 자기경영전문가 이희석 유니크컨설팅 대표컨설트 ceo@younico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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