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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책의 날 기념하기

카잔 2012. 4. 23. 23:57

그냥 넘어가려니 허전하고, 그렇다고 해서 딱히 할 말이나 하고 싶은 일이 있는 것도 아니다. '세계 책의 날' 말이다. 1995년 유네스코 총회는 매년 4월 23일을 '세계 책과 저작권의 날'(정식명칭)로 정했다. 무엇을 위함인가?


“유네스코는 독서 출판을 장려하고 저작권 제도를 통해 지적 소유권을 보호하는 국제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 기념일은 독서와 저술 및 이와 밀접히 연관된 저작권의 증진에 기여하면서, 책의 창조적, 산업적, 정책적, 국내적, 국제적 측면 등 다양한 면모를 끌어내는데 그 목적을 가지고 있다.”(시사상식사전, 박문각) 책을 많이 읽자 그리고 지적 소유권을 보유하자. '세계 책의 날'을 정한 까닭이다.

 

책을 사는 사람에게 꽃을 선물하는 스페인 까딸루니아 지방 축제일인 '세인트 조지의 날(St. George's Day)'이 4월 23일인 데서 유래했단다. 대문호 셰익스피어와 세르반테스가 사망한 이 날은, 독서를 즐기는 이들에겐 알쏭달쏭한 날이다. 나만 그런지도 모르겠지만, 이 날을 기념해야 하는지, 축하해야 하는지, 감사해야 하는지 아니면 절판된 책들과 저작권 침해를 당한 책들에게 묵념해야 하는지 애매하다.


세상 사람들은 이 날 무얼 하나 살펴보니 사랑의 책 보내기 운동, 기부 행사 등을 진행했더라. 문학사에 길이 남을 두 거장이 같은 해, 같은 날(1616년 4월 23일)에 죽었다는 사실보다 독서 장려와 지적 소유권 보호야말로 책의 날을 기념하는 현재적 의미일 것이다. 개인적 차원에서도 책의 날을 기념할 수는 있으리라. 나에게 큰 영향을 미친 책들을 꼽아보고 재독할 만한 책을 고르거나, 새해가 100일 남짓 지난 시점이니 남은 한 해를 위한 독서 계획을 다듬을 수도 있겠다.

 

'책의 날엔 무엇보다 독서를 해야지' 라는 생각에 오랜만에(2~3일 만이다) 책을 읽었다. 하워드 진의 역사책인데 재미났다. 세계 책의 날을 맞아 당분간이라도 책을 열심히 읽겠다는 다짐으로 책장을 서성이며 몇 권의 책을 뽑았다. 『나를 부르는 숲』, 『여유의 기술』, 『아직도 가야 할 길』, 『마음』, 『프로이트의 의자』. 다음 달에 읽고 싶은 책 다섯 권이다. 5월이어서가 아니라, 고르다 보니 이른 임의적 수치다. 한 달에 5권을 읽는다면 참 좋겠다는 염원도 든다. 


늘 그래왔듯이 계획을 세울 땐 의지에 불타오른다. 일주일도 가지 못해 시들해질 텐데……. 책을 읽는 것만으로는 뭔가 아쉬워서 기분을 좀 냈다. 내겐 힘든 일이지만, 책 기부 행사를 추진했다. 10권의 책을 선물하고픈 사람에게 전하는, 작고 소박한 개인 행사다. 내가 부재중이던 날에 사무실로 헛걸음한 부부에게는 두 권을 선물했다.

 

책의 날에 뭔가를 끼적이다 보니 하고 싶은 일이 있었음을 깨달았다. 서점 대쇼핑! 나는 교보문고 카트를 끌고 다니며 읽고 싶은 책들을 몽땅 쓸어 담았다, 라고 쓰고 싶다. 그러지 못했다. 책 구입을 자제하고 있는 요즘이다. 서점에서 쓸어 담을 순 없으니, 서재에서 그 일을 해야겠다. 이번 주말에 방의 먼지를 쓸어 담으며 책 정리나 해야겠다. 이제 됐다!


‘책을 좋아하고 독서를 즐기는 이로서 세계 책의 날을 그냥 보낼 순 없지!’ 라는 출처 불명의 생각 탓에 뭔가 아쉬웠는데, 책을 읽고 책을 선물하고 독서 계획을 세우고 나니, 마음의 짐을 덜어낸 기분이다. 나는 출판 관계자도 아니고 책의 날과 별반 관계도 없는 사람인데도 괜한 부담을 느낀 것은 하루도 허투루 보내고 싶지 않은 마음이었다.


난 의미를 찾고 배움을 얻어야 사는 사람이니까. 실오라기 같은 의미라도, 그것이 과연 ‘의미’라면 아리아드네의 실타래가 되어 삶의 이유와 일상의 기쁨으로 이끄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