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y Story/나름대로 예술만끽

사람답게 사는 비결 하나

카잔 2013. 3. 20. 17:52

 

사람답게 사는 비결 하나, 꿈에 도전하기!

- 영화 <파파로티> 감상기

 

파파로티

 

1.

영화 <파파로티>는 두 개의 테마로 즐길 수 있는 영화다. 하나는 '꿈꾸는 자의 행복'이고, 다른 하나는 '사제지간의 우애'다. 성악가를 꿈꾸는 깡패 이장호(이제훈 분)에게 감정이입이 되면 영화를 보는 내내 자신의 꿈을 생각할 것이고, 성악 천재의 길을 걷다가 성대 결절로 인해 꿈이 좌절되고 지금은 시골 예고의 시니컬한 음악 선생이 된 나상진(한석규 분)에 몰입하면 제자를 거두어가는 선생 이야기에 감동할 것이다.

 

2.

나는 <파파로티>를 보는 내내 꿈을 생각했다. 노래 부를 때 장호가 행복해하는 표정을 보면서 '그래 저것이 꿈을 꾸는 자의 모습이지' 생각하며 니체의 말을 떠올렸다. "자신의 길을 걷고 있는지는 그 걸음걸이를 보면 알 수 있다. 내가 걷는 것을 보라. 자신의 꿈을 향하는 자는 춤을 추며 걷는다." 장호는 춤을 추며 걷는 사람이었다. 예쁜 친구 숙희(강소라 분)가 곁에 있어도 홀로 꿈을 향해 춤추며 나아가는 장호가 부러웠다.

 

부러움. 이것은 영화를 이해하는 중요한 키워드 중 하나다. 영화 속 등장인물들은 꿈을 가진 자, 자기 재능을 찾아 꿈을 향해 전진하는 장호를 부러워한다. 장호의 형님과 선생이 장호를 부러워하는 장면을 기억나는 대로 옮겨본다.

 

Scene #.1

패스트푸드점에서 장호와 그를 거두는 형님 창수가 대화를 나눈다.

 

창수 : (주위를 둘러보며) 장호야 여기서 제일 가장 불쌍한 사람 같냐?

장호 : (둘러보지만 선뜻 대답하지 못한다.)

창수 : (부드러운 목소리로) 내다, 임마! 난 꿈이 없잖아. 인생을 살며 뭘 할지, 아니 당장 내일 뭐 할지도 모른다 아이가. 나는 니가 부럽다.

 

Scene #.2

음악 선생 상진과 그의 학생이 된 장호가 나누는 대화.

 

상진 : 네가 우리 집에서 처음으로 노래 불렀던 날, 내가 왜 아무 말이 없었는지 아니? 내가 부러워서 그랬다. 네 재능이 부러웠어.

장호 : (엉엉 울면서) 내 보고 이래 말해준 사람 처음입니다. 아무도 그렇게 말해 준 사람이 없었습니다.

 

거듭 말하지만 나는 장호가 부러웠다. 꿈을 쫓아 열렬히 나아가는 그 모습이 참 부러웠다. 세상 부러움 없이 사는 법은 꿈을 추구하면서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사는 길이다.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면서도 누군가를 부러워할 수는 있지만, 세월이 지날수록 그도 깨닫게 되지 않을까? 하고 싶은 일을 하며 마음 편히 사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이고 행복인지를.

 

3.

장호는 처음부터 끝까지 꿈을 추구했다. 목숨을 내놓으면서까지 꿈을 포기하지 않았다. 언제까지나 학업과 조직이라는 두 마리의 토끼(?)를 쫓을 수는 없음을 깨달은 장호는 큰 형님을 찾아갔다. 조직에서 자신을 내보내달라고 애원했다. 장호는 사시미를 탁자에 올려놓으며 이렇게 말했다. "노래를 하지 못할 바에는 저를 죽이셔도 형님을 원망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노래를 못하면서 저를 살리어 이곳에서 지내게 하시면 형님을 원망할 것 같습니다."

 

실제 조직에서는 일어날 수 없는 장면이라 비현실적이라 생각했지만,(실제 스토리는 학생이 큰 형님을 찾아가는 게 아니라, 그냥 조직과 연락을 끊었다가 형님들이 집으로 찾아와 흠씬 두들겨 패는 것으로 정리된다.) 장호의 꿈을 향한 목숨을 건 열정에 내 마음이 움직였다.

 

나 역시 진부하고 식상한 질문을 나에게 던졌다.

