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Book Story/위대한 작가들

몽테뉴를 읽기 위한 실마리들

카잔 2014. 4. 10. 07:46


1.

완벽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예술가, 정치인, 사상가가 위대한 경지에 올랐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사실 완벽이란 너무 높은 수준의 단어다. 그러니 첫 문장은 바꿔 쓰는 게 낫겠다. 엄청난 업적을 지닌 인물들도 삶의 다른 영역에서는 형편없는 경우가 많다. 탁월한 학문적 성취를 이뤘지만 사회적 관계가 엉망이거나, 정신적인 힘은 강하지만 일상생활을 영위하는 감각은 엉터리이거나. (이 글의 주인공 몽테뉴는 후자의 경우다.)

 

2.

몽테뉴(1533~1592)는 종교전쟁의 격랑기를 살았던 인물이다. 16세기는 가톨릭과 개신교의 광신적인 다툼이 일어났던 시기다. 가톨릭은 종교개혁과 칼빈의 『기독교 강요』를 기반으로 생겨난 개신교를 탄압했고, 세력이 강해진 개신교 역시 가톨릭의 비이성적인 탄압에 무력으로 대응했다. 야만적인 시대가 펼쳐졌다. 안전은 없었고 위험이 가득했다. 1588년, 만년의 몽테뉴는 이렇게 썼다.

 

"모든 프랑스 사람들은 30년 전부터 계속된 혼돈으로 인해 개인적으로든 전체적으로든 자신의 운명이 완전히 뒤집힐 수 있는 상황에 매시간 직면해 왔다."

 

몽테뉴는 야만성이 난무하는 시대 속에서도 내적인 자유를 지켜냈다. 이것이 그의 위대한 정신적 역량이다. 사람은 타고난 본성으로도 만들어지지만 자신이 속한 사회와 시대적 영향으로도 만들어진다. 누구도 상황과 환경의 영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하지만 불이 강을 건너지 못하는 것처럼 16세기의 야만성은 몽테뉴의 내면을 침투하지 못했다. 히틀러의 광란 속에서 세기의 유산을 지켜낸 모뉴먼츠 맨처럼 몽테뉴는 폭력적인 시대를 살았지만 자기 내면을 지켜냈다. 

 

3.   

우리가 16세기와 같은 야만적인 시대를 살지 않는 이상, 몽테뉴의 위대함을 제대로 이해하기는 어렵다. (이 땅에 민주화의 물결을 일으키려고 야만적인 정부에 투쟁했던 이들이 우리보다 몽테뉴를 더욱 잘 이해할 것이다.)  와우 한 명이 지난해 어머니를 잃었다. 그 후 여러 번 내게 메일을 보냈다. 슬프고 힘들었을 테고, 종종 내가 생각났나 보다. 나 역시 어머니를 여의었고, 지난해에는 존경하는 스승마저 세상을 떠났다.

 

"선생님은 어떻게 이겨내셨어요?" 그녀는 어머니를 여의고서 나의 아픔을 좀 더 이해했던 것이리라. 이것이 우리가 다른 사람을 이해하는 방식이다. 우리는 경험하고서야 이해한다. 경험이 '앎'에서 '이해'로의 전환을 돕는다. 개인적 시련을 겪거나 사회로부터 불의를 당하면, 그제야 몽테뉴의 대단함을 맛볼 것이다. 시대를 한탄하지 않고 야만성에 맞서 자신을 지켜낸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절감할 것이다. 

 

4. 

정황 파악이 고전 이해를 돕는다. 항상 맥락화하라. 이것이 고전 읽기의 핵심이다. 모든 고전은 맥락 속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문서(text)는 맥락(context) 속에서 탄생하기 때문이다. 고전 텍스트 역시 그것이 탄생한 맥락(context)의 영향을 받는다. (컨텍스트란, 텍스트를 둘러싼 전후사정을 뜻한다.) 

 

 

5.

몽테뉴의 『수상록』을 읽는 독법 하나는 그의 정신적 역량을 찾아내며 음미하는 것이다.  그리고 지금 자신을 둘러싼 정황(context) 속에서 몽테뉴의 지혜(text)를 적용해 보는 일이다. 당대의 맥락(context) 속에서 고전(text)을 읽고, 거기서 얻은 메시지는 지금의 맥락 속에서 창조적으로 적용해야 한다. 21세기의 대한민국엔 종교전쟁은 없다. 하지만 우리를 위협하고, 우리를 억압하는 것들은 여전히 존재한다. 그것은 무엇인가? 그것에 맞서 자기를 지켜내려면 어떡해야 하나? 이런 질문으로 몽테뉴를 읽어야 한다.

