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틀랜드 현지 시각. 12월 15일(월) 밤 11시 33분.


1.

포틀랜드를 여행하는 동안, 내 여행 짐은 보스턴 백 하나뿐이다. 가방에는 노트북과 카메라,바지와 니트, 세면도구, 여행책자 그리고 충전을 위한 케이블, 휴대용 스피커가 전부였다. 전자기기는 요물이다. 충전기와 케이블까지 챙기면 부피와 무게가 늘어난다. 언젠가는 이들로부터 자유로운 여행을 떠나야겠다고 생각했다. (Unplug Life에 대한 책도 있더라.) 가방은 무겁지만, 10~20분은 들고 다닐 만하다. 시애틀 친구 집에 캐리어를 맡겨두길 잘했다.


포틀랜드 유니온 역에서 에이스 호텔까지는 도보 15분 거리였다. 가는 도중 비가 내려, 서둘러 걸었다. 미국에서 길 찾기는 쉽다. 내 길눈이 밝은 편지만, 그것 때문이 아니다. 구글 지도 APP 덕분이다. 스마트폰만 열면, 출발지와 도착지 그리고 도중 어디에 있는지를 알려준다. 놀랄 만큼 편리한 세상이지만, 여행자들은 구글 지도의 유용함 뿐만 아니라 길을 잃는다는 것의 유익에 대해서도 알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길을 잃으면, 관찰자가 되고 역설적으로 길을 잘 알게 된다. 물론 약간의 불안감을 견뎌야 하지만.)

 

 

에이스 호텔 앞 Stark Street

 

2.

포틀랜드 히피 문화의 상징이라는 에이스 호텔과의 첫 만남은, 환상적이거나 흡족과는 거리가 멀었다. 내가 지불한 가격에 비해 객실은 작고 불편했다. 그래서 얼른 거리로 나왔다. 저녁 7시의 다운타운인데, 한국으로 치면 밤 12시 변두리의 불 꺼진 번화가 정도로 느껴졌다. 조금 둘러보니 ‘변두리’라고 하기엔 거리와 건물들이 깨끗했다. 한 블록간 거리가 매우 짧았다. 50~60m 정도였다. 높은 건물은 없었다. 에이스 호텔 지척에 포틀랜드의 대표 명소 ‘파웰북스’가 있는데, 하얀 불빛이 밝게 빛나서 눈에 띄었다.

 

 


 

3.

배가 고파왔다. 열차 안에서 터키 데리야키를 맛나게 먹었지만 양이 적었다. 시애틀에서 포틀랜드로 이동하느라 에너지를 많이 썼다. 이제 막 도착한 도시에서의 첫 식사는 가볍게 하는 게 낫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고급 레스토랑 음식도 낯설음 때문에 제대로 즐기지 못하기 때문이고, 사실 어디로 가야할지도 잘 모를 때니까. 지금 나의 문제가 바로 그것이다. "I don't know Where to go." 절망스러운 무지이나 한심스러운 나태가 아니다.

 

(Supreme Team의 노래 <Where to go>는 한심하게 보내는 (아마도) 사내의 일상을 그렸지만) 나의 'Where to go'는 떨림과 기대다. 여러 개의 선물을 받아, 무엇부터 열어야 할지 잠시 'I don't know'일 뿐일 상태라고 할 수 있겠다. 낯선 도시가 손에 든 선물처럼 '여기에 좋은 게 들어 있을거야'라는 실감을 느끼게 하는 건 아니다. 낯섬이 주는 얼마간의 두려움이 있지만, 그것이 주는 두근거리는 기대도 있다.

 

4.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를 때, 내가 아는 최고의 방법은 '끌리는 곳으로 걷기'다.

호기심을 품고 걷는 건 여행자에게 많은 선물을 주지만, 주의해야 할 점이 있다.

 

길을 잃어버리는 일에 대해 염려하지 않는 것이다. (앞 문장을 다시 읽으시길!) 길을 잃지 않도록 조심하라가 아니다. 길을 잃어버릴까 하는 염려를 내려놓으라는 말이다. 길을 잃어야 탐색이 시작되고, 길을 탐색한 후에는 다음 날의 여행이 쉬워진다. 나는 길을 걸을 때 지도와 여행 책자를 보는 대신 건물과 사람들과 거리의 모습을 본다. 심지어 쓰레기통에 쓰인 문구도 본다. 걷다 보면, 낯섬은 사라지고 익숙함이 싹트기 시작한다.

 

길 잃을 염려하지 말기는 항상 주의해야 할 점이다. 이건 알고 있던 바지만, 오늘 새롭게 깨달은 주의사항이 있다. 이것은 하루에 세 번만 주의하면 된다. 끼니 때에는 탐색을 위한 '걷기'가 잘 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발걸음이 식당 앞에 머물러 창 안으로 식사하는 사람들을 들여다보기 십상이다. 오늘 나의 '걷기'가 그랬다. 결국 나도 모르게 먹을거리가 잔뜩 쌓인 대형마트 안으로 들어갔다. 건강한 야채들이 내게 말을 걸었다. "나, 당신과 함께 갈 준비 됐어요."  

 

 

 

 

 

레스토랑에서 저녁 식사를 먹으려던 계획을 변경했다. 마트를 구경하다가 맛있게 보이는 음식을 보았기 때문이다. 마트에서 데워진 음식도 팔았다. 수프를 비롯한 국물이 있는 음식을 (우리나라에선 만두포장에 곧잘 쓰이는) 일회용 용기에 담는 모습이 이색적이었다. 계산을 어찌 하는지 몰라, 한 청년을 따라하려던 중 나를 매혹시킨 음식이 나타났다. 가격 라벨이 붙은 걸 보니 계산도 간단했지만, 무엇보다 가격이 저렴했다. 아래는 16달러짜리 나의 저녁 식사다. 이걸 얼만큼이나 먹을 수 있을까?

 

 

메인요리는 BBQ Roast Chicken이다. 치킨 통구이쯤 되려나. 나는 이놈을 두고 3분 정도 고민했다. ‘혼자 다 먹을 수 있을까’는 처음부터 배제시킨 질문이었다. 저걸 어찌 다 먹는단 말인가. ‘내일 아침에도 먹을 수 있을까’ 를 두고 내일의 예상 식단과 견주느라 시간이 걸렸다. 먹고 싶으면 생각 없이 없으면 간단하고 편할 텐데, 매번 이런 식이다. 나는 늘 다음을 생각하고 다른 것들을 고려한다. 하지만, 이것저것 고려하다가 현재를 즐기는 일은 놓치지 말아야 한다는 것도 염두에 두며 산다.


샐러드 양도 꽤 많았다. 오늘 구입한 브랜드의 유기농 주스는 맛이 별로였다. 치킨 통구이도 기대 이하였다. 영양을 생각하며 먹어야 할 정도였다. ‘영양 만점 단백질이니 퍽퍽해도 먹어야 해’, ‘다양한 야채가 들어 있으니 이런 맛일 수도 있지 뭐’. 결국 샐러드와 치킨 모두 1/3 정도 밖에 먹지 못했다. 그런데도 배가 부르다. 남은 건 어떡하지? 마트에서 보았던 전자레인지가 떠올랐다. ‘그래, 용기 내어 마트에서 먹자.’ 이런 경우로 용기를 발휘해야 하다니, 쩝. ‘ 지금까지 전자레인지가 있던 호텔도 많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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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보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