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roduction/블로그 & 블로거 소개

나의 초상 (4)

카잔 2013. 11. 6. 23:09

 

31.

일급 지식을 가진 사람은 스스로에게 적용하고

이급 지식을 가진 이는 남들에게 가르친다.

예외는 있겠지만 대부분의 강사들에게 적용되는 말이다.

나는 '예외'에 들고 싶지만 아직은 '대부분'에 속한다.

 

32.

나는 결과보다는 과정을 중요하게 여긴다. 2013년 프로야구 한국시리즈는 삼성이 우승했다. 기쁜 일이지만 기대했던 것만큼 우승을 즐기지 못했다. 최고의 하이라이트 경기였던 7차전에서 삼성이 다소 싱겁게 승리했기 때문이다. 5회까지는 무척 재밌었다. 2:2의 승부가 박빙이었고, 양팀 모두 접전을 벌였으니까. 

 

승부는 6회말에 갈렸다. 삼성의 화끈한 타격으로 승리의 여신을 이끌어냈다면 좋았을 텐데, 상대팀의 불운이 겹쳐 승부가 기울기 시작했다. 행운의 여신이 미소 지어준 셈이다. 두산 이원석의 송구가 주자의 팔에 맞았던 것이다. 투수가 잘 던지지 못한 것이 아니라, 그저 두산에게는 불운이, 삼성에게는 행운이 깃들었다. 결과는 우승이나, 과정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내가 우승의 기쁨에 흠뻑 취하지 못한 까닭이다.

 

과정의 중요성에만 경도된 내 모습은 균형을 잃었다. 결과 역시 중요하기 때문이다. 무엇이 더 중요하냐고 물어선 안 될 것이다. 둘 다 중요하기에. 그러니 이렇게 물어야 한다. 어떻게 하면 의미 있는 과정과 눈에 띄는 결과를 동시에 거머쥘 수 있는가?

 

한 마디 더. 우승의 기쁨이 경감된 원인은 또 있다. 나는 진짜 실력을 중요시한다. 행운, 분위기, 시대적 요소 등도 성공에 중요하지만, 진정한 실력으로 인한 승리가 좋다. 이것은 개인적인 취향 문제로만 봐서는 곤란하다. 삶의 중요한 결정에서도 이런 취향이 큰 영향을 미치니까. 내가 대학 중퇴를 결정했을 때, 나는 대학 간판보다 내 실력이 중요하다고 믿었다.

 

33.

<Young 삼성라이프> 라는 홈페이지가 있다. 두달 전, 그곳의 기자와 인터뷰를 했었다. 사진작가가 포즈를 요구해 여러 장의 사진도 찍었다. 그리고 기사가 실렸다. 독서법 강사로서의 나를 취재한 기사다. (기사참고  http://goo.gl/jKpZij) 기사가 실렸다는 소식을 들은지 일주일이 넘었지만, 나는 아직 기사를 읽어보지 않았다. 담당자에게 이런 메일을 썼다.

 

"나는 참 이상하네요. 나에 관한 기사인데도 읽지를 않으니 말이죠. 취재해 준 분들에 대한 고마움을 모르는 것은 아닌데, 고마움과는 별도로 기사를 읽지는 않는 편이더군요."

 

왜 그럴까? 이유 중 하나는 인터뷰여서 때문일 것이다. 고매한 평론가의 글이라면 나는 그의 생각이 궁금할 테지만, 이것은 나의 말을 기록한 인터뷰다. 이미 내 안에 있는 것들이 언어로 형상화된 글! 아름다운 페이지로 편집된 것만 확인할 뿐 세부 텍스트를 읽지는 않는다. 행여 인터뷰어가 나의 뜻을 왜곡하여 기록했을 수도 있지만 그것은 어찌할 수 없는 문제란 생각도 든다. 자신의 책이 번역될 때에 '번역의 문제'를 바라보는 소설가의 입장이랄까.

 

간혹 잡지나 사보에 내가 쓴 글이나 나에 관한 글이 실리더라도 그 글을 않는 또 하나의 이유는 이미 그것은 과거에 속한 일이기 때문이다. 내가 가장 관심을 가지는 것은 나의 실력 향상이지, 이미 쓴 글이 어떤 모양새의 글로 지면에 발표되는지는 관심사가 아니다. 다만 책으로 나올 때에는 예외다. 나는 책의 내용만큼이나 책의 모양새가 훌륭하기를 바란다. 

 

34.

