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에도 삶의 의미가 없었다. 부모님의 사랑은 기억조차 희미하고, 가장 편하고 친했던 친구는 그리움이 됐다. 부모님은 내가 막 사춘기에 접어들었을 무렵 세상을 떠나셨고, 37살의 친구는 췌장암에 자신의 삶을 내어주고 말았다. 존경하던 스승은 폐암으로 예순이 되기 전의 나이에 세상을 떠나셨다. 사랑과 우정 그리고 배움이 나를 외면한 느낌이 드는 내 삶의 실존들이다. 고통은 그치지 않았다.
2.
나는 힘들고 슬펐다. 수년의 시간이 지나면서 슬픔은 희미해졌지만, 고통스러운 감정 하나가 늘 나를 따라다녔다. 사실 그것이 감정인지 논리인지조차 모르겠다. 어떠한 상태였다고 말해 두자. 그것은 공허감이다. ‘어떻게 살아야 할까’는 나의 관심이 아니었다. ‘왜 살아야 할까?’라는 질문이 나를 괴롭혔고, 시간이 지나도 떠나가지 않았다. 오히려 점점 더 또렷해졌다.
자살은 심각하기는 해도 당시의 내겐 우울한 주제는 아니었다. '왜 살아야 할까? 죽어도 되나?' 이것은 피할 수 있는 물음이 아니었다. 절박한 문제였다. 당장 일주일 동안 생업을 접어 두고 고민해야 할 만큼 중요한 사안이었다. 이처럼 중요한데도 긴급한 일에 떠밀려 ‘삶의 의미와 자살’을 더 진지하게 파고들지 못한 채로 2년을 보낸 것이 나의 치명적인 실수요, 삶의 아이러니였다.
5.
카뮈는 삶의 의미를 알지 못하는 상태를 어떻게 극복해야 하는지를 알려 주었다. 자살은 아니다. ‘안 된다’가 아니라 ‘아니다’가 중요하다. ‘안 된다’는 도덕에 묻힌 무(無사)유에서 나오는 말이다. ‘아니다’는 나의 사유가 이끌어낸 결론이다. 카뮈도 스스로 사유했다. “나는 부조리에서 세 가지 귀결을 이끌어 낸다. 그것은 바로 나의 반항, 나의 자유 그리고 나의 열정이다. 오직 의식의 활동을 통해 나는 죽음으로의 초대였던 것을 삶의 법칙으로 바꾸어 놓는다. 그래서 나는 자살을 거부한다.”
카뮈에게 자살은 비겁이었고 삶이 밝다는 긍정은 나약했다. 그는 삶의 무의미에 적극적으로 저항했다. 삶의 부조리에 ‘반항하는 인간’이 되고자 했다. 삶의 실존을 직시하면서도 긍정성을 추구했다. “우리는 시지프스가 행복했다고 상상할 수 있어야 한다.” 반항하는 인간은 자신의 지난한 운명조차 행복하게 수행한다. 오늘 굴려 올린 돌을 내일 다시 밀어 올려야 하는 굴레 속에서도 하루치 성취에 기뻐하고 즐겁게 수행하는 영혼이다. “시지프스는 자신의 운명보다 우월하다. 그는 그의 바위보다 강하다.” 카뮈를 읽으면, 시지프스와 같은 운명애를 품고 자유와 열정으로 살아할 힘을 얻는다.
카뮈가 삶의 의미까지 해결해 준 것은 아니다. 의미는 스스로 찾아야 할 문제다. 몇 달 전부터 나는 열정을 회복하고 싶었다. 내 인생의 르네상스였던 1998년~2002년, 2007~2012년을 다시 불러들여 다시 한 번 삶의 절정을 맛보고 싶었다. 갈망하기는 했지만, 방법을 몰랐다. 문득 이십 대 초반의 나를 구원했던 책들을 읽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십 수 년 전의 나를 만나 그때의 열정을 (회상의 세계에서) 목격하면 좋지 않을까? 그때 읽었던 책들 중 일부의 텍스트는 다시 나를 추동하지 않을까?
