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y Story/끼적끼적 일상나눔

4월 첫 날의 순간포착

카잔 2016. 4. 1. 07:32

07:25

6시에 일어나 지금까지의 시간을 살뜰하게 보내지 못했음을 인식했다. '내가 지금 뭐 하고 있나! 아침 10시 미팅(교재 개발 건을 준비해야 하고, 워크숍 교재 모듈을 적어도 하나는 완성해야 하고, 오후에는 창원으로 내려가 독서 강연을 하고, 내일 글쓰기 수업도 준비해야 하는 오늘인데... 아이 참! (잠시 동안이지만) 한심했군.'

 

나는 정신을 차렸고, 마이클 조던이 떠올랐다. 정신차림과 조던의 상관 관계나 연결 관계가 있을까. 둘 사이에 순차적으로 이어진 생각은 있겠지만 기억나지 않는다. 그저, 나는 5분을 투자하여 조던의 영상 중 가장 좋아하는 것을 봤고, 매번 그렇듯이 감동하고 울컥했다. 특히 오늘은 마지막 장면, 트로피를 끌어안고 우는 조던의 모습에 눈물이 날 뻔 했다. 조던을 보고 나서, 자세를 고쳐 앉았고 책상을 정돈했다.

 

 

11:40

10시 미팅이 끝났다. 생산적인 시간은 못 되었지만, 마음이 잘 맞는 세 사람에겐 편안한 시간이었다. 나를 제외한 두 사람은 각자의 책을 쓰기 위한 프로젝트를 만들었다. 서로에게 즐거운 규율이 되어주도록 지속적으로 쓰고 정기적으로 만나는 모임이다. 나는 먼저 책을 낸 사람으로서 임시 코치가 되기로 했다. 나는 그 모임의 이름을 만프로(만우절 프로젝트)라 부르자고 했다. 2016년 4월 1일에 만들어졌고, 절대로 만우절의 거짓말처럼 되지는 말자는 의미를 담았다.

 

13:35

서울역 대합실을 지나가다 신문 가판대를 보았다. "에이스들 총출동"이라는 스포츠신문 1면 기사를 보고서야 오늘이 프로야구 개막일임을 알게 되었다. '드디어 시작이구나. 내가 바쁘긴 했나 보다. 전혀 몰랐네.' 열차에 앉아 내가 제대로 본 게 맞나 싶어 인터넷 검색을 하고서 오늘이 금요일이라는 사실에 또 한 번 놀랐다. 개막전은 항상 토요일이라 날짜 감각도 없이 오늘을 토요일로 착각했던 것. 좋다! 시간 감각이 또렷한 편인 내가 날짜가 어찌 지나는지, 지금이 몇 시인지도 모른 채로 사는 모습은 곧 열정의 표지다. 

 

15:20

한 시간 남짓 동안 완전히 몰입했다. 창원행 KTX 열차 안에서 곯아떨어진 것이다. 많이도 잤다. 지나간 시간은 아쉽지만 개운해서 좋다. 열차를 타기 전, 졸음을 쫓아가며 카페에서 일했던 모습이 꼭 어제 일 같다.

 

20:10

이 시각은 함안군칠원도서관에서 강연을 하는 중이었다. 강연이 시작되고 30분 즈음이 지나면서부터 더욱 몰입하기 시작했고 저녁 8시 10분에는 여유를 되찾았다.  강연의 첫 마디는 질문이었다. "인문학에 관심이 많으세요? 독서에 관심이 많으세요?"라는 질문에 청중이 반반씩 나뉘어 손을 들었다. 나는 독서 이야기 세 가지, 인문학 이야기 세 가지를 전했다. 선방이었다. (잘 막아냈다는 뜻의 '선방'은 아주 흡족하지도, 그렇다고 말아먹은 것도 아닌 '그런 대로 괜찮아'라는 의미로 강연 소감으로 내가 자주 쓰는 말이다.)

 

22:10

강연 후 열 명의 사람들이 모여 카페에서 차를 마셨다. 내게 질문들이 주어질 때마다 정성껏 답변 드렸다. 강연 후 뒷풀이 자리에서는 내가 가장 적극적으로 말을 하는 순간이다. 사실 힘과 용기를 좀 내야 한다. 조금 피곤하더라도, 대화를 독차지한다는 느낌이 들어도 말을 이어간다. 내게 궁금한 것들이 많은 분들이 모였을 때 드는 감사함에 대한 작은 보답은 연예인이나 TV 얘기가 아닌 더 깊은 대화라는 생각을 하기 때문이다. 물론 모인 분들의 관심사는 저마다 다를 터이기에 말을 멈추고 질문을 하거나 내가 들어야 할 때도 있겠다. 좋은 대화는 말하기와 듣기를 양극으로 하는 스펙트럼에서 편안하고 적절한 중간지대를 찾아가는 즐거운 여정이다. 차에 몸을 실으며 나는 균형점에 머물렀던가, 그들의 필요를 알아차렸는가를 물었다. 이것은 골치아픈 고민이 아니라, 더 나은 삶을 향한 자연스러운 모색이다.  

 

23:00

와우팀원의 신랑분 차를 타고 숙소에 도착한 시각은 밤 11시 정각이었다. 나는 함안군에서 속소가 있는 마산 시내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의 시간에 몹시 흡족했다. 강연보다 만족스러운 느낌이 들 정도였다. 적어도 강연 정도의 의미가 있는 시간이었다. 길지는 못했지만 어두운 차 안이었지만 나는 그간의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와우가 일년동안 공부하는 데에는 배우자의 배려와 지원 그리고 때로는 마음씀이 필요함을 모르지 않기에 고마움은 진했다. 이심전심이라는데, 나의 마음이 그 분께 잘 전달되었기를 바란다.

 

'™ My Story > 끼적끼적 일상나눔'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한 시간, 마음대로 살기  (2) 2016.04.22
그리움이 짙어지는 날  (0) 2016.04.13
아침을 깨우는 노래들  (9) 2016.03.21
밤 10시 28분이다  (2) 2016.03.20
가장 아름다운 선물  (5) 2016.03.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