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y Story/거북이의 자기경영

부석사에서 배운 공부의 원칙

카잔 2012. 10. 16. 12:54

 

부석사 무량수전의 왼쪽으로 난 계단은 조사당으로 오르는 길이다. 조사당에 올라 경내를 내려다보면 무량수전과 안양루를 비롯한 부석사 전체가 보인다. 해가 서산으로 넘어가는 장관이 가장 잘 보이는 지점이기도 하다. 맑은 날이면 일몰시간이 다가올 무렵, 사진가들이 모여서 셔터를 연신 눌러대는 곳이다.

 

가족과 함께 부석사에 갔던 날, 볕이 좋았다. 그 날도 일단의 사진가들이 모여 있었고, 무리 중 한 사내가 지령을 내리면 다른 이들은 그 말에 따라 카메라를 조작하여 셔터를 눌렀다. 아마추어 사진가들이 한 명의 프로 사진가에게 배우고 있는 모양이다. 그룹 옆에는 또 다른 사진가들이 카메라 렌즈로 석양을 쳐다보며 순간을 포착하고 있다.

 

 

나도 저만치 떨어져 사진을 찍고 있었다. 어느새 그들 모두가 내 곁으로 왔다. 모두가 같은 포즈로 셔터를 눌러댔다. 아마추어 중에서도 초보인 듯한 아주머니가 말했다. "(사진에서) 해가 사라졌어요." 왜 그런지는 나도 모른다. 나 역시 허접한 사진촬영 실력이니까. 그녀는 사진이 한 번은 검게, 한 번은 너무 밝게 나온다며 주변 사람들을 채근했다.

 

사진가들은 일몰의 순간이 짧음을 안다. 그녀에게 기계 조작 따위를 가르치기 위해 셔터를 멈추는 사람들이 없었던 까닭이다. (아주머니에겐 미안한 말이지만, 그녀는 젊은 미인도 아니었다.) 그나마 친절한 사내 한 두 명이 카메라에 눈을 붙인 채로 셔터를 누르면서 말했다. ISO를 100으로 하고, 셔터 스피드를 높여요, 라고.

 

하지만, 그녀는 카메라를 조작할 줄 몰랐다. 그녀는 친구인 듯한 옆의 여인에게 말했다. "넌 뭘로 놓고 찍니? 에이 모르겠다. 그냥 P로 놓고 찍자." 옆의 사내 한 명이 "M으로 두고 맞춰야지요"하는 말에도, 그녀는 어찌해야 하는 줄을 몰랐다.  나 역시 ISO를 100으로 맞추긴 했지만, 셔터 스피드 조절을 못하고 있었다. 

 

아주머니는 가르침을 받았지만, 가르침을 활용할 만한 기초지식이 없었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이건 배울 준비가 안 된 것이다. 배운다는 것은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행위다. 기초지식을 갖춘 이들이 좋은 가르침을 만날 때 공부효과가 극대화 된다. 영어에 대한 기본기를 갖춘 학생이 어학연수에서 더욱 많은 효과를 거두는 이치다. 


기초지식을 쌓는 노력이 좋은 가르침을 만나면 효과적인 공부가 이뤄진다

 

이것이 부석사에서 스쳐 지나간 아주머니에게서 배운 교훈이다. 이것은 글 하나 쓰면서 지나치고 말 주제가 아니다. 그래서 집으로 돌아온 후, 카메라 사용설명서를 꺼내어 M 모드에서의 셔터 스피드 조절법을 익혔다. 고작 2~3분이 걸렸다. 이 간단한 걸 미뤄두고 있었다니! 이걸 익혀 두었더라면 부석사에서의 고수들의 팁을 활용할 수 있었을 텐데... 아쉽다.


노하우를 전수받아도 그걸 활용할 지식과 기술이 없으면 무용하다는 걸 부석사에서 절실히 느꼈다. 좋은 가르침을 받을 만한 사람이 되는 것이 중요하다. 그것은 다름아닌 기본기를 연마하는 일이다. 평소에 기본기를 닦아두면, 공부할 기회마다 한껏 배우게 된다. 평소에 영어회화를 익혀 두면, 여행에서 만난 외국인 친구와 제대로 대화할 기회를 얻게 된다. 

 

노력을 하지 않고 무언가를 얻겠다는 욕심은 배우는 이에게 걸맞는 태도가 아니다. 누군가가 순식간에 내게 기술과 지식을 전수해 주기를 기대해서는 안 된다.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것은 과정의 즐거움을 앗아가는 일이고, 자연법칙을 위반하는 일이다. 배우고 싶은 것들의 기초지식과 기본적인 기술은 무엇인가? 그걸 부지런히 익혀두자.


좋은 가르침 없이 배우기란 힘든 일이다. 홀로 노력하는 일 없이 배우는 것도 역시 힘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