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Book Story/명저 이야기

그리스 사랑을 전염시키는 책

카잔 2013. 7. 15. 11:04

 

그리스 사랑을 전염시키는 책

- 앙드레 보나르의 <그리스인 이야기>

 

"그리스에 대한 콤플렉스는 나만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다. 파리와 로마도 나 못지않은 콤플렉스에 시달린다.” 역자의 말입니다. 파리와 로마의 그리스 콤플렉스를 운운한 말에 동의하시는지요? 저는 ‘콤플렉스’ 정도까지나 될까 싶으면서도, 역자의 말에 고개를 끄덕입니다. 책을 소개하기에 앞서 왜 많은 이들이 그리스를 동경하지에 대해 설명해 보겠습니다.

 

여행객들은 산토리니에서 바라보는 에게해 등으로 매력적인 관광지로서 그리스를 동경하지만, 지금 말하려는 주제는 식자들의 그리스의 정신과 지적 유산을 향한 예찬입니다. 인문학을 공부하려는 사람은 결국 고대 그리스의 위대한 유산에 관심을 갖게 됩니다.

 

“플라톤 이후의 모든 철학은 그에 대한 주석에 불과하다”고 말한 화이트 헤드의 유명한 말도 다소 과장인 듯 하나 실언은 아닌 것 같습니다. 빅토리아 시대에 활동했던 지성인 매튜 아놀드의 유명한 말도 있지요. “세계의 문화는 헬레니즘과 히브리즘, 두 축 사이를 오락가락하고 있다.” 그리스 정신과 기독교 정신의 두축이 세계 문화를 이끌었다는 겁니다.  인간 본위의 사상과 신본주의의 구도입니다. 헬레니즘은 문명으로, 히브리즘은 종교로 이어졌다고 단순하게 정리할 수도 있겠지요.

 

“오늘날의 문명 국가들은 모든 지적 활동 분야에서 그리스의 식민지다.” 『철학 이야기』와 『문명 이야기』로 유명한 미국의 철학자 윌 듀란트의 말입니다. 그리스의 지식이 오늘날의 문명 국가를 길렀다는 뜻인데, 탈레스,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등의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들의 유산과 그리스 신화와 서사시가 세계 문화에 끼친 영향을 생각하면 고개를 끄덕이게 됩니다.

 

그리스의 지적 유산에 대해서는, 영국의 고전학자 키토의 말도 인용해 보죠. “소설을 제외한 모든 학문 형식은 그리스인에 의해 창조되고 완성되었다.” 소설은 르네상스 이후에 등장했지만, 서사시, 서정시, 비극과 희극 등의 모든 문학과 전분야의 철학, 수많은 자연과학이 그리스인과 더불어 시작되었습니다.

 

나는 지금 고대 그리스가 인류에게 남긴 유산의 위대함 그리고 그것에 대한 공부의 중요성을 설득하려고 노력하는 중입니다. 그 노력이 조금이라도 성공했다면, 어떤 책으로부터 공부를 시작해야 할까요? ‘나는 한 권 정도만 읽고 싶은데’ 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에게 추천할 만한 한 권의 책은 무엇일까요?

 

세 권의 추천후보가 있습니다. 키토의『고대 그리스, 그리스인들』, 김진경의『그리스의 영광과 몰락』, 앙드레 보나르의『그리스인 이야기』. 키토의 책은 그리스인과 그리스 정신에 초점을 맞춘 책이고, 김진경의 책은 그리스의 역사에, 앙드레 보나르는 위대한 그리스의 위인을 중심으로 전개된 책입니다.

 

그리스 정신, 그리스 역사, 그리스 인물 중에 가장 흥미가 느껴지는 책부터 읽으시면 되겠습니다. 2012~2013년 출판가에는 몇권의 그리스 기행에세이가 출간되었지만,  저자의 느낌과 깨달음보다 그리스에 대해 알고 싶다면, 방금 소개한 세 권의 책을 권하고 싶습니다. 학문적 엄밀함과 지적 헌신도에서 훨씬 앞서있기 때문입니다.

