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roduction/와우팀 이야기

어느 와우수업날의 스케치

카잔 2016. 3. 27. 01:52

1.

와우수업은 한 달 중 가장 행복한 날이다. 기다려짐은 당연한 일! 수업 진행자라는 역할에 따르는 부담과 책임감을 피할 순 없지만, 기쁨과 기대감에 비할 바는 아니다. 만남을 반가워하며 나누는 인사 만으로도 마음이 따뜻해지고 영혼이 충만해진다. 나에게 가장 큰 기쁨과 평온함을 안겨주는 공간을 꼽는다면, 와우광땡 수업이 열리는 장소다. 오늘은 그 행복의 공간에 무거운 몸과 분주한 마음을 이끌고 가야 했다.  

 

2.

"2016년 3월 26일, 와우광땡 수업을 시작하겠습니다." 약간의 비음이 곁들어진 목소리로 와우수업 시작을 알렸다. 평소에도 차분한 목소리였지만, 오늘은 차분하다 못해 어딘가 불쾌하게 들릴 법한 저음이었다. 명랑함과는 수만리 떨어진 뉘앙스였다. 이번 주에는 편도선이 잠시 부었다가 가라앉았다. 어젯밤엔 경미한 두통이 느껴지고 코를 훌쩍 거리는 것 같아 감기약을 사 먹었다. 두통은 아침까지 이어졌다.

 

"와우수업이 소중하고 의미가 있다면 최상의 컨디션으로 오세요. 특히 전날 밤엔 잠을 푹 주무세요." 와우수업뿐만 아니라, (와우MT와 같은) 중요한 일정을 앞둔 날이면 와우들에게 전하는 권면이다. 그들에게 권하는 권면을 나 역시 따른다. 어젯밤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밤 9시가 넘어가자 일과를 정리하고 잠자리에 들었다. 긴 시간 동안 푹 잤다. 그런 노력으로도 두통은 사라지지 않았고 아침에는 여타의 업무로도 바빴다.

 

3.

수업 시작과 함께 나는 오롯이 수업과 와우들에게 집중했다. '나는 와우 리더다' 라는 주문 따윈 필요없다. '여기에 있는 동안에는 와우들에게만 집중해야지' 하는 결심을 동원하지 않아도 괜찮다. 가장 중요한 일(소중한 사람과의 만남)에의 몰입은 제2의 천성이 되었다. 창가의 식물들이 해를 향하여 고개를 뻗듯이 나의 관심은 와우들을 향했고, 대지가 모든 빗물을 받아내듯이 나는 그들의 이야기를 내 마음에 심었다.

 

4.

<이 달의 3대 뉴스> 발표로 시작되는 수업은 오전 10시에 시작되어 저녁 7시에 끝난다. 이후에는 식사와 2차, 3차 모임이 이어진다. 하루종일 진행되는 수업인 만큼 체력적인 부담이 뒤따른다. 졸음이 몰려올 오후에도 서로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려 애쓴다. 애정의 모습이다.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고, 애정을 나누다 보니 일 년 동안 많이 친밀해졌다. 친밀함은 매우 소중한 자산이지만, 우리가 쌓은 결실이 그것만은 아니다.

 

"나에 대한 이해가 깊어진 3월이었습니다. 으뜸친구를 다시 인터뷰 하면서 나를 발견하고, 감정형 친구와 내가 얼마나 다른지 느꼈죠. 가족들에게 '우리집은 왜 이렇게 조용하냐'고 묻곤 했는데 그건 (성취지향적이다 보면 타인에게 무관심하기 일쑤인) 나로부터 비롯되었음을 깨달았습니다." 중년의 어느 와우가 발표한 3대 뉴스 중 하나다. 이러한 사례는 수없이 많다. 일 년 동안 함께 공부하는 동안, 우리 모두는 자신을 좀 더 많이 알게 되었다. 선생에겐 큰 기쁨이다.

 

5.

수업의 시작은 언제나 <이 달의 3대 뉴스> 발표다. 나는 이 시간을 사랑한다. 노트북 자판 소리와 사각사각 연필이 글자를 창조하는 소리를 듣는 게 황홀하다. 와우들이 짧게나마 자신의 삶을 들여다보는 모습을 보는 게 즐겁다. 나의 열 마디 말보다 스스로 성찰한 한 마디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면서 와우들의 발표를 듣는다. 우리는 이 시간을 통해 서로의 한 달이 어떠했는지 스케치한다.

 

발표가 끝나면, 나는 떠오르는 대로 몇 마디의 코멘트를 늘어놓는다. 이를 '키워드 수업'이라 부른다. 오늘은 광땡수업에서는 처음으로 '키워드 수업'을 하지 않았다. 와우 개개인들에게 발표 시간을 비교적 넉넉하게 주었기 때문이다. 3분, 5분으로 제한하여 진행할 때도 있지만 오늘은 그리하지 않았다. 매달 나누던 <이 달의 3대 뉴스>를 다음 달부터는 들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6.

"갑시다. 밥 먹으러." 우리는 경복궁역 앞 '삼백집'으로 향했다. 콩나물국밥을 먹고 30분 동안 서촌을 산책했다. 따뜻한 봄날씨는 아니었지만 순간들이 모두 소중했다. 하긴 날씨가 어찌 삶의 순간마디 마디에 깃들어진 소중함을 경감시킬 수 있을까. <효자동 베이커리>에서 콘브래드를 사 들고 수업 장소로 향했다. 오후 수업은 와우들의 발표 시간이다. 오늘은 <관심사 수업 : 내가 좋아하는 10개의 단어> 발표로 진행되었다.

 

"좋아하는 단어를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즐거웠어요." 한 발표자의 소감이다. 나는 "자신이 좋아하는 단어를 발표하면서 이 방안의 에너지가 고양되고 있음이 느껴지지 않으세요?" 라고 물었다. 일부는 고개를 끄덕였고, 일부는 "느껴져요"라고 대답했다. 한 사람에게서 9~10개의 단어들을 들은 후에는 가장 그다운 단어, 가장 그와 어울리는 단어를 찾기도 했다. MBTI와 Strenth Finding과는 달리, 그저 직관을 따르면 되는 즐거운이 있었다. 어느 순간부터 두통이 사라졌다. 수업을 하며 신경을 쓰는 탓에 더 아프진 않을까 염려했는데, 기우였다.

 

7.

10기 와우 '광땡'들은 이제 졸업여행과 수료식만 남았다. 모두들 끝을 의식했겠지만, 나는 오늘 수업에서 마지막이라는 단어를 쓰지는 않았다. 내 머릿속에 '와우 = 평생 우정'이라는 공식이 있기 때문이고, 의식(수료식)의 중요성을 간과하는 성향을 지녔기 때문이겠다. 와우스토리 과정이 끝나도 여전히 새로운 파트너십으로 만나겠지만, 적절한 매듭짓기도 필요하리라. 매듭을 통해 강하고 곧게 뻗어나가는 대나무가 떠오르는 밤이다.

 

'Introduction > 와우팀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마지막 와우수업 스케치  (0) 2016.06.26
<연지원에 대하여> 출간기념회  (6) 2016.04.01
<연지원에 대하여> 단상  (6) 2016.03.25
눈물이 많아지는 수업  (0) 2016.03.08
욕망이 소멸되는 시간  (0) 2015.11.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