내가 좋아하는 작가들 : 무엇보다 김영하! 매번 나를 매료시킨다. 인간 심연의 어두운 면을 탐구하는 일에 탁월한 작가. 2013년 작 『살인자의 기억법』은 새로운 서사 기법이었다. 선이 아닌 점으로 연결한 서사랄까. 스토리로 꾸민 잠언집이라고 할까.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와 같은 아포리즘을 이야기로 엮은 느낌이다. 

 

그리고 톨스토이. 내가 읽은 최고의 소설은 『안나 카레니나』다. 주제의식, 캐릭터 창조, 서사와 묘사, 그리고 문장 그 모든 소설을 이루는 요소에서 톨스토이는 위대한 경지를 보여 준다. 최고의 소설 두번째가 있을까? 톨스토이에 대한 오마주를 생각한다면 셋째 자리까지는 비워 두고 싶다. 모두 그의 소설로!   

 

그외에도 좋아하는 작가들이 있다. 최고로 좋아하는 분들까지 포함하여 정리하자면,

국내작가 : 김영하, 김승옥, 최인훈, 이병주, 정이현.

국외작가 : 톨스토이, 서머싯 몸, 헤밍웨이, 밀란 쿤데라, 필립 로스.

에세이스트 : 수잔 손택, 요네하라 마리, 버트란트 러셀, 조지 오웰 그리고 고종석

아마도 세월이 따라 일부는 바뀔 것이다. 아니, 바뀌어야 한다.

일부는 변치 않을 것이다. 변함과 변치않음, 모두 나에 대한 무언가를 보여 줄 테고.

 

35.

내가 좋아하는 것들 : 카페(나는 분위기 좋은 카페에서 시간 보내기를 좋아한다), 목록(나는 목록을 사랑한다. 내가 사랑한 작가들, 최고의 여행지들, 내 인생의 명장면, 역사상 최고가의 예술작품들, 인류의 명저 등등 온갖 목록을 맛보고 만들고 업데이트해 나가는 작업을 사랑한다), 벚꽃(화려함과 그 속절없는 떨어짐은 짧은 생애에 대한 애틋한 마음을 들게 한다), 군고구마(맛있다, 달콤하다, 건강하다. 군고구마 같은 사랑이 좋다. 맛있고 달콤하고 건강해지는 사랑. 그리고 벗겨 가는 느낌이 좋은 사랑), 글쓰기(이것은 나의 존재이유이고, 좋아하는 삶의 방식이다, 나는 글쓰기를 보내며 사는 것이 좋다), 독서(책책책, 이것을 빼놓고 내 삶을 설명할 수 있을까? 불가능한 일이다. 책을 좋아하는가? 그렇다. 왜 좋은가, 라는 질문은 부질없다. 세상에는 이유없이 좋은 것들도 있으니까), 와인(와인을 마시는 분위기와 와인을 둘러싼 온갖 지적인 공부꺼리가 좋다), 지하철(이동하면서 책을 읽을 수 있고, 빠르고 편리하다. 계단을 오르내리면 운동도 된다. 그러니 하루 빨리 서울시는 일부 지하철역의 석면을 모두 제거해주기를), 독일(다시 태어나고 싶은 나라이기도 하고 나를 닮은 나라이기도 하다. 뻣뻣하고 멋대가리 없지만 왠지 진중하고 신뢰가 가는 나라, 알면 알수록 매력이 넘치는 나라), 한길사(가장 신뢰하고 좋아하는 출판사, 나도 책 한 권 내고 싶은 출판사). 마켓오 리얼 크래커 초코와 닥터유 다이제 샌드(내가 참 좋아하는 과자 두개인데 건강 간식일 거라고 말하면 이것은 제과 회사 마케팅의 승리일까?)

 

36.

이력서를 쓴다면 나는 학력난에 이렇게 쓰고 싶다. 고등학교 성적은 가까스로 중위권, 대학교는 3년을 다니다가 중퇴. 나는 내 학력이 부끄럽지 않다. 한때 강사 프로필에 경북대학교 생물자원기계공학부 중퇴, 라고 썼더니 나의 동료는 그렇게 쓰면 안 된다고 했다. 강연 의뢰를 하려는 사람들에게 '중퇴'라는 말이 매력요소가 아니란다. 졸업이라고 쓰는 게 낫다고 했다. 그의 마음이 고마웠지만, 그건 거짓말이니 안 된다고 응수했다. 동료는, 그럼 학교명과 과명 뒤에 졸업이든 중퇴든 아무 말도 덧붙이지 말자고 했다. 나는 거짓에 동조하는 침묵은 싫다고 했다. 결국 우리는 수료라는 말로 타협을 봤다.