'너도 가진 것을 모두 걸고 꿈을 향해 전력을 다해야 하지 않겠냐? 일생에 한 번이라도.'

식상한 질문이라고 해서 그 답이 무의미하거나 영향력이 없는 것은 아니다. 나는 이 질문에 나를 세워야 했다. 물음에 뜨겁게 답하지 못한다면 나를 화끈하게 혼내고 싶다.

 

4.

큰 형님 앞에서 장호가 칼을 꺼내 든 것은 영화 초반부에서 짐작했다. 초반부 장면은 이렇다. 장호가 조폭에 들어온 계기를 보여주는 장면이다. 고등학생 장호가 홀로 조폭 일당을 잡아 족쳤을 때, 큰 형님은 부하들에게 분을 내면서도 장호의 깡을 높이 샀다. 그리고 조직의 2인자인 창수에게 네가 장호를 거둬보라고 명한다. 

 

창수(조진웅 분)는 인간적인 면모를 지닌 깡패로 나온다. 조직에 들어오게 된 장호와 함께 식사를 하며(실제로는 식사를 먹이는 듯한 자상한 형님처럼 나온다), 조직 입문을 신중히 결정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니 깊이 생각해 보거래이. 여기가 들어올 때는 헐거워도 나갈 때는 목숨을 내놓아야 한다."

 

장호는 먹느라 정신이 없다. 눈 앞의 음식과 혼자 사는 외로움을 해결해 주는 소속감에 이미 마음이 열린 장호가 조폭 입단의 의미를 헤아리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그렇게 장호는 그렇게 조폭이 되었고, 그 결정이 그의 성악 인생에 큰 걸림돌이 된다. 영화 같은 이야기지만,실화도 이와 비슷하다. (실제 주인공은 '김호중'인데, 앞서 언급한 조직에서 나오게 되는 과정과 인물을 제외하면 영화 스토리와 큰 차이가 없다.)

 

장호의 모습은 대다수 사람들의 현실과도 닮았다. 많은 사람들이 꿈을 모른 채로(혹은 가지고 있지만 현실적인 이유로) 직장 생활을 시작한다. 매월 월급을 받고 그 월급으로 맛난 음식을 사 먹고, 자신을 드러낼 물건을 사들인다. 이런 삶의 패턴이 꿈을 향해 도전하려는 이들의 발목을 잡는다.

 

소비 규모가 늘어났고, 익숙해진 소비 수준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직장 생활을 쉬이 관둘 수가 없기 때문이다. 문자 그대로의 생사가 걸린 장호보다는 낫겠지만, 쉬이 빠져나오지 못한다는 점에서는 장호와 비슷한 상황이다. 멀리 내다보지 못하고 깊이 생각하지 못하고 결정해버리는 사이에 우리는 스스로 꿈의 실현을 방해하는 장애물 만들어버린 것이다.

 

5.

영화 <파파로티>는 대중성을 지향했다. 그리고 성공했다. 재밌고 감동적이었다는 말이다. 작품성이 떨어지는 대목이 더러 있었지만, 애초의 목표가 대중성이었을 테니 이해한다. 작품성이 뛰어나려면 표현 방식이 다르거나 주제의식이 첨예해야 한다. 

 

<파파로티>를 보면서, 예술성이 뛰어나다고 해서 반드시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는 것은 아니라고 믿게 되었다. 진부한 대목과 비현실적인 대목인데도 나는 그런 장면들에서도 감동을 받았고 삶의 열정과 내 삶을 돌아볼 기회를 얻었다. 진부한데도 생각꺼리를 감동을 받다니! 내게는 충격적인 순간이었다.

 

패스트푸드 점에서 창수가 장호에게 선생님이 큰 형님을 찾아왔더라는 말을 한 것, 큰 형님과 창수의 마지막 대면에서 창수를 보내주는 장면, 대회에 참가하는 창수가 상대편 조폭을 만난 장면 등은 뻔했다. 비현실적인 장면도 더러 있었다. 이를 테면, 이런 대사는 조폭의 큰 형님 답지 않게 너무 낭만적이다.

 

"십년 안에 세상 종자들 다 알아보는 그런 인간이 안 되어 잇으면 네 모가지와 선생 발모가지를 그때 딸 거다. 내가 보내주는 거 아이다. 창수한테 감사해라."

