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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고> 재밌는 영화사 이야기

카잔 2012. 7. 15. 18:05

 

영화 <휴고>는 한 인물, '조르주 멜리에스'에 대한 궁금증을 갖게 했다. 영화의 역사에 무지한 내게, 그는 생경한 인물이었다. (어쩌면 영화인들에게도 가물가물한 이름일지도. 하나의 산업에 종사하는 이들이 모두 그 산업의 창시자를 기억하는 건 아닐 테니까.) 생경한 인물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것이야말로 <휴고>를 연출한 마틴 스콜세지의 목표였으리라.

 

뤼미에르 형제가 영화를 발명한 1895년, 조르주 멜리에스는 서른 네살이었다. 마술사였던 그는 영화라는 새로운 기술에 흥분했다. 곧장 카메라를 구입하여 트릭과 기술을 활용한 단편물을 만들었다. 그는 세계 최초의 영화 종합촬영소를 세우는 한편, 500여편의 영화를 만들어 1900~1910년대의 영화계를 이끌었다.

 

조르주 멜리에스의 만년은 비교적 평범했거나 초라했다. 영화 <휴고>에서, 그는 장난감을 팔고 수리하는 일을 하며 아내와 함께 사는 노인이다. 그가 영화와 무관하게 살게 된 가장 큰 이유로, 세계대전의 결과로 사람들의 영화와 같은 여가에는 더 이상 관심을 갖지 않게 된 까닭을 들었다. 영화에서는 그의 만년을 무난하게 그려낸 셈이다.

 

네이버 백과사전이 말하는 조르주의 만년은 조금 다르다. "변화없는 트릭 기술의 반복과 개인적인 기술자 기질을 고집하였기 때문에 나중에는 부진하여 만년은 빈곤하였다." 모든 사람의 성공과 몰락은, 환경적인 요인 뿐만 아니라 개인의 재능적 요인과 불찰이 어우러진 결과임을 감안할 때, 마틴 스콜세지가 그려낸 조르주는 조금은 미화되었을 거란 생각이 든다. 영화 <아티스트>의 주인공인 '조지'처럼 계속 자신의 견해를 고집했을지도 모르니까.

 

"고된 작업이었지만 즐거웠다.

그의 이야기를 그려내는 것은 기념비적인 일이었고 영광스러웠다." - 스콜세지 감독

 

미화라도 좋다. 감독으로서, 자신이 존경하는 인물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되기도 하고, 전부가 아닌 일부를 보인 것이지 과장이나 거짓은 아닐 거라는 짐작도 들기 때문이다. 스콜세지는 "영화의 모든 것은 조르주 멜리에스로부터 시작되었다고 생각한다"고 말한 바 있다. 난 미화에 신경쓰이기보다는 조르주의 명성을 복원해낸 연출력에 놀랐다.

 

영화의 후반부에는 '조르주가 만든 영화'가 여럿 등장한다. 나는 그 영화를 '구닥다리'가 아닌 하나의 '작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조르주가 영화사에 남긴 업적에 감동했다. <휴고>라는 영화가 아닌 다른 곳에서 조르주의 영화를 보았더라면, 유치하고 기술력 떨어지는 영화 정도로 스쳐지났을 법한데, <휴고> 덕분에 당대의 의미를 느끼며 감상했던 것이다.

 

영화를 보며, 역사를 접할 때의 태도를 생각했다. 역사 속의 무언가를 평가하거나 접하게 될 때면, 현재의 관점이 아닌 당대의 관점으로 바라보아야 한다는 것을. 또한 당대에 어떠한 변화와 의미를 주었는지를 살펴보아야 한다는 점을. 스콜세지는 나를 80년 전으로 데리고 가서 당대의 시선으로 조르주와 그의 영화를 바라보게 만들었다. 

 


영화의 전반부에서는 소년 '휴고'에게 집중되었던 시선이 후반부로 가면서 '조르주'에게로 옮겨갔다. 흐름은 부자연스럽지 않지만, 영화 제목이 <휴고>인데다 초반부에 워낙 '휴고'를 위주로 진행되던 영화였기에 극장 문을 나설 때에는 제목의 적합성을 잠시 생각했었다. 감사 혹은 존경을 뜻하는 프랑스어, '오마주'를 제목으로 하면 어땠을까? 

 

나에게도 오마주의 대상이 있지 않을까?

 

영화를 보고나서 떠오른 질문이다. 문필가와 작가 몇 명이 떠올랐다. 아직은 깊이 존경할 만큼 잘 알고 있는 이들이 없다는 사실이 아쉽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했다. 부끄러웠던 것은 삼십 대 중반 즈음이라면, 관심 있는 인물에 대한 공부를 깊이 해 둘만한 것 같기도 해서다. 이런 류의 생각을 할 때마다 '공부하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걸 보니, 공부는 내 운명인가 보다. 아니면 이루지 못할 염원이던가.

 

'영화'라는 매체의 힘에 대해서도 새삼 다시 생각했다. 다큐멘터리로도, 책으로도 전할 수 있겠지만 영화로 전달하는 힘은 그것들과는 또 다른 힘이 있다는 생각을. 처음 하는 생각은 아니지만, 폭넓은 대상에게 다가서는 힘이 다른 매체보다 뛰어나다는 생각에 영화를 좀 더 자주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교육자인 내게 영화는 괜찮은 교육 도구가 될 테니까.

 

자신의 대선배에게 바치는 오마주인 <휴고>는 영화의 탄생과 초창기의 역사를 긴장감 있는 스토리로 맛볼 수 있는 영화다. <휴고>에 이어 <아티스트>를 본다면 영화의 탄생에서부터, 무성영화에서 유성영화로 넘어가는 시대까지의 영화사를 공부하는 셈이 된다. 영화의 역사에 관심 있는 이들에겐 좋은 공부꺼리가 되는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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