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y Story/끼적끼적 일상나눔

헤이리에서 공부하다가 끼적

카잔 2014. 2. 5. 18:19

 

1.

오늘 저녁엔 『어제까지의 세계』 독서세미나를 진행한다. 헤이리에 있는 한길사 북하우스 (포레스타) 에서. (김포에 사는 와우가 있고 다른 와우들도 모두 헤이리를 좋아할 만한 이들이라 모임장소로 헤이리를 제안했을 때 거리상의 부담에도 즐거워하는 듯 했다.) 나는 점심을 먹고 일찌감치 출발했다. 세미나 준비도, 몇 가지의 일도 헤이리 카페에서 하기 위해서.

 

문득 든 생각. '헤이리에서 살까?'

 

올해 5월말이면 잠실 연구실(비즈니스보다는 공부 장소가 되어 이젠 연구실) 전세계약이 끝난다. 임대료를 내지 않아도 되니 재정에 숨통이 트이는 셈. 한 일년을 살아볼 생각이 든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 해 겨울에도 바로 이곳 포레스타에서 글을 쓰다가 같은 생각을 했었다. 평일에 만끽하는 이 고요함... 고요함 속에서 맛보는 극도의 생산성.

 

 

2.

해야 하는 일들이 많아 책임감과 부담감이 마음 한켠에 자리잡고 있지만, 이곳에서 이리 잠시나마 책을 읽고 있으니... 잔잔한 기쁨이 몰려왔다. 창비사 팟캐스트를 들으며 운전하면서부터 잠시 후에 있을 세미나를 준비하면서까지 내내 느껴지는 이 감정이 행복이리라. 행복은 이렇듯 자신이 좋아하는 공간에, 자신이 즐기는 취향을 행함에 있다. (사실, 어디에나 행복이 있겠지만 말이다.)

 

3.

한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모 출판사 편집자다. 그는 끝까지 나를 친절하고 인격적으로 대했다. 끝까지? 맞다. 다시 연을 맺을지도 모르겠지만, 지금으로서는 그 출판사와 2년 전에 맺었던 계약을 파기하려고 한다. 불편한 관계였던 것은 아니다. 전적으로 원고를 주지 않은 나의 불성실 때문이다. 완벽주의든 무엇이든 그 원인이야 어쨌든 결국 완료하지 못했으니 불성실이고 신뢰없음이다. 좀 더 기다려 달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너무나도 미안해서 계약금을 돌려주겠다고 내가 먼저 말했다.

 

잘한 걸까? 계약금도 많이 받고 계약 조건도 좋았는데...

인생을 주체적으로 살려면, 스스로 결정해야 하고 결정에 대한 책임을 스스로 져야 한다.

나는 그것을 알고 있다. 선택의 결과가 (크게) 두렵지는 않다.

미리미리 생각하고 준비하지 못함으로 혹은 거절하지 못함으로 주체성을 잃을까 봐 두려울 뿐.

 

 

4.

북하우스에서 책을 사버렸다. 책을 사지 않기로 한 2014년인데... 

5만원 이상 구입하면 커피류 한잔을 마실 수 있는 쿠폰을 준다는 말도 나를 유혹했었다. (버티긴 했지만 결국 넘어갔다.) 『중국의 은자들』은 언젠가 읽을 책이었다. 허균의 『한정록』과 연결하여 읽을 수 있는 은둔자들의 교본이다. 재레드 다이아몬드는 문명 3부작 내내 '환경결정론'을 주장했지만, 사람은 환경의 영향 뿐만 아니라 기질의 영향도 받는다. 어떤 환경에 살든 그의 자기다움이 있다.

 

하이네의 『낭판마』 역시도 구입할 책이었다. 낭만주의에 속하는 저자(그 유명한 하인리히 하이네)의 사상가적 면모를 접하는 책. 문학비평 공부를 하고픈 내게, 세계문학사에 박식해지고 싶은 내게 매혹적인 책일 수 밖에. (유럽 문학 중에서도 나는 특히 독일과 프랑스에 관심이 많다. 독일 낭만주의를 비판적으로 소개한 책 『하이네』는 상반기에 읽을 예정.)

 

철학자 김상봉 선생의 에세이 2권은 구입 예정의 책이었다. (나는 파일 하나에 구입예정 도서 리스트가 있다. 헤이리에서 구매할 도서느 별도로 관리한다.) 사실 이 모두 올해에 반드시 읽어야 하는 책들은 아니나, 이곳에 와서 빈 손으로 돌아간 습관이 되어 있지 않아서인지 구매하고 말았다. 습관이 무섭다고 하기엔 부끄럽다. 내 박약한 의지가 제일의 원인일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