 

이처럼 나는 과대평가를 과소평가만큼이나 싫어했다. 어쩌면 더욱 어릴 때부터 나는 과대평가를 과소평가보다 더욱 싫어했는지도 몰랐다. 내 친구는 곧잘 자기의 농구 실력과 독서에 대해 자기 여자친구에게 과장하여 말했지만, 친구들은 모두 잘 안다. 내가 그보다 농구도 더 잘 하고, 책도 더 많이 읽는다는 것을. 나는 여자 친구가 나를 무시하는 것도 싫어했지만, 나의 실재보다 크게 생각하는 것도 불편해했다. 이런 내 기질 탓에 나는 강준만 선생이 말을 사모했는지도 모른다. 지식인은 스스로 자신의 거품을 걷어낼 줄 알아야 한다는 말을.

 

37.

노년에 대한 나의 꿈 중 하나는 백발이 무성한 모습이다. 대머리는 백발을 가질 수 없다. 브루스 윌리스처럼 두상이 예쁘다면 대머리도 고려해 보겠지만, 두상이 마음에 들지 않은 나로서는 백발이 끌린다. 하지만 현실은 주드 로다. (네이버 검색에 주드 로를 치면 연관 검색어에 '주드 로 탈모'까지 뜬다. 그는 탈모배우의 대명사가 되어가는 걸까?) 그가 아무리 많이 빠져도 나와는 얼굴과 분위기에서 차원이 다르다. 나보다 영어도 잘하고! 이런 걸 두고 승산없는 게임이라고 하는 거겠지. ^^

 

38.

나는 홀로 카페가기를 즐긴다. 카페에서 할 수 있는 일들, 하고 싶은 일들이 많다. 가장 하고 싶은 것들 위주로 목록을 적어 보면, 글쓰기 - 책읽기 - (멋진 뷰를 가진 카페라면) 풍광 즐기기 - (내게 스며드는 음악이 들린다면) 회상과 감상에 빠져들기 - 커피 맛과 향 즐기기 (2013년 기준으로, 요즘 내겐 커피빈, 스타벅스, 할리스 순으로 맛나다. 서열은 바뀔지도 모른다. 세상 모든 것은 변하니깐.) - 인생에 대해 생각하기 등등.

 

39.

나는 스스로를 존중할 줄 알고, 체력이 좋으며, 타인에 대한 감수성이 뛰어난 여인을 좋아한다. 자존감이 높아야 자신의 에너지를 자기 이미지를 관리하느라 낭비하지 않는다. 내가 체력이 좋은 편이라 그녀도 밤까지 체력이 좋기를 바란다. 함께 동행하는 이가 남에게 폐를 끼치는 데에도 그걸 무심히 생각한다면, 내가 괴롭다. 이것이 나의 이상형이다. (예쁜 얼굴은 따지지 않냐고? 그건 디폴트다. 미모와 몸매는 기본이라는 말이다. 남자들은 다 똑같다고? 아닐 것이다. 모두 다르다. 예쁨을 가르는 기준이 다르다는 말이다. 고등학교 때 내가 천사라고 불렀던 여인을, 내 친구들이 보고서는 모두들 나를 괄시했다. 시력이 안 좋다고. 

 

40.

나는 거울을 잘 보지 않는다. 잘난 얼굴이었더라면 달랐을 것이다. 매일 닦고 보살폈지 싶다. 한참을 거울을 들여다보던 사람들이 거울을 떠나는 순간은, 만지던 헤어스타일이나 옷매무새가 마음에 들었을 때다. 가장 나은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하는 것이다. 유용한 삶의 태도다. 그들은 사진을 웹에 올리거나 어딘가로 보낼 때에도 가장 잘 나온 사진을 고르고 고른다. 역시 필요한 수고로움이다.

 

하지만 우리가 그의 지인이라면, 안다. 사진과는 다른 그의 진짜 모습을. 잘 나온 사진도 우리고, 아침에 눈을 떴을 때의 부시시한 모습도 우리다. 우리의 실재는 그 모든 총합이다. 그렇다면 그 사진도 우리가 아니고, 부시시한 모습도 우리가 아니다. 그 모든 것은 우리의 일부요, 우리의 전부가 아니다. 잘 나온 사진이 내가 아니라면, 아래처럼 이상하게 나온 사진도 내가 아니다. (몰린 눈코와 두툼한 입술, 번들거리는 이마, 내가 이 정도까진 아니겠지.)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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