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Life is Travel/훌쩍 한국여행

공감이 깃든 친절을 만나다

카잔 2016. 11. 22. 10:32

제주 여행의 첫 목적지는 공천포 식당이었다. 그곳에서 두 명의 와우팀원을 만나 점심식사를 하기로 했다. 메뉴가 무엇인지는 모른다. 그저 반가운 마음으로 차를 몰아갔다. 공천포는 지도에서 서귀포 시 우측에 있는 남원읍에 위치한 작은 마을이다. (서귀포시청 제1청사와 남원읍내의 가운데에 위치한다.) 식당을 300~400 미터 앞둔 때였다. 경사가 완만한 내리막길을 서행하는데 물비늘로 출렁이는 바다가 나를 반겼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바다에게 인사부터 했다. "안녕! 바다야. 이번에는 자주 만나자."



공천포 식당에선 세 사람 (아이까지 하면 네 사람) 모두 모듬물회를 먹었다. 벌써 십여년 전 일이지만, 제주를 대표하는 음식 중 하나라는 '자리물회'를 먹느라 고생한 적이 있었다. 치아가 고른 편이 아니라 가시가 잇몸을 찔렀던 추억이다. 그렇다고 '물회'에 대한 편견이 생긴 건 아니라 기꺼이 주문했다. 문제는 '물회'가 아니라 '자리'였으니까. 오늘은 모듬물회다. 나는 "혹시 자리도 들어가나요?" 라고 물어보는 사람은 아니다. 주면 주는 대로 먹는 편이다. 설사 자리가 들어가더라도 십년 전과 달리 잘 씹을 수 있을 지도 모르고.


모듬물회는 소라와 전복이 들어간단다. 나는 모든 음식을 잘 먹지만 어떤 음식이라도 맵고 시고 짜면 곤란해진다. '성인 남자치고'가 아니라 왠만한 아이들보다 짜고 매운 건 제대로 먹지 못한다. 신 맛은 그나마 나은데, 레몬즙을 그대로 짜 먹는 이들을 보면 경이로울 뿐이다. 모듬물회가 시큼한 맛이었는데, 끝맛이 산뜻했다. 소라와 전복을 씹는 식감이야 별 다른 걸 느끼지 못하는 육지인이지만, 나는 모듬물회를 맛나게 먹었다. 언젠가 공천포에 오면, 한 끼는 이 모듬물회로 먹을 것 같다.



"이제 카페로 가요."

"카페는 어디야? 차 타고 가야 해?"

웃으며 대답한다. "아뇨. 요기 바로 옆이에요."

정말 공천포 식당 바로 옆이었다. 우리는 식당과 이웃한 카페 <숑>으로 갔다. 마을 주차장으로 차를 옮겨 대고 카페로 들어서니, 이미 두 사람의 주문은 끝났다. "저희는 주문했어요. 팀장님 것만 추가하시면서 계산하시면 돼요." 식사값을 그네들이 지불해서 커피는 내가 사기로 한 터였다.



<숑 Syong>은 다섯 개의 테이블이 놓은 작은 카페였다. 바다 쪽으로 통유리 창을 내어 작지만 바다를 품은 카페였다. 공천포 앞 바다가 카페의 한쪽 벽면을 차지했으니 다른 인테리어는 필요 없을 성 싶었다. 커피맛과 음악만 좋으면 금상첨화일 텐데, 음악이 무척 좋았다. 그윽하고 낭만적인 노래들이었다. 에피톤 프로젝트나 가을방학, 스웨덴세탁소, 짙은과 같은 분위기의 인디 노래들이 나왔던 것 같다. 내가 <숑>에 머문 그 시각에는 심규선의 "꽃처럼 한철만 사랑해 줄 건가요"가 어울리는 분위기였다. 나른한 오후, 따뜻한 햇살 그리고 심규선의 이 노래!



"아메리카노 한 잔 주세요." "혹시 우유 들어가는 커피도 좋아하세요?" 잘 생기고 사람 좋은 인상의 카페 주인의 목소리에 친절이 묻어 있었다. 뒤에서 거든다. "여기 라떼를 잘 해요." 아메리카노와 에스프레소를 즐겨 마시기에 잠시 머뭇거렸지만, 이내 대답했다. "네, 여기 시그니처 메뉴라면 먹어 봐야죠." 그렇게 아주 부드럽고 향이 좋은 라떼를 마셨다. 커피맛은 설명하기가 힘들다. 수년 만에 마신 라떼라 비교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어떤 라테는 우유 맛이 강해 실망스러운데, 분명 그렇지는 않았다. 



우리는 말없이 바다를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대화를 나누었고 다시 바다를 보곤 했다. 나는 음악과 바다에 취했다. 한 시간이 흘렀는지, 두 시간이 흘렀는지 모를 즈음에 카페를 나섰다. 아마도 한 시간 30분 즈음이었으리라. 카페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도록 앙증맞은 작은 걸상(이건 의자가 아니라 걸상이라 불러야 할 크기와 모양과 연배였다)이 놓여 있었다. 세 여인이 앉아 포즈를 취하고 나는 사진을 촬영했다. "팀장님도 하나 찍으세요." 나는 사양했다. "아니, 괜찮아." Y는 강권했다. "아니, 서 보세요."  Y의 배려에 나는 다른 두 여인과 함께 포즈를 취했다.



그때, 짠 하고 <숑> 사장님이 등장했다. "여자 분들만 찍으시는 줄 알고 보고만 있었는데, 남자 분도 찍으시니까 제가 모두 한 번 찍어드릴게요." 나는 이 말에 깊이 감동했다. "우유 들어가는 커피도 좋아하세요?"에서 느낀 모호함이 정체를 드러내는 순간이었다. 이 말과 "저희 카페는 라떼가 맛있어요."는 같은 말이지만 다른 표현이다. 숑 사장님은 공감 깊은 친절을 베풀 줄 아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사실 카메라를 찍는 이들 중 피사체가 되는 걸 싫어하거나 귀찮아하는 이들도 많다. 사장님의 등장은 이러한 사정까지 고려한 타이밍이라는 생각이 나만의 공상인지 궁금해진다.



사장님이 찍어준 사진을 그날 밤에야 확인했는데, 내가 나중에 찍은 사진과 구도가 똑같았다. 왠지 기분이 좋았다. 어렸을 적, 내가 좋아하는 아이가 나와 똑같은 학용품을 들고 다니는 걸 목격했을 때의 느낌이었다. 사실 누가 찍어도 비슷한 구도가 나올 수밖에 없을 텐데, 라고 생각하면서 혼자서 기분 좋게 웃었다. 어쨌든 공천포 앞바다를 면한 공천포 식당과 카페 숑은 제주 남쪽을 여행할 때면 다시 들르고 싶은 곳이 됐다. 시간이 없어 둘 중 하나에만 들른다면, 카페 <숑>이다.


실제로 다시 간다면, 그 날은 아마도 사장님의 친절과 낭만적 음악에 취하고 싶은 날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