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y Story/끼적끼적 일상나눔

가을은 낭만의 계절

카잔 2014. 9. 20. 21:35

 

 

1.

가을은 내게 낭만의 계절이다. 가을이면 공연, 전시회, 콘서트를 찾고 싶어진다. 이상은 콘서트, 뭉크전, 20세기 화가전을 다녀왔고, 서태지 콘서트를 예매해 두었다. 처음엔 폼 한번 잡아보려고 미술관에 다니기 시작했는데, 언젠가부터 보이는 것, 느끼는 것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머잖아 단풍이 산천을 찾아들면, 나 역시 단풍의 방문지를 찾아갈 것이다. 잘 산다는 것은, 적어도 내게는, 매년 단풍을 놓치지 않고 즐기는 것이고 매월의 삶을 기록하고 정직하게 들여다보는 것이고, 지난 달보다 조금 나아진 나를 보며 스스로를 기쁘게 만드는 것이다.

 

2.

 

동트기 직전의 동교동이다. 어찌하다 보니, 이번 주 내내 이른 아침 하늘을 보았다. 사진 몇 장을 찍었고, 가장 멋스런 것을 꼽았다. 석양이 저문 후의 하늘은 로맨틱한 사랑빛이다. 동 틀 무렵의 하늘은 희망을 품은 열정 빛이다. 저런 하늘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하루를 열정적으로 살고 싶어진다. 열정을 다해 일하고, 열정을 다해 휴식하고, 열정을 다해 사랑하는 그런 하루를!

 

3.

작업실을 왜 이제야 홍대로 옮겼을까? 네 권의 책과 거봉 박스를 들고 귀가하면서 든 생각이다. 카페꼼마 2호점에서 50% 할인된 가격으로 구입한 책들 중 한 권은 김연수 장편소설 『7번 국도』다. 김연수를 좋아하는 와우팀원에게서 추천받은 책이다. 너가 꼽는 김연수 최고의 소설은? 7번 국도지요. 그때 이미 마음으로 책을 구입했었다. 현실은 두 번째 창조인 셈. 마음 속으로 그리는 것이 첫번째 창조요, 그 마음이 현실 속에서 실현되는 것이 두 번째 창조다.

 

이런 생각도 했다. 『7번 국도』를 읽다가 문득 동해안을 달리고 싶으면 당장 떠나야지! 나의 가을 일정은 이미 빡빡한데, 그럴 수 있을까? 책 내용이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즐기는 이런저런 상상에 기분이 들뜬다. 책 뒷표지를 보니, "우리에게는 어떤 힘이 있기에... 아직도 청춘일까?"라는 문구가 눈에 띈다. 나는 아직도 청춘이다. 꿈을 꾸는 힘, 꿈의 실현을 위해서라면 일상을 바꾸는 힘이 있다. 그리고 열심히 배우고, 배운 것을 그럭저럭 표현할 줄 아는 힘도 있다.

 

거봉을 산 건, 집 앞 과일장수 아저씨에게 고마움을 느껴서다. 늦은 오후, 아저씨는 트럭에 과일을 싣고 나타난다. 자주 그를 만난다. 재활용 분리 수거함 근처에 트럭이 있고, 나는 날마다 재활용 쓰레기를 내다 놓기 때문이다. 한번은 음식물 쓰레기통이 보이지 않아 두리번 거리는데 그가 친절하게 알려 주었다. "여기 없으면 (손가락을 북쪽을 가리키며) 저기에 있습니다. 저기에 없으면 (또 다른 곳을 가리키며) 저기에 있고요." 말투가 친절하여, 나중에 과일 사야지 생각했었다.

 

거봉 박스와 네 권의 책을 들었더니 빈 손이 없다. 3만원도 안 되는 금액의 쇼핑이지만, 마음이 풍성하고 여유로운 기분이다. 왜일까? 젊음의 기운이 가득한 동교동, 서교동, 연남동에 거주한다는 것, 오늘 두 개의 수업을 마쳐 홀가분한 저녁이라는 것, 모처럼만의 밤 시간을 여유롭게 보낼 수 있다는 것이 조화를 이루어 나에게 행복을 선사했다. 기분이 좋아서 작업실에서 홀로 스테이크와 와인을 즐겼다. 일찍 귀가한 덕분에 늦은 밤이 되기 전까지 여유를 만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