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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도서] 시대정신과 지식인

카잔 2012. 10. 1. 17:11

 


본 글은 '조르바'라는 필명으로 <책을 이야기하는 남자>라는 아이폰 앱에 게재한 글입니다.

 

 

* 김호기, 『시대정신과 지식인』, 돌베개, 2012.

 

시대를 뒤흔든 지식인들의 이야기

 

책의 제목부터 설명하고서 글을 시작해야겠습니다.

"시대정신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한 시대의 문화적 소산에 공통되는 인간의 정신적 태도와 양식 또는 이념을 말한다. 시대정신은 한 사회의 발전에서 북극성의 역할을 담당한다. 어느 사회든지 시대정신을 어둠 속 망망대해에서 가야 할 길을 알려주는 북극성처럼 미래 좌표로 삼아 앞으로 나아가기 마련이다. 이러한 시대정신을 주조하는 이들이 곧 지식인이다."(p.15)

우리 현대사의 시대정신은 산업화와 민주화였고, 최근에는 '복지국가 구축'이라는 새로운 시대정신을 둘러싸고 보수적 지식인들과 진보적 지식인들이 논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경제민주화'가 복지국가라는 시대정신의 주요한 키워드로 부상했지요. 저자는 시대정신의 모색이야말로 지식인의 소명이라고 말합니다.

<시대정신과 지식인>은 일차적으로 대한민국의 역사에 깊은 족적을 남긴 24명의 지식인들을 소개한 책입니다. 원효와 최치원에서부터 함석헌과 노무현에 이르기까지, 모두들 읽을꺼리와 배울꺼리가 풍성한 면면들입니다.

저자는 지식인들을 단순하게 나열하지 않고, 그 지식인이 당대에 영향을 미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를 시대정신이라는 화두로 풀어냅니다.

어떤 지식인이건 시대의 산물일 수 밖에 없고, 뛰어난 지식인일수록 자기 사회의 문제를 직시하고 대안을 모색합니다. 한 명의 지식인을 이해하고자 할 때, 그 지식인과 함께 그가 활동한 시대를 함께 공부해야 하는 까닭입니다.

<시대정신과 지식인>은 지식인과 당대의 시대상을 함께 엿볼 수 있습니다.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입니다. 연구자들을 위한 학술서가 아니라 시민들을 위한 교양서로서, 한 권으로 시대의 주요 사상과 지식인들을 개략적으로 일갈할 수 있는 책입니다.

또 하나의 미덕은 저자의 균형감각입니다. 어떤 균형감각인지를 설명하기 위해 책날개에 쓰인 저자 설명을 옮겨보겠습니다.

"1960년 경기도 양주에서 태어났다. 연세대학교 사회학과와 대학원을 졸업하고 독일 빌레펠트대학교에서 사회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1992년 이래 연세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정치사회학, 시민사회론, 현대사회론 등을 가르쳐 오고 있다."

설명은 저자가 제도권 지식인으로서 엘리트의 길을 걸어왔음을 보여줍니다. 탄탄한 '이론'적 기반으로 사유하는 훈련이야 기본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면서도 저자는 비제도권 지식인들의 사상과 '활동'에 가치와 의미를 부여하는 균형감각을 가졌습니다. 함석헌과 장일순을 설명한 챕터의 끝부분에서 그는 이렇게 적어두었습니다.

 

"아카데미의 관점에서 함석헌과 장일순의 사상은 여전히 거칠고 불완전한 것으로 보일지 모른다. 하지만 두 사람은 전문적 지식인을 자처한 이들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들은 현실 속에서 민중과 함께하며 그들의 목소리를 자신의 사상으로 대변하고자 했다. 두 사람의 사유가 거칠다는 것은 그만큼 순수함을, 불완전하다는 것은 그만큼 창조적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나는 이 대목에서 깊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이론이 거칠다는 이유로 폄하하기가 쉽지, 저들의 소명을 이해하고 저들의 관점에서 의의와 영향력을 기술하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1990년대 후반에 저자의 공저 <현대 비판사회이론의 흐름>을 흥미있게 읽은 나로서는 더욱 호감을 갖게 되었습니다.

책은 24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각 장은 두 사람의 지식인을 대조하여 시대정신을 설명합니다. 모든 장은 내용상으로 세 부분으로 나뉘어집니다. 1) 두 사람의 지식인을 선정한 이론적 배경, 2) 지식인들의 삶과 사상, 3) 저자의 답사 이야기가 그것입니다.

배경설명 부분이 조금 어려울지도 모르겠습니다. 사회학 이론이나 역사를 이해하는 틀처럼 이론적인 대목이 많지만, 짧은 분량의 핵심적인 설명이라 집중하여 읽으면 재밌을 겁니다. 삶과 사상에 관한 내용들은 쉬이 읽힙니다. 게다가 저자가 관련 장소를 찾아간 이야기를 가미해 두어 읽는 맛이 더해집니다.

대한민국 국가대표급 지식인 24명의 삶과 사상을 훑어보는 것만으로도 일독의 가치가 있겠지만, 이왕이면 한 권의 책을 쓰게 된 저자의 집필 목적을 건져내면 더욱 효과적인 독서가 되겠지요. 저자가 이 책을 쓴 소망은 두 가지입니다.

"이 책이 갖는 소망은 두 가지다. 첫째, 우리 역사 속에서의 시대정신을 탐구함으로써 그 현재적 의의를 생각해보고 싶다. 둘째, 시대정신 탐구에서 지식인의 역할을 생각해 보고 싶다."

 

관심이 가는 책이라면, 저자의 소망을 품고 읽어보기를 권합니다. 놀기에도, 책읽기에도 맞춤한 가을이잖아요. 책을 읽다가 저자의 발걸음을 따라가고 싶다면 훌쩍 답사여행을 떠나도 좋을 것입니다.

- 한때 지식인을 꿈꾸었던, 조르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