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y Story/아름다운 명랑인생

지금 나는 무엇을 사랑하는가?

카잔 2011. 11. 6. 12:54


나의 첫사랑은 뜨거웠다. 이팔 청춘을 갓 넘겼던 나는 교회에서 만난 여고생 H에게 흠뻑 빠졌다. 짝사랑이었지만 열렬했다. 학교 친구들에게 H 이야기를 자주 했다. 내 일상은 점점 그녀로 채워졌다. 친구들과 3 on 3 길거리 농구대회에 나갈 때의 팀명은 H 이름에서 따 왔고, 시험 기간이면 독서실에서 그녀를 그리워하는 시를 짓곤 했다. 학교 친구들이 일면식도 없던 H에게 관심을 가질 정도였다. 

녀석들은 나만의 '천사'를 보고 싶어했다. 급기야 교회에서 진행되는 행사에 친구들이 참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분명 사건이었다. 그들은 교회를 다니지 않았다. 아니 교회를 안 다닌 정도가 아니라 교회와는 거리가 먼 친구들이었다. 소위 '일진'이라 부르는 친구들! 녀석들은 담배를 태웠고 오토바이를 타고 다녔다. 8명이나 되는 녀석들이 교회로 몰려왔다. 내가 그토록 찬탄해 마지 않는 '천사'를 보기 위하여! 

지금 생각해도 녀석들의 교회 행차가 놀랍고 신기한데 결말은 끔찍하다. 나는 녀석들로부터 맞아 죽을 뻔 했다. "천사가 대체 어디있냐"는 것이다. 그랬다, H는 나에게만 천사였지 친구들에게는 평범한 여학생일 뿐이었다. 친구들은 두고두고 나를 놀렸다. "교회에선 인기 많아" 라고 그녀를 두둔하지도 못했다. 그 때 알았다. 매력이 외모에게만 있는 게 아니라, 리더십이나 영성에도 존재하고, 지적 매력이란 것도 있음을. 

그 사건은 한 여학생에게 흠뻑 매혹당하여 객관적인 시선을 잃어버린, 그리하여 행복하고 그래서 슬펐던 헤프닝이었다. 사랑이 내 마음을 앗아갔고 상상력을 꽃피웠던 것이다. 기실 사랑은 언제나 우리들의 마음을 빼앗아간다. 우리가 사랑하는 것은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우리의 시간과 에너지가 아낌없이 바쳐진다. 우리는 자신이 사랑하는 것에 관하여 생각하고 그것을 붙잡으려고 노력하며 살아간다. 

지금의 나는 무엇을 사랑하는가?


나는 책을 사랑한다. 어젯밤 잠들기 직전까지 『한국의 교양을 읽는다』를 읽었고 오늘 아침에는 한 문화비평가의 글을 읽었다. 인생을 사랑하기도 해서 오전엔 '내 인생을 빛나게 만들 도전 목록'을 작성하기도 했다. 재즈를 사랑하기에 아침의 거실을 부드러우면서도 경쾌한 재즈로 채워 넣었다(델로니어스 몽크의 <Blue Monk> 같은 곡들을). 사랑하는 연인이 떠올라 은은한 그리움을 느끼며 행복해 했고. 


훈련을 사랑한다면 성장과 인격을 얻으리라. 나는 훈련하지 않고 얻는 온전한 성장과 훌륭한 인격을 알지 못한다. 즉흥적인 만족을 사랑한다면 쾌락을 얻는 대신 성장과 인격을 포기해야 할 것이다. 쇼핑을 사랑한다면 많은 시간을 다른 사람이 잘 구별하지도 못하는 액세사리와 화장품을 고르느라 시간을 내어줄 것이다. '사랑'을 사랑한다면 오래 참고 온유함을 선택하며 만나는 이들에게 배려를 선사하리라. 


누군가가 무엇을 사랑하는지 알면 그의 내일을 가늠할 수 있을 것 같다. 생각에 여기에 이르니 다시 묻게 된다. '나는 지금 무엇을 사랑하고 있는가?' 더없이 중요한 물음으로 다가온다. 내가 오늘 무언가를 계획할지라도 삶의 변화는 그 계획이 아니 지금 사랑하는 것들로부터 형성되리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사랑은 흔적과 결과를 남긴다. 학창시절의 사랑은 70~80편의 시, 애틋한 추억 그리고 허접한 성적을 남겼다.


내게 속삭이듯 당부했다. 아름다운 흔적과 의미 가득한 결과를 남기는 것들을 사랑할 것! 성실하고 진솔하며 노력하는 사람들을 사랑할 것! 아마도 인생이라는 여행은 사랑으로 빛나고 사랑으로 휘청할 것이다. (사랑하는 순간의 정열이 부담스럽고, 사랑 이후에 들이닥칠 상실이 두렵지만) 그래도 나는 다시, 사랑이다. 몹시 아끼고 귀중히 여기는 사람이나 사물이 없다면, 다시 말해 사랑이 없다면 인생은 무엇이란 말인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연지원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