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y Story/아름다운 명랑인생

더 나은 하루를 위한 여행

카잔 2016. 11. 21. 17:45

여행이 끝났다. 편도 항공권을 예약하여 제주에 와서 5박 6일을 지냈다. 어떤 여행이 만족스럽지 못하면 소비된 비용보다는 지나간 시간이 더 아깝다. 세월은 다시 벌어들일 수도 없으니까. 삶이 소중하다면, 하루야말로 삶의 소중함을 실현하는 장(場)이다. 나는 더 나은 하루를 살기 위해 여행한다.

 

제주에서 꼬박 다섯 날을 보내고 나니 시간의 대차대조표를 생각하게 된다. 여행에서 얻은 의미와 배움을 헤아리며 시간을 들일 만했는지 확인하는 것이다.


비오는 날의 금능으뜸원해변

1.

가장 커다란 결실은 ‘금능으뜸원해변에서의 다짐’이다. 11월 18일, 시간은 저녁이지만 해가 저물어 캄캄한 바닷가를 걸었다. 나는 의식을 떼어내어 해변을 거니는 삼십 대 후반의 남자를 바라보았다. 남자의 내면도 들여다보았다. 그는 슬픔에 빠진 표정이었고, 자신의 감정에서 헤어 나오려는 의지도 품고 있었다. 남자는 두 곡의 노래를 부른 후 단상에 잠겼다.

 

남자의 내면에는 두 세계가 싸우고 있었다. ‘꿈과 희망’이 ‘삶의 덧없음’과 대결했다. 대결은 필요했다. 꿈과 희망은 열정을 안기고, 삶의 덧없음은 시간의 소중함을 인식하기 때문이라고, 남자는 생각했다. 그는 최근 2년 동안에는 ‘삶의 덧없음’이 승리했음을 알고 있었다. 체념한 채로 무기력하게 보냈던 시간들을 아쉬워하면서도 변화의 전기를 마련하지는 못했다.

 

남자는 밤하늘과 바다의 경계에 섰다. 바다의 끝을 알지 못했고, 하늘의 시작도 분간하기 힘들었다. 고개를 돌리니 섬(비양도)의 불빛이 보였다. 밤하늘을 날아가는 비행기의 불빛도 발견됐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구름 뒤에는 별빛이 존재한다. 그 별빛이 지금도 빛나고 있으리라고 생각하면서, 남자는 위로를 얻었다. 밤하늘에도, 구름 뒤에서도 빛나는 별빛!

 

남자는 ‘꿈과 희망’을 선택했다. 당장 할 수 있는 일들로 몇 가지 계획을 세웠다. 사고 실험도 했다. ‘죽기 전에 만나고 싶은 사람’을 생각해 본 것이다. 최소한으로 줄이니 열 명이었다. 가족이 넷이었고, 친구와 지인들이 여섯이었다. 간단한 생각인데, 남자는 삶의 초점이 맞춰지는 기분을 느꼈다. 한기가 들어 차로 돌아왔다. 한 시간 동안의 액자 여행은 그에게 평온을 안겼다.

 

2.

금능 해변에서의 단상은 여행을 하면서 ‘제주에서의 일곱 가지 결심’으로 이어졌다. 구체적인 계획은 가슴에 남겨둔 채로 목록만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나의 공간을 설렘으로 채우자(공간 정리). 2) 연말을 소중한 사람들과 보내자(보은의 삶). 3) 출간을 위한 도움을 구하자(한계 도전). 4) 제주에서 한 달을 살자(낭만적 일상). 5) 포틀랜드로 여행을 떠나자(후반전 준비). 6) 재테크를 공부하자(날개 달기). 7) 손택, 카프카, 카잔차키스, 김영하를 읽자(전문성 강화).


앤트러사이트는 커피맛도 환상이었다

 

3.

서울로 돌아가려던 토요일, 친하게 지내는 부부(인생의 선배들이다)를 만나는 바람에 이틀을 더 묵었다. 서울에서 내려온 그 분들 덕분에 혼자서는 누리지 못할 인상 깊은 시간을 보냈다. 우리는 서로를 배려했고, 여행의 순간순간을 즐겼다. 오전에는 제주대학교에서 매주 토요일마다 고전을 읽고 토론하는 대학생들의 모습을 지켜보았다. (이 날의 고전은 루소의 『사회계약론』이었다.)

 

오후에는 모병원의 원장님, 조국 교수님과 함께 담소를 나눴다. (대화에 끼어들어 나의 의견도 내어보고 싶었지만, 테이블에는 다른 인사 분들도 많이 계셔서 나는 유심히 듣는 쪽을 택했다.) 이후에 진행된 교수님 강연도 알찼고, 다시 제주대 학생들을 만나 저녁식사를 함께 했다. 조금 어색했지만, 유익하고 즐거웠다. 학생들의 고민을 듣고 건넨 나의 제안(최선의 3단계, 시간지향 스케줄링)은 나부터 적용해야겠구나, 하고 생각했다.

 

이튿날엔 두 분을 모시고 한림읍의 카페 ‘앤트러사이트’에 갔다. 놀랍도록 창의적인 카페다, 영감을 주는 곳이다 등의 칭찬을 했던 터라 내심 실망하실까 염려했는데, 두 분이 흡족해하셔서 무척 기뻤다. 우리는 애월, 한림, 한경, 대정으로 이어지는 해안도로를 달려 모슬포 항에 도착했다. 방어가 제철이라 갈치조림과 방어회를 먹었다.

 

제주공항에 모셔다 드리고 나니, 다시 혼자가 되었다. 렌트카를 몰고 공항을 빠져나오면서 생각했다. ‘혼자만의 여행과 함께하는 여행의 조화가 이뤄져 좀 더 유익한 여행이 되었구나. 주말 내내 흐린 날씨에도 여행이 빛났던 건 두 분 덕분이야. 학생들에게 건넸던 조언이 고스란히 내 삶의 해결책이기도 함을 잊지 말자.’ 이제 한 시간 후면 서울행 비행기를 탄다. 당분간은 멋진 하루들을 보낼 것 같다. 여행 덕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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