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y Story/거북이의 자기경영

내 인생의 마지막은 병산에서

카잔 2013. 9. 5. 21:03

병산에 왔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자마자 곧장 낙동강 변으로 향했다. 병산을 올려다보며 낙동강 앞에 펼쳐진 모래사장을 밟는데 잘 왔구나싶었다. 서원을 뒤로 한 채, 천천히 걸으며 깨달았다. 내가 서원만큼이나 낙동강과 병산이 보고 싶었음을. 병산을 마주하고 강가에 앉아 2시간 남짓을 보냈다. 초가을 햇볕이 따사로웠다. 시끌벅적한 관광버스 행렬이 두 번 오고 갔다.

 

눈앞에선 낙동강이 흘렀다. 고요하고 잔잔하게 흐른다. 가만히 머물러 있는 느낌이다. 강물 위에 뜬 하얀 먼지가 저만치 이동한 것을 보고서야 내 앞에 펼쳐진 물이 저수지가 아닌 흐르는 강물임을 인식한다. 소리 없이 물결 없이 흐르는 강물의 고요함이 마음속으로 스며들었다. 도시에서는 누리지 못하는 고요, 그윽한 고독 그리고 내면으로의 침잠.

 

분주함을 어찌 도시 탓이라고만 할까.

내 마음의 여유가 부족한 탓이기도 할 것이다.

 

뜻밖의 상상이 펼쳐졌다. 언제인지 모를 훗날에, 십 수 명의 사람들이 낙동강 변에 옹기종기 모여든 장면이었다. 내가 사랑하고 존경했던 사람들인데, 정작 나는 없다. 이틀 전에 죽었기 때문이다. 시절 인연으로 만나 교감했던 이들이 내 유골을 낙동강 물에 뿌려 주었다. 어떤 이의 눈가는 촉촉해졌다. 강물은 고요하게 흘렀다. 덕분에 유골이 흩날리지 않고 낙동강에 스며들었다.

 

마흔이 되어가면서 세상에 이름을 날리고 싶은 마음이 서서히 옅어졌다. 그보다는 나로 태어났으니 그저 내가 되려고 노력했다. 최고가 아니어도 괜찮았다. 내가 가진 것들을 활용하여 나 자신에게 이르고 싶을 뿐이었다. 사람들과 더불어 행복을 향유하고도 싶었다. 바람을 못다 이룬 채로 봄날의 소풍 같았던 삶이 끝났다. 나는 사라졌다. 이젠 낙동강이 내 육신의 흔적을 품고서 흐른다. 낙동강은 남쪽 바다를 향해 흐르고 흘렀다.

 

고요하다. 자유롭다.

그리고 평온하다.

 

강은 쉬지 않고 흐른다. 평생 성장하고 싶었던 나는 끊임없이 흐르는 강을 닮고 싶었다. 나도 성장하고 또 성장하여 깊고 넉넉한 사람이 되고팠다. 강은 홀로 흐르지 않는다. 모든 존재와 함께하며 대지와 만물에 생명을 공급한다. 강은 마침내 바다를 만난다. 흐르고 흘러 심오하고 원대한 존재의 일부가 된다. 내 삶은 어떠했을까? 사람들과 교감하며 서로를 도왔을까? 흐르고 흘러 바다를 만났을까?

 

함께 했던 사람들의 가슴 속에 잠깐 내 이야기와 나를 향한 그리움이 머물기를 바라며, 나는 남쪽 바다를 향했다. 그들과의 이별로 인해 가슴 아파하는 한편, 낙동강이 내 고향을 지나간다는 사실이 고맙다. 마지막으로 내가 태어나고 자랐던 산천의 모습을 바라볼 수 있어서 반갑다. 삶은 금세 흘렀다. 인생의 봄날은 더욱 짧았다. 길지 않은 생이었지만 되새기고 음미해 보니, 한땐 아름다웠고 종종 행복했다.

 

신이여 감사합니다. 제게 삶을 주셔서.

삶은 좋았다. 죽음도 그러하기를.

 

상상의 나래를 접고 현실로 돌아오니, 나비 한 마리가 날아와 내 앞에 앉았다. 매혹적인 나비였다. 감격에 잠겼던 직후여서일까. 나비의 출현이 영화 같았다. 나비처럼 훨훨 자유롭게 살라는 하늘의 메시지일까? 나비는 우아한 빛깔의 두 날개를 천천히 움직였다. 마음이 나지막하게 읊조렸다. 우아하게 비상하여 자유로이 살자! 나풀나풀 날으는 나비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