 

이제 보나르의 <그리스인 이야기>을 들여다보겠습니다. 책의 장점 하나는 저자도, 역자도 모두 그리스를 열정적으로 사랑한다는 데서 오는 뜨거움입니다. 그리스에 대한 지식을 전하는 책인데, 그 지식은 저자의 감상과 애정에 젖어있는 지식입니다. 역자는 이런 글을 썼습니다.

 

“앙드레 보나르가 그리스를 말할 때는 일부러라도 건성건성 들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리스를 사랑하게 될 것이다.” 알고 싶어질 것이다. 그리워할 것이다. 그리스에 가보게 될 것이다.” (P.357)

 

처음엔 역자의 흥분한 듯한 말에 의아했지만, 책을 읽고 나면 이해하게 됩니다. 역자의 그리스 사랑과 저자가 지닌 그리스 열정에 감염되기 때문입니다. 우선 역자의 그리스 순애보부터 들어보실까요?

 

“이번에는 꼭 가야지, 하고도 못가는 나라가 있다. 그게 내게는 그리스다. (중략) 꼭 공부해야지 하면서도 못하는 공부가 있다. 그게 내게는 그리스어다.”

 

앙드레 보나르의 그리스를 향한 열정, 그 열정이 빚어낸 저자의 역량도 대단합니다. 그의 빛나는 역량은 해석력입니다. 보나르는 그리스 문명의 의미를, 그리스의 위대한 서사시와 서정시들을 뛰어난 통찰로 해석합니다.

 

“실재하는 세계를 파악하는 힘이 과학이라면, 상상 속에서 또 하나의 실재를 만들어내는 힘이 예술이다. 과학과 예술로 무장한 인간은 스스로를 새롭게 정의한다. 그것이 바로 휴머니즘이요 인간됨이다. 인간됨은 다시 새로운 발견과 창조를 추동하는 힘이 된다. 아주 정확한 정의는 아니겠지만, 문명이란 이처럼 발견과 창조의 연속이라고 정의해두기로 하자.” (P.17)

 

“신은 전능하며 힘이 세다. 가끔씩 시기에 불타고, 사소한 이익에 흔들리고, 곧 죽을 인간들에 대해서는 무심하기 짝이 없다. 그래서 전투가 있고 상처가 있다. 하지만 전쟁에 투입된 인간들에게는 용기와 우정과 사랑이라는 무기가 있다. 고결한 사랑을 아는 인간은 신만큼이나 위대한 법이다. 호메로스는 그런 인간들에 대해서 말하고자 한다. 따라서 죽음의 그늘이 가득 드리워진 호메로스의 <일리아스>는 역설적으로, 곧 끝나고 말 생에 대한 찬사이고, 목숨보다 그리고 신보다 더 위대한 인간들에 대한 증언이다.” (P.50)

 

“호메로스도 자연을 노래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자연을 알고 있었고 자연을 두려워했다. 호메로스의 자연에는 깊은 심연이 나오고, 커다란 바위가 앞을 가로막으며, 사나운 폭풍이 불어온다. 인생의 쓰라린 면들을 상징하는 것이 자연이다. (중략) 반면 삽포의 자연은 신비로운 옷을 벗고 인간에게 내려온다. 가까이 다가와 친구가 되며, 존재가 되고, 인간과 더불어 교감을 나눈다.” (P.171)

 

앙드레 보나르는 열정과 식견을 균형있게 갖춘 저자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뜨거운 열정과 뛰어난 지성이라! 흥분하며 읽을 수 밖에 없었던 까닭입니다. 흥분을 가라앉히고, 하나의 자문에 저자의 메시지로 답하며 글을 맺겠습니다. ‘현대인들이 이 책을 읽는다면, 어떤 유익을 얻을 수 있을까?’

 

“그리스 문명의 목적은 하나다. 자연에 맞서 인간의 능력을 키우는 것, 인간다움을 완성하는 것, 우리는 이것을 휴머니즘이라 부른다. 그렇다. 그리스 민족의 문명은 인간의 문명이었다. 인간에게 봉사하는 문명이었다.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문명도 그리스 문명과 다르지 않다. 그리스 사람들이 다하지 못한 것을 우리가 덧붙여 완성해나갈 뿐이다. 따라서 그들의 성공과 실패는 우리의 소중한 유산이다.” (P.21)

 

- 자연과 휴머니즘을 노래하며, 조르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