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y Story/끼적끼적 일상나눔

선생님을 떠나보낸 후의 감정들

카잔 2013. 4. 18. 19:10


구본형 선생님이 소천하신 4월 13일 토요일. 슬픈 소식은 이내 연구원들에게 전달되었다. 나는 소식을 전해 준 이와 전화 통화를 하고서도, 그리고 돌아가셨다는 문자 메시지를 받고서도 실감이 나지 않았다. 나는 그때 늦은 저녁 식사를 막 마치려던 참이었고, 함께 밥을 먹었던 교회 후배와 조금 더 시간을 보내고 헤어졌다. "형, 지금 바로 가 보셔도 돼요"라는 말에 "괜찮다"고 대답했었다. 하지만, 괜찮지 않음을 곧 알게 되었다. 


밤 11시, 강남성모병원으로 차를 몰고 가는데, 지나가는 차들이 장난감처럼 보였다. 내 삶에 벌어진 일이 도무지 믿어지지 않을 때에는 운전을 해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하며 병원에 도착했다. 11시부터 조문이 시작되었다. 하지만 그것 역시 현실감이라고는 전혀 없는 꿈 속의 장면처럼 희미하게 내 눈 앞에 펼쳐질 뿐이었다. 나는 조문을 드리지도 못하고, 장례식장 복도를 서성이며 두 시간을 보냈다. 집에 도착하니 새벽 3시였다.

 

14일 일요일. 아침에 일어나면서 핸드폰부터 확인했다. 연구원끼리 메시지를 주고 받는 네이버 밴드에 어떤 소식이 올라왔나 궁금했기 때문이다. 평소 따뜻함을 지녔다고 생각했던 형이 올린 글이 있었다. 『구본형의 신화 읽는 시간』의 한 구절이었다. 시의적절하면서도 슬픔에 잠긴 우리들에게 맞춤한 글이었다.

 

"나는 내 마지막 날을 매우 유쾌하게 상상한다. 나는 그 날이 축제이기를 바란다. 가장 유쾌하고 가장 시적이고 가장 많은 음악이 흐르고 내일을 위한 아무 걱정도 없는 축제를 떠올린다. 눈부시도록 아름다운 것은 단명한 것들이다. 꽃이 아름다운 것을 그래서일 것이다. 한 순간에 모든 것을 다 피워내는 몰입, 그리고 이내 사라지는 안타까움. 삶의 일회성이야말로 우리를 빛나게 한다."

 

나는 이 글이 좋았다. 선생님의 바람처럼 조문 둘째날을 축제처럼 보내야겠다고 생각했다. 병원에 들르기 전에 석촌호수를 거닐며 벚꽃을 구경할까 싶었다. 그것이 선생님의 축제 같은 마지막에 걸맞겠다는 생각도 했다. 하지만 마음의 여유가 없어 가지 못했다. 병원에 갔더니 어제와는 다른 감정이었다. '꿈이 아니구나' 하는 현실감부터가 달랐다. 나는 인생의 마지막 과정인 죽음을 유쾌하게 받아들이려고 노력했다. 집에 도착하니 새벽 2시였다. 


15일 월요일. 눈을 뜨니 담담했다. 현실을 거부했던 첫날, 축제처럼 보내려던 둘째날보다 나는 이런 담담함이야말로 눈앞의 상황과 화해해가는 과정의 진짜 모습이 아닐까, 생각하며 하루를 시작했다. 월요일엔 입관미사가 있었다. 선생님의 잠드신 얼굴을 마지막으로 뵌 날이었다. 선생님은 평온하게 눈을 감고 계셨다. 나는 사진을 찍으라는 부탁을 받았다. 사진 찍는 '일'을 하느라 선생님이 입관하시는 순간에 깊이 애도하지 못했다. 아쉬웠다.


월요일에는 입관미사 외에도 피할 수 없는 일정이 있었다. 글쓰기 수업과 업무 미팅이 예정된 날이었다. 게다가 호주에서 날아온 와우팀원을 맞이하는 그 기수끼리의 저녁식사 모임도 있었다. 오후와 저녁에는 병원에서 나와 짬을 내어 모든 일에 시간을 주었다. 그리고 다시 병원에 오니 10시가 넘었다. 나는 11시 즈음 병원을 나섰다. 다음 날의 일정을 위해 컨디션을 관리해야 했다. 오늘 아침부터 입술이 부르튼 것도 신경 쓰였다.


16일 화요일. 장례미사가 있었고 화장이 진행되었고 추도식과 추모행사가 있었다. 살롱9에서 진행된 추모행사의 마지막 순간에 나는 꺼어꺼어 울었다. 선생님의 유골이 살롱9를 떠나는 그 순간이 너무나 슬펐다. 살롱9에서 불과 두 달 전 강연을 하셨고, 신년회를 하셨는데... 선생님이 이제 이곳을 떠나시면 다시는 오실 수 없다는 사실에 가슴이 미어졌다. 그래서 유골함을 붙들고 통곡해 버렸다. 왠지 모르게 가족들에게 미안했다.

 

*

 

이틀이 지나, 이제 목요일이 되었다. 토요일부터 나의 감정은 현실에 대한 거부, 유쾌하게 받아들이려는 노력, 죽음 역시 인생의 과정이라 생각하며 차분해짐과 담담해짐, 영원한 이별이라 느끼며 통곡함 등으로 다양하게 바뀌었다.

 

어제는 세수를 하다가 울었고, 출판사로부터 날아온 책 한 권을 받고서 선생님이 떠올라 멍해졌다. 그러다가도 사람들을 만나면 웃고 밥을 먹는다. 내가 다중인격이어서가 아닐 것이다. 어쩌면 슬픔은 일주일 내내 비탄과 울음 속에 잠겨 있는 것이 아니라 현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어하는 고통일지도 모르겠다. 행복이 내내 들뜬 감정이 아니라 호수의 물결처럼 잔잔한 기쁨이듯이. 


슬픔에 잠겨 있는 동안에도 웃음, 유머, 식사 등과 같은 평범한 일상이 이어질 수 있지만, 일상 사이사이에서 고통, 비탄, 회한, 거부, 분노, 덧없음을 문득 느낀다. 세수를 하다가, 택배 물건을 받다가, 밥을 먹다가. 혹은 길을 걷다가, 퇴근하다가, 잠을 자다가.

 

슬픔과 화해하는 일이나 믿어지지 않는 삶의 현실을 받아들이는 과정은 더디게 진행되나 봅니다. 머리에서부터 시작되어 가슴으로, 그리고 일상을 살다가 문득 다가오는 생생한 슬픔에 점점 익숙해짐으로.


사용자 삽입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