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Life is Travel/가끔은 북미여행

하나에 함몰되는 여행

카잔 2014. 12. 17. 17:22

포틀랜드 여행 둘째날 오후, 예상보다 UNION WAY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Steven Alan과 WILL, 단 두 곳을 둘러보았을 뿐인데, 90분이 흘렀다. ‘이런 식으로 여행하다간 하루를 UNION WAY에서 끝나겠군. 하하하!’ 이런 생각을 하며 체크인을 위해 호텔로 향했는데, 하루를 보내고 난 지금은 '그렇게 하루를 보내면 어때?' 하는 생각이 든다.

 

어설픈 여행자는 모든 것을 ‘훑고’ 지나간다.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고 한두 번 바라보다가 다음 장소로 이동한다. 이해되는 일이다. 어딘가에 오래 머무르거나 무언가를 가만히 응시하기에는, 가야 할 곳은 많고 여행할 시간은 적다. 그래서 잠시 여행을 멈추고 바라보거나 생각하기보다, 기억하기 위해 사진을 찍는다. 혹자는 훗날 자랑하기 위해 찍기도 하고.

 

대다수 여행자가 이렇게 여행한다. 그러고선 일상으로 돌아간다. 친구들이 ‘여행 어땠어?’라고 물으면, ‘이번 여행이 나를 조금 바꾸었어’라고 답변하는 이들은 드물다. 그런 존재론적 답변보다는, ‘정말 짱이었어’라고 말하며 화려한 도시나 멋진 자연 풍광이 담긴 사진을 보여준다. 여기가 어디냐는 물음에는 “시애틀 다운타운이야” 정도로만 대답한다.

 

지역의 역사, 새로운 문화, 지금까지의 변화, 우리와의 차이점 등에 대해서는 말하지 못한다. 자세히 보기보다는 ‘훑고’ 다녔고, 생각하며 다니기보다는 사진만 ‘찍어’ 왔으니까. 나는 이러한 세계 여행이 어떤 유익을 주는지 회의한다. 낯선 문화 속에서 건져 올리는 생각의 전환은 있을 테지만, 투자한 돈과 시간에 비하면 미미하다.

 

하루가 저물어가는 즈음, 호텔 샤워 꼭지에서 나오는 따뜻한 물을 맞으며, 나는 이렇게 세계 여행의 공과를 물었다. 에코 식으로 비틀어 표현하면, “새로운 문화를 접한다는 것과 조금 있어 보인다는 것 말고는, 세계 여행이 국내 여행보다 나은 게 뭐야?" 여행 에세이를 쓴다면, 우리나라 여행기부터 쓰겠다고 생각한 까닭이기도 하다. 

 

1/3 즈음 썼던 여행책 원고(가제『낭만여행자』)가 사라진 게 떠올라, 심히 아쉬워도 했지만, 얼른 아쉬움을 달랬다. (달래는 비법은 없다. 그저 시간의 흐름을 기다리는 것 밖에.) 나는 따뜻한 물이 내 몸에 닿는 것에 집중했다. 몸이 풀어지고 기분이 나아졌다. 기분좋음을 만끽하며, 오늘의 생각을 여행 노하우로 정리하기 위해 머릿속으로 단어들을 굴렸다.

 

[Travel Tip] 가끔씩 여행일정을 치워두고 하나에 함몰되라.

Hold one thing. Make a dive for it without itinerary. 

 

그 하나가 무엇이어도 좋다. 장소, 물건, 사람 그 어떤 것도 괜찮다. ‘스타벅스’는 어떤가? 시애틀이라면, 스타벅스에 대한 모든 것을 알아보는 여행을 시도하기에 제격이다. 남들 다 가는 파이크 플레이스 마켓와 스페이스 니들에 가는 것도 나쁘지 않지만, 그것은 다른 사람들과 특별히 다를 게 없는 여행이 되기 쉽다. 

 

스타벅스 1호점

 

대신 하루나 이틀을 떼어내어 스타벅스에 관한 모든 것을 여행하는 건 어떨까? 스타벅스 1호점을 방문하고(아쉽게도 커피 마실 공간은 없다), 근사한 스타벅스에서 여러 종류의 마실거리를 음미하며(커피만 있는 게 아니니까), 인터넷에서 스타벅스나 하워드 슐츠에 관한 자료를 읽는 것. 색다른 시간이 될 것이다. 내겐 이런 여행도 괜찮아 보이다. 참! 시애틀 퍼블릭 라이브러리도 도보 15분 거리에 있다. 그곳에는 커피나 하워드에 대한 책이 있을 테고.

 

 

스타벅스 매장을 관찰하는 일은 스펙타클할 지경이다. 사람들은 끊임없이 계산대 앞에 줄을 선다. 주문을 마친 이들 중 한가해 보이는 사람에게 말을 걸어도 좋을 것이다. 매장에는 뉴욕타임즈, 월스트리트 저널 등 읽을거리도 가득하다. 프로모션을 위한 안내 팻말과 기념품도 볼거리다. 커피에 관한 책 한 권 읽는 것도 괜찮은 교양 쌓기다. 이미 우리나라, 특히 서울은 카페가 널려있고 커피 소비량도 많다.

 

 

한 곳에 오래 머무르고, 하나를 자세히 관찰하는 여행.

그리하여 하나라도 제대로 알고 돌아오는 여행.

 

이것도 여행의 기술이다. ‘여행은 즐겁고 유익하다’는 관념은 거짓이다. 세계 여행은 자주 고달프다. 비행기 안에서의 시간은 힘들고(5년 전까지는 안 그랬는데), 낯선 도시가 요상한 음식을 내놓기도 한다. 때로는 숙박료, 택시비, 음식 값이 터무니없이 비싸다. 소중한 시간을 떼어 여행을 떠났는데, 기다리는 시간은 또 얼마나 많은가. 비행기를 기다리고, (배낭여행이라면) 버스를 기다리고, (패키지상품이라면) 사람들을 기다린다. 게다가 우리는 조만간 여행을 끝내고 돌아가야 한다. 인생도 그렇지만, 여행 시간은 제한적이다. 인생보다 더욱.

 

여행자에게는 여행의 기술이 필요하다.

자신에게 적합하면서도 스스로를 발전시키는 기술이.

그것을 찾기 위해 모색하자. 기끼어 하나에 함몰되는 연습부터. 

 

실험과 모색은, 하나씩 진득하게! 이길과 저길 모두! <작품명 : this way that w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