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y Story/끼적끼적 일상나눔

나의 초상 (9)

카잔 2014. 12. 4. 08:48

 

1.

사랑하는 후배의 아내가 어제 첫 아이를 출산했다. 소식이 담긴 카톡창에 아가의 사진이 올라왔다. '왜 모든 태아는 못 생겼을까' 하는 생각이 들자마자 증발했고, 나는 그 사진을 보고서 눈물을 흘렸다. 책상에서 일어나 작업실을 서성이며 울었다. 기쁨과 처연함의 눈물이었다. 알 수 없는 기쁨이 느껴졌다. 잘난 녀석이니, 당연히 처자식 잘 챙기고 가장 역할을 잘 해낼 텐데, 나는 그 당연한 일이 천금처럼 감사했다. 순간적이지만 정말 천금을 얻은 듯한 기분이었다. 


내가 왜 울까? 기쁨만은 아닌 것 같아, 이유가 궁금하여 거울을 쳐다보았다. 거울 속에 눈물을 머금은 사내가 보였다. 태아처럼 못 생긴 얼굴, 낯설다. 눈물이 기쁨 뿐만 아니라, 처연함으로부터도 온 것이란 것을 알았다. 새로운 생명이 태어났구나, 하는 인식과 함께 세상을 떠난 친구가 떠올랐다. '이것이 인생이구나. 이렇게 한 생명이 오고, 언젠가는 가고.' 아기를 위해 소원을 빌면서도(건강하게 자라다오), 녀석의 삶이 기쁨으로만 채워질 순 없음이 느껴져 애달팠다(잘 헤쳐나가거라).


2.

나는 뛰었다. 자칫 약속에 늦을까 싶어서다. 조금 일찍 일어났으면 여유롭게 갈 것을, 스스로 뛰어야 하는 상황을 만들었다. 앞서 만난 이들과 잠시라도 더 이야기를 나누려다 보니, 다음 약속 시간에 빠듯하게 일어난 것이다. 생각은 이런 식으로 변화했다. 처음에는 '여유롭게 일어서야지', 그러다가 '정시에 도착하지 뭐', 결국엔 '내가 좀 빠르잖아. 뛰어가면 돼' 하는 상황까지 밀어붙이고 만다. 


뛰어가는 내 모습을 보며, 이건 좀 너무 없어 보이는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좋아했던 선생님은 여유롭고 느긋하셨다. '나는 사람들과 함께 할 때는 느긋하려고 하지만, 이렇게 혼자 있을 땐 뛰고 있다.' 선생님의 느긋한 모습이 멋지긴 하나, 뜀박질은 왠지 나답다. (하지만 중년의 사내가 뛰는 것은 왠지 애처로워 보인다. 난 근사한 중년이 되고 싶다. 중년이 되기 전, 조치를 취해야겠다.) 

 

 

3.

"왜 이렇게 살이 빠졌어요?" 불과 삼일 전에 보았던 이가 그새 볼살이 빠졌다고 한다. 이틀 새, 세 번이나 들은 말이다. 수개월 동안 체중 4kg이 빠졌다는 사실은 알았지만, 며칠 사이 얼굴살이 그리 빠졌는지는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다. 무슨 까닭일까? 명료했다. 끼니를 잘 챙기지 못했다. 여행을 앞두고 일정이 많아졌고, 할 일도 늘어났다. 왠만하면 모두 소화하고 싶은 욕심도 있다. "수길야, 미안하게도 우리 일정을 좀 늦춰야겠다. 내가 12월 8일에서 22일까지 미국 여행을 떠나서 그 전에 보고 가고 싶었는데, 다녀와서 연말에 만나자." 화요일 아침에 친구에게 보내려던 카톡이었다. 수요일 오후에 만나기로 했던 친구인데, 결국 카톡을 지우고 어제 만났다. 친구 일정에 차질을 주고 싶지 않고, 올해가 가기 전에 만나고 싶고, 왠만하면 선약을 바꾸고 싶지 않아서다. 


사람들과의 만남이 식사 약속이면 거하게 식사를 들면 된다. 어제 친구를 만나서도 전복 삼계탕을 먹었다. 차를 마시는 약속도 있다. 이번 주의 어떤 하루는 커피만 마시다가 끼니를 놓치곤 했다. 끼니를 챙기지 못한 게 살빠짐의 원인 중 하나일 것이다. 그것이 전부는 아닐 텐데, 왜 살이 자꾸 빠질까? 신경 쓰이게. 스스로 걱정되는 것은 아니다. 나를 걱정해 주는 어떤 이들에게 미안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