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y Story/아름다운 명랑인생

내 호흡이 멈춘 그 날엔

카잔 2016. 3. 15. 19:12

막스 리히터의 <사계> '봄'을 들었다. 세상엔 듣자마자 빠져드는 음악들이 존재한다. 리히터의 ‘봄’은 단박에 내 영혼을 사로잡았다. 듣고 또 들었다. 내리 한 시간을 이 음악에 바쳤다. 이후엔 눈을 감고 들었다. 조금 피곤하던 터였지만, 이 비범한 선율을 멈출 순 없었다. 외출 시각이 다가와 스피커 전원을 끌 때까지 두 시간 남짓 한 곡만 들었다. 무엇이 그리 좋았을까?

 

처음 들었을 때는 감격했고, 네다섯 번 들을 때는 전율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팔을 천천히 들어 올려 하늘로 활짝 뻗었다. 만세를 부르는 자세로 깊게 호흡했다. 세상의 맑은 기운과 대지의 든든한 에너지를 온몸으로 흡수하고 싶다는 바람이 들었다.

 

다시 앉아 리히터가 빚어낸 예술을 듣고 있으려니 '이대로 잠이 들면 좋겠는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면 깊숙이 무의식에 이 곡을 새겨두고 싶은 마음이었다. 20분 알람을 맞추고서 자리에 누웠다. 청각은 잠들기 전 가장 마지막까지 활동하는 감각이다. 맞춤하게 볼륨을 맞췄다. 잠들지 못할 정도로 크지 않게, 영혼에 스며들 만큼 작지 않게.

 

귀는 황홀하고 영혼은 고요하다. 웅장하게 울려 퍼지는 선율과 경쾌하게 산들거리는 멜로디가 하모니를 이루어 영혼을 어루만졌다. 여러 단상이 편안히 누운 나에게 찾아들었다. ‘예술이 정신을 살찌우는구나. 그리스의 시인들은 영웅과 비극을 노래함으로, 클래식 거장들은 가슴을 무찔러 들어오는 영감으로 인간을 돕는다. 예술의 이 경이로운 힘을 보라! 불멸할 수밖에.’

 

잠들기 직전(아니면 꿈이었으려나), 일련의 장면이 영상처럼 떠올랐다. 내 코끝에서 호흡이 멈춘 후의 모습들이다. 나는 가끔 삶의 마지막 순간을 상상해 본다. 생의 만년에 대한 생각이 아니다. 장례식 이후에 펼쳐질 모습이 궁금하다. 얼마 전에는 내가 바라는 장례식에 대한 글을 쓰기도 했다. 나는 매장이나 수목장보다 화장을 원한다, (법이 개정되어 가능해진다면) 뽀얀 가루로 변한 나의 육신을 병산서원 앞 낙동강에 뿌려 주면 좋겠다, 는 글이었다.

 

오늘은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 날, 누군가가 리히터의 '봄'을 열 번쯤 들려주었으면 고맙겠다.'

 

15분쯤 지났다. 잠을 청했지만 잠들지는 못했다. 평온한 마음을 느낀 탓인지, 의식이 점점 또렷해져서인지, 결국 몸을 일으켰다. 방안에는 여전히 비발디의 재해석된 클래식이 연주되고 있었다. 낮에는 이런저런 중요한 일을 했고, 저녁엔 친구와 즐거운 대화도 나눴다. 이 모든 시간이 무(無)로 변하거나 불만족스러운 하루를 보냈더라도, 오늘은 가치 있는 날이다.

 

막스 리히터의 <사계, 봄>을 들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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