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y Story/거북이의 자기경영

마르케스의 치매 소식을 듣고

카잔 2012. 12. 28. 08:46

 

올해(2012년) 여름, 지구 반대편에서 아련한 슬픔을 느끼게 하는 소식이 날아왔다.

 

“화학치료 요법이 형의 목숨을 살렸지만, 형의 신경과 세포들은 파괴했습니다."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를 두고, 그의 동생이 한 말이다. 치매는 마르케스 집안의 가족력이란다. 동생은 형이 1999년에 진단받은 림프관 암의 치료 과정에서 치매가 악화되었다고 말했다.

 

안타까운 말도 전했다. “형이 자서전 2부를 쓰지 못하게 될 것 같아 유감입니다.” 마르케스는 림프관 암에서 완쾌되고 난 후, 자서전을 써야겠다고 생각하여 3부작 중의 1부를 발표했다(2001). 책은 국내에도 『이야기하기 위해 살다』라는 제목으로 번역됐다.(2007)

 

하지만 많은 위대한 작가들처럼 마르케스 역시 자서전을 미완성으로 남겨두고 떠날 것 같다. 그렇다면 그의 마지막 소설은 동명의 제목으로 영화화(2012)되기도 했던 『내 슬픈 창녀들의 추억』(2004)이다. (마지막 평론집이 있기는 하다. 노벨평화상 30주년을 맞아 『가보, 저널리스트』라는 책이 출간(2012)되었으니까. 이 책은 아직 국내에 번역되지 않았다.)  

 

DAUM 인물지식의 이 사진은, 마르케스가 아닌 영문학 비평가 '제럴드 마틴'인 것 같다.

 

최고의 작가에게서 더 이상 새로운 작품을 기대할 수 없다는 사실이, 복합적인 감정을 안긴다. 최소한 세 가지다. 1) 우선 안타까움 혹은 슬픔이다. 마르케스는 노벨문학상을 수상(1982년)한 콜럼비아 출신의 세계적인 작가다. 그의 대표작인 『백년 동안의 고독』은 20세기 후반기의 최고 걸작으로 꼽힌다. 현존하는 거장 중의 거장이라는 말이다. 

 

진짜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하지만 더 이상 작품을 써내기가 힘든 거장이 되었다. 본인께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문단에게는 슬픈 일이다. 나의 장점 중 하나가 '감정이입'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지금,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일을 더 이상 할 수 없게 된 마르케스의 입장이 되어 있다. 또한 마치 내가 '문학계' 그 자체가 되어 내게 좋은 작품을 안겨다 줄 작가를 잃을 것 같아 안타까워하고 있다. 

 

2) 두번째의 감정은 부러움 혹은 경탄이다. 미완성을 남기고 간다는 것은, 생의 마지막까지 집필에 매진할 작품을 구상하고 있거나 실제로 집필을 했었다는 말이다. 나는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었던 마르케스의 생이 부럽다.

 

서가에 꽂힌 『이야기하기 위해 살다』에는 띠지가 둘러쳐 있고, 다음과 같은 말이 적혀 있다. "소설을 쓸 것인가 죽을 것인가" 작가가 아닌 사람들에게도 적용될 말로 고쳐 쓰면 이렇게 될 것이다. "당신이 세상에 태어난 그 이유를 위해 살 것인가, 죽을 것인가" 그 이유를 힘써 추구하며 살다가 죽는 것은 좋은 인생을 가늠하는 척도 중 하나다.

 

3) 마지막 감정은 다짐 혹은 열정이다. 언젠가는, 누구나, 떠나기 마련이다. 이러한 인생의 진실은 무상함의 감상으로 빠져들게 되는 원인이기도 하지만, 좋은 삶을 향한 훌륭한 자극과 열정으로 빚어낼 수도 있다. 유한하다는 자각이 삶의 방향성과 살아가는 태도를 점검해 주는 것이다.

 

지구 반대편에서 날아온 소식이 내 일상에 한동안 머물렀다. 머나먼 멕시코발 소식이지만 강 건너 불 구경을 하는 느낌이 아니라, 벽을 타고 전해지는 이웃집 사람들의 기척소리처럼 가까이 느껴졌다. 그 느낌은 성가신 것이 아니었다. 이 벽 너머에도 사람이 살고 있구나, 하는 존재감의 인식이고, 나와 그가 모두 유한한 존재임을 자각하는 느낌이었다.

 

한 명의 거장이 떠나가는 모습 속에서 

내 인생도 자신만의 속도로 유유히 흘러가고 있음을 생생히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