  

나는 예술이라면 예술성, 다시 말해 작품성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기대할 바를 기대하라"는 나의 감상론을 확립하고 나서는 작품이 대중성을 추구하는지 예술성을 추구하는지를 가려내는 것이 먼저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예술은 삶의 비평 역할을 수행해야 하고 인생의 덧없음을 극복하는 수단이 되어야 한다고, 나는 믿고 있다. (매튜 애널드와 헤세의 예술관을 버무린 것이다.) 예술사적으로 의미가 있더라도 삶에 공헌하는 바가 없는 예술이라면 나는 고개 숙이지 않기로 했다. 예술성이 대중성 위에 군림하는 것은 아니다. 서로 역할이 다를 뿐이다.

 

6.

<파파로티>를 연출한 이는 윤종찬 감독이다. <청연>, <나는 행복합니다> 등의 작품성을 추구했던 감독이 만든 대중영화란 점도 내겐 흥미로웠다. 이건 변절이 아니라 모색 혹은 성장이라고 생각했다. 작품성과 대중성이라는 의미 있는 가치를 추구하려는 모색. 윤종찬 감독이 언젠가 작품성과 대중성을 모두 휘어잡는 명작을 만드시기를 기대한다.

 

7.

'창수 역을 한 배우가 굉장히 낯익은데 어디서 봤지?' 영화를 보면서 들었던 생각이다. 1/3 정도 지나서야 알았다. <범죄와의 전쟁>에서 최형배(하정우)와 맞짱을 떴던 김판호였다. 점점 근사해진다는 생각이 드는 배우다. <파파로티>에서는 따뜻하게 등장했다가 멋있게 사라진다. 차 안에서 그가 세상을 떠나는 장면은 아주 인문주의적인 장면이라 생각한다.

 

"장호야. 사람답게 살아라."

 

연세대 철학과 김상환 교수님은 인문학의 노래로 <Stand by Your Man>을 들었다. "인문학의 본성은 사람 옆에 서는 데 있고 그 옆을 지키는 데 있기 때문"이라는 이유였다. "인문학의 위치, 인문학의 정체성이 확인되는 장소는 인간의 옆 혹은 곁이다."

 

Stand by your man

And show the world you love him

Keep giving all the love you can

Stand by your man

 

당신의 사람 곁에 서세요

그를 향한 당신의 사랑을 세상에 보여주세요

언제나 한결같이 온갖 사랑을 쏟으며

그 사람 곁을 지켜 주세요

 

인문학의 위치가 사람 곁이라면, 인문학의 역할은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가도록 돕는 것이다. 인문학의 역할이 제대로 기능하게 만드는 것을 인문주의라 부른다면, 창수는 세상을 떠나면서 사람다움을 강조함으로 인문주의를 보여준 것이다. 창수가 생각한 사람다운 삶이란,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자신의 꿈을 향해 매진하는 것이 아니었을까?

 

8.

영화를 보고 난 뒤, 나는 세상을 조금이라도 다르게 살고 싶었다. 영화나 여행을 하면서 얻는 동기부여의 반복이 아니라, 지속의지를 품고 싶었다. "파파로티? 나도 봤지. 재밌더라" 만으로 그치는 대화를 주고받고 싶지 않았다. 내가 느낀 것은 무엇이고 그것으로 인해 내 삶이 어떻게 달라졌는지가 중요하다는 생각을, 오늘도 뼈져리게 했다.

 

오늘의 실천사항은 리뷰를 끼적여보는 것이다. 늘 영화를 보면서 많은 생각을 하지만 기록으로 남기거나 사유를 이어가지는 않았다. 오늘 나는 그 게으름의 반복에 단절을 선언했다. 영화를 보면 무조건 그 날 안으로 무언가를 끼적이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매일 조금씩 글을 써야겟다고 다짐했다.

 

영화를 보고 난지, 5시간이 지나가고 있다. 해가 저물어져간다. 오늘 나는 어설프지만 분명 춤을 추며 걸었다. 수요일 아침에는 영화를 보겠다고 이틀 전에 나 자신과 했던 약속을 지켰고, 영화를 보면서 결심했던 리뷰쓰기도 이뤘다.

 

7년이 지나면 장호가 무대에 선 것처럼 나도 내 꿈을 이룰 수 있을까? 내겐 큰 의미가 없는 질문이다. 오늘 같은 하루를 매일 사는 것이 나의 꿈이니까. 나의 꿈은... 무언가를 향해 힘차게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그 무언가를 오늘로 끌어와서 내 혀로 직접 맛보며 '살아있는' 하루를 보내는 것이다. <범죄와의 전쟁>의 최익현이가 나를 보며 이리 말하는 하루를.

 

"살아있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자기경영지식인 이희석 유니크컨설팅 대표 ceo@younico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