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Life is Travel/가끔은 북미여행

내 취향은 호손 쪽은 아니지

카잔 2014. 12. 18. 22:35

[포틀랜드 3일차 저녁] 2014년 12월 17일(수)

 

1.

Canteen 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포틀랜드에 사는 한 사내와 이야기를 나누느라 예상보다 90분은 더 머물렀다. Corey 라는 이름의 그와 나는 일단 음식 취향이 비슷해서인지 여러 가지 공감하고 나눌 수 있는 이야기가 많았다. 나중에는 그의 인생 이야기도 듣고, 나의 최근 힘겨움에 대해서도 얘기를 나눴다. 우정에 대한 나의 개똥철학까지 그는 아주 사려 깊은 눈빛으로 들어주었다. 사위가 어둑해졌다. 그도 돌아가야 했고, 나도 여행을 이어가야 했다. 여행자에게는 자유가 있다. "근처에 어디 추천할 만한 곳 없어요?" 결국 나는 그의 차를 얻어타고 호손 스트리트 파웰 북스(Powell's Books) 앞에 내렸다. 질문에 대한 친절하고 따뜻한 답변이었다.

 

 

2.

나는 호손 거리(Hawthorne Boulevard)에 내려 파웰북스로 들어갔다. 다운타운의 본사와는 규모나 시설 면에서 비교되기 힘들었다. 파웰북스 호손점(?)은 아담했고 소박했다. 서점의 규모나 시설 그리고 책을 소장한 권수는 달라도 낱권의 책은 같았다. 이런저런 책을 구경하는 것으로 시간을 보내는 데에는 문제 없었다는 말이다. 결국 또 몇 권의 책을 구입하고 말았다.

 

 

3.  

호손은 파웰북스를 제외하면 내 취향은 아니었다. 파웰북스에서 구입한 『This is Portland』에 따르면 호손은 가장 히피적인 곳이다. 저자(Alexander Barrett)는 호손 지역(Hawthorne Distirct)라 불리는 이곳 10블록의 거리는 게으른 풋내기 20대들, 미친 홈리스들, 더러운 히피들, 시끄럽게 탄원하는 사람들, 거리의 악사들이 3m마다 늘어서 있다고 말한다. Barrett는 위트 넘치는 저자다. "나는 대체로 점잖음 사람이나, 호손은 나를 격렬한 신보수주의자로 만든다. 직업을 가져! 라고 속으로 소리치게 된다."

 

Barrett에 따르면 호손은 포틀랜드에 연관된 안 좋은 고정관념이 몰려있는 곳이다. 호손과 대비되는 지역은 벨몬트(Belmont street)다. 벨몬트는 호손과 멀지 않은 곳이다. 포틀랜드에 관한 온갖 좋은 고정관념을 만날 수 있는 곳이다. "It's green, it has great restaurants, it has cool young parents with reasonably sized strollers, and it's peaceful." Battette은 '호손 VS 벨몬트'라는 짧은 글의 마지막을 역시 재치있게 마무리한다. "벨몬트의 가장 멋진 곳이 호손에서 불과 6블럭 떨어져있다. 그러니 친구가 호손에서 오후 시간을 보내자고 제안한다면, 당신은 친구의 제안을 중단하고 더 멋있는 곳으로 이동할 수도 있다."

 

나는 이러한 사실을 숙소로 돌아오고서야 알았다. 나는 벨몬트로 갔어야 했다. 여행책자는 호손을 최근에 탈바꿈한 명소로 소개했지만, 모든 추천은 '누가 추천했는가'를 물어야 한다. 와우들과 제주도 여행을 갔을 때, 원두커피로 유명한 카페를 찾아갔다. 우리 일행 중 "어떤 커피가 맛있어요?"라고 물었다. 주인장 왈, "취향에 따라 다르지요. 취향을 말씀해 주시면 추천해 드리겠습니다." 신맛을 좋아하는 이들은 예가체프를 맛나다고 하지만, 쓰고 부드러운 맛을 좋아하는 나는 수프리모 쪽이다. 세상에는 사람들 숫자 만큼의 취향이 있고, 모든 지역, 모든 음식, 모든 자동차는 제각각의 추종자를 거느린다. 모든 지역을 좋아하고, 모든 음식을 맛나게 먹고 모든 자동차가 멋있다고 생각한다면, 취향 따위는 신경쓰지 않아도 될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물어야 한다. 추천하는 이는 어떤 취향을 가진 사람인가, 라고.

