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Life is Travel/훌쩍 한국여행

나는 왜 호텔에서 잘까

카잔 2016. 11. 23. 09:59


여행 첫날, 와우들과 헤어진 후, 숙소부터 잡아야 했다. '게스트하우스에서 자 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게스트하우스에서 묵으면 다른 여행자들과 잠시 어울릴 가능성이 있잖아.' 머릿속에는 얼마전 제주를 다녀온 지인의 스토리가 떠올랐다. 그녀는 게스트하우스에 묵는 사람들과 어울려 밥을 먹고 술을 마셨다. 이튿날에는 차를 얻어 타고 한라산에 갔다. 나는 바로 그 이유, 다시 말해 사람들과 엮일(^^) 수도 있다는 작은 가능성 때문에 '게스트하우스'라는 옵션을 지웠다. 이번 제주 여행도 날마다 호텔에서 잤다.


깔끔하고 조용해서 마음에 들었던 비스타케이 호텔 로비(첫째날)


나는 사람들과의 만남을 귀찮게 여기는 폐쇄족일까? 아니다. 귀찮게 느끼는 쪽은 전혀 아니라고 생각한다. 여행 중에는 혼자만의 시간만을 고집하는 고독파도 아니다. 좋은 사람들과 나누는 대화를 삶의 행복이요, 축복이라고 여긴다. 이번 제주 여행에서도 토, 일 주말을 두 분과 함께 다녔기에 더욱 즐거웠다. 하지면 여기에서, '모든' 사람들이 아니라 '좋은' 사람들이라고 한정하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한다. '좋은' 이라는 말이 모호하다. 누가 좋은 사람이란 말인가? 하하하. 웃긴 표현이다.


다분히 자의적으로 이 '좋은' 이란 말을 풀이하자면, 낯선 사람들이 제외된다. 내 안에는 새로운 사람과의 만남을 저어하는 마음이 있다. 주말을 함께 보냈던 분들도 친한 분들이다. 이 분들과 보낸 시간은 편안하고 행복했다. 반면 이 분들을 통해 새롭게 만난 분들과의 만남은 살짝 불편했다. 내가 새로운 만남을 피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에 불편함을 넘어서려고 노력했다. 한 분이 나를 강하게 끌어들이지 않았더라면("제주대로 와라. 소개시켜 주고 싶은 분이 계셔서 그래"), 나는 두 분의 일정이 모두 끝난 다음에 두 분만 만났을 것이다.


나는 사교성이 없는 사람인가? 이 질문에는 쉽게 답변하기가 힘들다. 나를 잘 아는 사람들도 둘로 나뉘지 않을까 생각한다. 낯가림을 하는 편은 아니다. 남들 앞에 서는 일이 두렵지도 않다. 상대를 배려할 줄도 아는 편이다. 어쩌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면 대화도 곧잘 나눈다. 이런 모습을 본 이들은 "네가 무슨 사교성이 없어?" 라고 말한다. 나의 일상을 좀 더 들여다보면, 혼자 보내는 시간이 압도적으로 많다. 새로운 만남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좀처럼 새로운 모임에 참여하진 않는다. 인연을 이어가기 위해 별다른 노력도 하지 않는다.


게스트하우스는 사람들과 오가면서 얼굴을 마주할 경우가 호텔보다는 잦다. 비성수기에 제주의 호텔에서 5일을 묵었지만 다른 숙박객과 만난 적은 한 번도 없다. 복도에서조차 만나지 않았다. 내가 밀월여행을 떠났거나, 대중에 노출되면 안 되는 인사도 아닌데, 게다가 결국 이런 글을 쓸 텐데, 도대체 왜 그럴까? 몹시 궁금하지만, 자기이해에 함몰되어 있다가는 일상이 멈춰버리기에 일단은 덮어둔다. 밖으로 던져 버린다는 말이 아니다. 인생이 차차 알려 주리라 믿으며, 건강한 의문을 품은 채로, 오늘 하루를 살아간다는 의미다. 


저렴하고 객실이 깨끗해서 마음에 들었던 스카이리조트(둘째, 셋째날)


게스트하우스보다는 호텔 쪽 숙박비가 비싸지만, 호텔 앱을 잘 활용하면 생각보다는 저렴하다. 55,000 - 42,000(앱 4천원 할인) - 45,000(현금 결재 1천원 할인) - 50,000(조식 포함) - 49,000으로 5박을 묵었다. 마지막 날에 묵었던 숙소를 제외하면 깔끔하고 조용해서 마음에 들었다. 두 군데는 다시 묵어도 좋다고 생각하는 숙소였다. (마지막날 숙소는 이불이 하얀색이 아니었다. 이건 청결함에서 치명타다.) 가장 마음에 들었던 숙소는 애월읍에 있는 '스카이리조트'였다. 아담한 두 동 건물은 3층짜리 신축 빌라에 입주한 느낌을 주었다.


호텔이 보여줄 수 있는 최악의 행태(마지막날)


밤마다 혼자 시간을 보냈다. 숙박 비용을 조금 더 치르고 얻으려는 건 결국 '혼자만의 시간'인 셈이다. 여행지에서 낯선 사람을 만나 저녁 식사를 즐기거나 술잔을 기울이는 순간을 바라기도 하나, 국내 여행을 하면서 단 한 번도 낯선 사람과 시간을 보낸 적이 없다. 술잔은 커녕 커피 한 잔도 없다. 기억으로는 5분 이상 대화를 나눈 적도 없는 것 같다. 수십 번의 여행을 다녔으면서도 그런 적이 없다는 사실을 지금 인식하면서, 스스로도 놀라고 있다. (다행하게도(?) 해외 여행을 하면서는 대화를 나눈 경험이 더러 있다.)


특급 호텔에 묵는다면 공간이 주는 힘에 이끌려 호텔에 들어가는 순간 나는 우아한 여행자가 된다. 객실의 편의성(이를 테면 작업하기 쾌적한 테이블)을 향유하고, 수영을 즐기며 신분이 상승되는 느낌마저 든다. 그래서 긴 해외여행을 할 때면 하루이틀을 특급 호텔에 투자하곤 한다. 유익이 크지만, 혼자 여행하면서 특급 호텔에서 묵기는 쉽지 않다. 결국 깨끗한 3성급 호텔을 찾게 된다. 이렇게라도 호텔에서 묵으려는 이유는 하루 일정을 마치고 호텔로 돌아가는 느낌 때문이다.


로비가 크고 우아하면 좋지만, 개의치 않는다. 깔끔하면 그만이다. (지역 특산품을 아무렇게나 전시했거나 짐들이 한쪽에 적재되어 있으면 김이 샌다는 말이다.) 건물이나 엘리베이터 등 시설이 낡아도 괜찮다. 관리와 청소에 신경쓰고 있으면 된다. 가장 중요한 공간은 객실이다. 객실 문을 열고 들어서는 기분을 좋아한다. 나만의 요새로 들어가는 그 기분을 말이다. 침구류가 깨끗하고, 인테리어가 살아있고, 어메니티에 신경을 썼다면 객실의 크기는 상관없다. 아무리 작아도 혼자 하룻밤 지내기에 좁은 객실은 없었다. 결국 나에게 호텔 숙박비는 '하루짜리 나의 요새'에 대한 렌트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