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y Story/끼적끼적 일상나눔

범퍼 복구, 헤이리, 물건 버리기

카잔 2014. 5. 2. 21:49


1.

한 달 보름 전, 내 차의 앞범퍼가 찰과상을 입었다. 높이 20cm, 너비 40cm의 대형 기스다. 게다가 1cm 가량 안쪽으로 움푹 밀려들어갔다. 주차장에서 상처를 발견했을 때, 말문이 막혔다. 이번엔 또 누구란 말인가! (음주 운전자가 주차된 내 차를 들이박아 범퍼를 죄다 교체한 게 아직 석달이 채 안 됐다.) 이번엔 쪽지 하나 남기지 않았다. 으악, 뺑소니라니!


보안팀에 연락했더니 보안팀장이 나를 알아본다. 답답한 마음에 물었다. "단지 내에 이런 사고가 자주 일어나나요?" 놀랍게도 빈도가 잦았다. "다소 큰 단지이다 보니 일주일에 한 번 꼴로 일어나긴 하는데, 같은 입주자가 얼마 안 된 기간에 두번이나 당한 적은 저도 처음이네요." 그래, 드물어야지. 이런 일이 자주 있으면 그가 너무 불쌍하니까. 


부디 지난 번처럼, CCTV에 사고 차량이 찍혀있기를 바랐으나, 이번엔 행운이 따르지 않았다. 사각 지대란다. 이후 더 찾아보겠다 했지만 감감 무소식, 아무래도 못 찾았나 보다. 그런데도 나는 한 달이 넘는 기간 동안, 범퍼 수리를 하지 않았다. 행여나 연락이 오거나 도주 차량을 잡았거나 등의 행운이 일어나기를 바랐다. 결론은 꽝이다.


참다 못해, 어제 사고난 흔적을 처리했다. 범퍼를 갈아버릴까 했었지만 엔진오일을 교환하며 어떻게 처리할지 물었더니 도색으로 복구가 가능하단다. 기스의 범위가 크고 깊어 복원이 가능한지 다시 한 번 확인했더니, 그렇단다. 현금가 18만원으로 해 주시겠단다. 오늘 차를 찾았다. 감쪽같다.


18만원, 아까운 돈이지만 더 큰 사고가 아님에 다행한 생각도 들었다. 무엇보다 찜찜한 기분이 싸악 가셔서 좋다. 주말엔 세차도 해야겠다. (사고의 흔적 탓에 세차에도 소홀했었다.) 흐트러진 부분을 보수하고 나니, 청량감과 신선한 의지가 생긴다. 삶도 그렇지 않을까? 헤이리로 항하는 차 안에서 내 일상의 흐트러진 대목을 살폈다.


"우리가 가진 유일한 인생은 일상이다."  - 카프카


2.

헤이리에 왔다. 차를 되찾은 시각이 4시였기에 다소 늦은 시각이라 얼마간 갈등했다. 집으로 갈까, 헤이리로 갈까? 55% 정도의 끌림을 따랐다. 선택은 대 만족! 5시에 도착하여 약 5시간을 머문 셈인데, 달콤한 고독을 즐겼다.


나는 어딘가로 멀리 가면(30km 이상), 시간을 충분히 확보해서 이동 시간 대비 그곳에서 누리는 시간이 많아야 한다는 압박감이 있다. 좋은 태도지만, 소탐대실하기도 한다. 이것저것 재느라 멋진 기회를 놓쳐버리는 것이다.  


네버랜드 아웃렛에서 책을 좀 샀고 카페 아다마스에 와서 넉넉하게 시간을 보냈다. 책도 읽고 이사에 대한 검색도 하면서. (내 옆에 앉은 연인을 힐끗 훔쳐보기도 하고, 창밖을 내다보기도 했다.) 검은깨치킨 오렌지샐러드를 맛나게 먹고 아메리카노를 한 잔 마셨다. 소소한 행복들!


굳이 하루 종일이나, 두 나절 이상의 시간이 아니더라도 얼마든지 멋진 시간을 보낼 수 있음을 느꼈다.


3.

『물건 버리기 연습』은 오늘 구입한 책이다. 책의 절반 정도를 읽었는데, 원제(Living with Less)도 좋고, 번역된 제목도 잘 지었다는 생각이다. (부제 "100개의 물건만 남기고 다 버리는 무소유 실천법"까지 보고 나면 책의 내용을 짐작할 수 있다.)

 

삼십하고도 수년을 살아오다 보니, 집안에 살림들이 많아졌다. 게다가 점점 늘어나는 중이다. 이래선 안 된다. 무엇보다 나의 자유를 물건들이 빼앗아가기 때문이다. 물건들이 많아진다는 것은, 그 물건들을 구입하는 데에 돈과 시간을 썼다는 말이다. 물건을 관리하는 데에도 에너지와 시간이 든다.

 

자유는 영혼이 얼마나 강인하고 자기 조절력이 얼마나 높으냐에 달린 문제일 뿐만 아니라, 다음과 같은 일상적인 삶과도 연결된다. 소비, 소유, 의무 등등. 그래서 나는 <자유를 늘리는 5가지 원칙 : 일상편>을 정리했다. 소비 줄이기, 물건을 적게 가지기, 정리 정돈 습관화, 의무 완수하기, 자유 통장 마련하기.

 

책에서 얻은 교훈들 중 몇 가지를 적어 둔다.

 

- 문제는 소비주의가 아니라 '지나친' 소비주의다.

- 과거가 아닌 현재의 당신을 대표하고 도움이 될 만한 것만 간직하라.

- 방문객의 시선으로 집 안을 돌아다니면 구석구석 놓인 물건을 냉정하게 바라보자.

- 자신의 라이프스타일에 어울리는 물건 사이에 둘러싸여 있어야 자신을 보다 긍정적으로 느낀다.

 

- 많이 가졌다는 것은 그만큼 많이 얽혀있다는 것이다. - 법정 스님

- 미니멀리시트는 모든 면에서 양이 아니라 질을 따진다. - 레오 바바우타 (작가)

(이런 말들은 아마도 한국 편집자의 수고로 인한 산물이겠지.)

 

- 물건을 정리하다 보면 '나중에 이 물건이 필요해지면 어떡하지?'라는 생각이 들 수 있다. 하지만 너무 당황해하지 말자. 그것은 물건 버리기를 훼방 놓으려는 무의식의 작용일 뿐이다. 계획대로 물건을 버려라. 만약 정말로 다시 그 물건이 필요해지면 그 때 가서 새로 사는 것이 주변을 더 긍정적인 에너지로 채우는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