 

호손 거리

 

4.

과연 호손은 지저분하고, 어두웠다. 이미 7시가 넘은 시각이라 다른 지역으로 갈 상황은 아니었고, 호손 거리를 둘러보기로 했다. 동시에 식사 장소를 향해 걷고 있었다. 많은 가게들이 문을 열어 두고 있었지만 마음이 끌릴 만한 곳은 거의 없었다. 조금 신기하다 싶으면 사진을 찍어두긴 했지만, 샵 안으로 들어가서 구경을 하지는 않았다. 작은 극장이 보여 가까이 가 보았더니 <버드맨>을 상영하고 있었다. 화요일에는 4불이란다. 어제가 화요일인데, 하루 전날 왔더라면 영화를 보았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5.

Roost에서 저녁식사를 먹었다. 오늘은 아침과 점심을 가볍게, 저녁을 분위기 있게 먹는 날이라 선택한 식당이다. 나는 레드와인 한 잔과 치킨 요리를 시켰다. 처음에는 자리가 없어서 바에 앉았는데(아래 사진 참조), 요리가 나오기 전에 테이블이 여럿 비어서 자리를 옮겼다. 좀 더 편안한 자리에서 식사와 파웰북스에서 구입한 책을 즐겼다. 음식이 맛났다.

 

 

 

미국인들이 생각하는 일반적인 팁의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점잖게 직원에게 물었는데(팁 문화가 궁금하여 여러 식당에서 묻군 했다), 그녀는 웃으며 "저마다 다르고, 그건 손님께 달린 일"이라고 했다. 맞는 말이구나 싶으면서, 문화의 불문율에 관해 묻기에는 대상을 잘못 선택했다는 생각도 들었다. 15%의 팁을 놓고 나왔다. (나는 15% 또는 20%를 내는데, 얼마나 기분좋은 서비스를 받았냐에 따라 나름의 차등을 둔다.)

 

 

6.

집으로 가는 길에 물을 사려고 편의점에 들렀다. 페레로 로쉐 초콜릿이 아주 저렴해서 3개들이 3봉지를 샀다. 스니커즈도 우리나라에 비해 반값도 못 되었다. 식당에서 호텔까지는 30분 정도는 걸어야 해서 목이 마르던 터에 물을 마셨더니 시원함이 온 몸 속으로 전해졌다.  

 

 

7.

밤문화로 따지면 지구상에 대한민국만한 곳이 또 있나 궁금하다. 유럽은 해가 지기 시작할 무렵에 끼니를 해결하지 않으면 갈 곳이 사라진다. 9시가 넘으면 대부분의 식당과 상점이 문을 닫았던 것 같다. 호주 여행을 할 때에도 상점이 6시에 문을 닫았다. 목요일인가, 일주일에 한 번 9시 또는 10시까지 영업을 했다. 다운타운 제외하면 외국의 밤거리는 한국의 새벽 3~4시 분위기가 된다. 10시 조금 넘은 시각인데 거리는 정말 깜깜해졌다. 눈 앞에 비닐로 만든 듯한 간이 텐트가 보였다. (아래 사진) 텐트 옆 간이 의자에 노숙자가 가만히 앉아 있었다.

 

 

어디에서 들었는지 몰라도, 노숙자들이 위험하지 않다는 말이 떠올라 그를 지나쳤다가 다시 되돌아가 몇 마디의 말을 주고 받았다. "여기서 주무세요?"(정황상 뻔한 말인데도 그는 대답해 주었다) "얼마동안 여기서 지냈어요?" "지낼만 하세요?" (이런 질문에도 노숙자는 느릿한 말투로 답변했다. 나는 방금 구입한 초콜릿 드시겠냐고 물었더니, 지금까지와는 달리 빠른 동작을 발휘하여 받아갔다. 나는 사진을 찍어도 되겠냐고 말했고, 그는 경계하는지 아닌지도 모를 듯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몇 장의 사진을 찍었지만 정작 제대로 나온 것은 그나마 그를 뒤에서 찍은 위 사진 한 장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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