 

6.

『수상록』을 읽는 또 다른 독법은 몽테뉴의 불완전함에 주목하여 그에게 억압당하지 않는 것이다. 그의 정신세계는 단단했지만, 그의 일상경영은 시시했다. 몽테뉴 家는 그의 아버지 대에서부터 명성과 재산이 급증했다. (그의 아버지는 보르도의 시장이었고 부의 축적에도 유능했다. 어머니도 가계를 불려가는 데 소질이 많았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몽테뉴 성을 비롯한 막대한 재산이 그에게 상속되었다.

 

하지만 체계적인 관리, 의무에의 헌신은 몽테뉴의 관심이 아니었다. 재능도 없었던 것 같다. 사업을 경영하고, 성과 토지를 관리하는 일에는 도무지 발전이 없었다. 오히려 일상적인 일과 사업 세계 곳곳에서 그의 헛점이 드러났다. "나는 땅에 있는 것이든 창고에 있는 것이든 곡식을 분간하지 못했다." 몽테뉴의 말이다. 그는 너무나 진솔해서 자신감이 느껴질 정도지만, 사실 그것은 어느 정도의 무능함이었다.  

 

"나는 아이들도 모두 알고 있을 법한, 가장 중요한 농기구나 기본적인 물건들의 이름도 알지 못한다. 빵을 굽는 데 효모가 어떤 역할을 하는지, 큰 통 속에서 포도주를 섞으면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에 등에 대해 내가 아무 것도 모른다는 사실을 들키지 않고 그냥 넘어가는 달이 없을 정도다." 숫자에 서툴고 눈에 보이는 물건을 다루는 일에 무능한 것은 관념적인 사람들의 약점이다. 몽테뉴도 고스란히 이런 약점을 지닌 인물이었다.

 

7.

이제 몽테뉴의 현재성을 정리하자. 500년 전 프랑스에서 태어난 인물이 우리에게 무슨 의미인가?

 

1) 몽테뉴는 바꿀 수 없는 것으로부터 물러서는 것의 중요성을 알려준다. 한탄과 불평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는 법을 보여준다. 슈테판 츠바이크는 몽테뉴를 '체념과 물러섬의 대가'라고 표현한 바 있다.

 

2)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자신의 내면 세계를 지켜간다는 것의 실례를 깊숙이 맛본다. 역사를 뒤적이면 몽테뉴보다 더욱 위대한 자유인은 있을 테지만, 몽테뉴처럼 자신의 내면 세계를 글로 풀어낸 근대 이전의 사람은 없을 것이다.

 

3) 그의 자유가 거저 주어진 것이 아님을 알게 된다. 그는 스스로를 성 안의 서재에 고립시켜 그리스와 로마의 고전 세계를 거닐었고, 끊임없이 내면 세계를 탐색했다. 이를 위해 보르도 시장직을 비롯한 공적 영역을 모두 내려놓았다. 그의 일상적인 관리 능력이 시시하다고 비난하기 전에, 몽테뉴가 정신적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내린 일련의 결단과 실행을 기억해야 한다. (막대한 재산을 상속받았다고 해도 말이다.)

 

8. 

몽테뉴의 약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는 시대와 역사에 무관심했다. 독일의 서정시인으로 알려진 하인리히 하이네는 실제로는 평론과 산문에도 능했던 당대의 빛나는 지성이었다. 그는 괴테의 사망 후에 '괴테의 예술시대'가 끝났다고 선언했다. 괴테의 '역사에 시대에 대한 무관심'을 겨냥한 비난이었다. 괴테가 예술과 문화에만 관심을 두었다는 점에서는 정확한 비판이었다.

 

몽테뉴도 괴테와 비슷한 한계를 지닌 인물이다. 그는 시대와 별거하여 자신만의 성채에서 내면의 보루를 지켜냈지 시대와 동행하지는 않았다. 내면세계를 지켜낸 몽테뉴도 위대하지만, 시대에 뛰어들어 사회의 진보를 위해 투쟁한 인물도 위대하다. 위대한 인물은 내면세계에서도, 외부세계에서도 탄생할 수 있다. 그러니 어느 하나의 세계로만 판단하기보다는 두 개의 세계 모두를 염두에 두면 위대함도 제대로 배우고, 시시함도 제대로 지양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