한가위 명절에 고향으로 떠나면서 책을 챙겼다. 20대 10년 동안 내게 가장 큰 영향을 준 책은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이다. 가장 먼저 챙긴 책이다. 존 맥스웰의 『생각의 법칙』은 나의 패러다임이 지혜로운지 점검할 책으로 포함됐다. 빅터 프랭클의 『의미를 향한 소리 없는 절규』는 직관이 선택한 책이다. 표지에는 “오늘날 가장 중요한 것은 삶이 무의미하다는 생각에 대응하는 것이다.” 나도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싶었다. 가볍게 읽을 책 한 권을 더했다. 스물다섯 살의 내가 밑줄을 긋고 메모하면서 읽었던 책이다.
명절에만 읽을 책이 아니었다. 명절에 조금씩 훑어보고 도움이 되는 책이라면 당분간 숙독할 책들이었다. 마지막에 얹은 책은 제외했다. 두 개의 장을 읽은 결과, 이미 익숙한 내용인데다가 나를 고무시키지도 못했다. 『7가지 습관』은 달랐다. 서너 페이지만 읽어도 동기가 부여되고, 한 개 챕터를 읽고 나니 나의 문제점들이 보이기도 했다. 너무나도 잘 이해하고 있던 문제에 걸려들기도 한다. 나는 “전혀 효과적이지 못한 채로 바쁘게만 살았다.” “침몰하는 배 위에서 갑판 의자를 정돈”했던 날들이었다.
『7가지 습관』은 빅터 프랭클의 말을 소개하기도 했다. “사람들은 자기 삶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다른 이에게 물어서는 안 된다. 이 질문을 받을 사람은 바로 자기 자신이라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우리는 자기 인생이 던지는 질문을 받는 존재다. 인생에 대해 책임을 지는 것만이 그 대답이다.” 나는 내 인생에 책임을 져야 했다. 책임을 외면한 적은 없다고 생각했지만, 심오한 질문에는 보다 능동적으로 달려들어 대답을 고심해야 함을 직감했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책임감이 큰 아이였다. 나의 강점을 더욱 발휘할 시기가 왔다.
때로는 이해가 위로를 준다. “전통의 붕괴는 실존적 공허를 설명하는 중요한 요소”다. 나의 공허감은 지금껏 써왔던 글과 수업 기록 그리고 자기경영을 위해 일상을 메모하고 읽은 책들을 정리한 데이터가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진 사건과 무관하지 않다고 막연히 느껴왔던 터라, 전통의 붕괴가 공허감과 연결된다는 말이 나를 위무했다. 친구와의 사별은 친구와 유가족에게는 청천벽력이었고, 내게도 극도의 고통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함께했던 내 개인사의 상실이기도 했다. 또한 앞으로도 이어가야 했을 가치 있는 전통(개인기록과 원고들)이 붕괴됨으로 나는 갈 길을 잃었다. 아직 해결 방법을 모르지만, 유효한 진단 하나를 얻었다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가벼워졌다.
십대 중반에 부모님을 여읜 후 나는 수년 동안 정신적 혼란을 느꼈던 것 같다. 나는 연약한 아이는 아니었던 것 같다. 내면의 혼란을 밖으로 드러내지 않는 아이였다. (드러내지 않음이야말로 연약함의 표지인지도 모르겠다.) 지혜를 찾으려고도 노력했다. 스무살 무렵, 나는 외부 활동으로는 내면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음을 깨달았다. 나의 혼란이 이기적인 행동으로 나타나지 않도록 노력하는 동시에 스스로 혼란과 방황을 해결하기 위한 노력도 감행했다. 인생의 방향성을 찾기 위해 대학을 휴학하고서 사명과 목표 찾기에 애썼던 날들이 대표적이다.
2016년 내 삶의 의미는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삶의 의미 찾기” 그 자체다. 의미가 생기니 기쁘다. 살아야 할 이유가 없어도 좋다. 내겐 오늘 하루의 의미, 이번 한 해의 의미만으로도 충분할 것 같다. 그 정도면 살아갈 노력을 기울일 이유가 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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