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Life is Travel/훌쩍 한국여행

사진으로 보는 제주여행(1)

카잔 2016. 11. 23. 13:38


제주 바다의 따뜻한 첫 인상이다. 공천포 앞바다가 나를 반겼는데, 깊은 인상으로 남았다. 얼마 전 이런 얘길 들었다. "사람이 죽으면 먼저 가 있던 반려동물이 마중 나온다." 진실 여부야 알 수가 없지만, 우리 가족도 반려견을 키운 적이 있기에 정말 그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을 정도로 가슴이 먹먹했던 말이다. 이번 제주 여행에서 공천포 앞바다는 3년 전 세상을 떠난, 우리 집에서 16년을 살았던 푸들이 꼬리를 흔들며 나를 반기듯이 햇빛을 머금고 나를 안아 주었다.



남원큰엉해안경승지는 황홀한 해안산책로다. 신영영화박물관과 금호리조트 뒷쪽 산책로가 특히 아름답다. 절벽을 따라 걷다보면 절경에 감탄하고 마음까지 후련해진다. 한반도 모양을 빚어내는 산책로도 유명하다. 이번에는 혼자 해가 질 무렵에 들렀다. 카페에서 나만의 시간을 가진 후였더라면 한 두 시간 산책을 했을 텐데, 와우들이랑 시간을 보내고 카페를 향하는 길이라 마음의 여유도 정신적 에너지도 없었다. 충전을 해야 했다. 나는 얼른 카페로 가서 책을 읽고 무언가를 끼적이고 싶었다. 15분~20분 만에 산책을 마치고 카페 <와랑와랑>으로 향했다.



<와랑와랑>은 작은 카페다. 아담하지만 고유의 분위기를 빚어낸다. 아기자기한 소품들이 앙증맞고, '당근 한 컵' '찰떡구이' 등 차별화된 메뉴를 선보인다. 유기농영귤차 300g 등 건강차도 팔았다. 한쪽 벽면에는 혼자 방문한 이들을 위한 테이블이 놓였다. 카페는 네이게이션 없이는 찾기 힘든 위치다. 해안도로에서 골목길을 따라 차를 몰아가야 했다. 감귤 과수원이 카페 주변을 둘러싸고 있었다. 나만의 아지트를 찾아가는 기분이 들었다. 비수기여서인지, 문 닫을 시각이 다가와서인지 좌석의 1/3이 남았는데, 여름 철에는 많이들 찾을 것 같다. 이곳에서 나는 비전에 관한 글을 한 편 썼다. 해질녘 6시가 클로징 타임이라 5시 50분에 아쉬움을 안고 일어섰다.



새별오름을 오르는 길에 찍은 사진이다. 억새와 한라산을 담고 싶었다. (오른쪽 동그랗게 부풀어오른 구릉이 한라산이다.) 해발 519m의 새별오름을 오르는 데에는 20분이면 족하다. 억새 구경, 들판 구경을 하면서 느긋하게 오르고 내리는 1시간 짜리 산책 코스로 추천할 만하다. 주차장에서 오른쪽으로 오르길 권하고 싶다. 오를 때에 조금 가파르긴 하나, 천천히 오른다면 숨이 조금 찬 정도에 불과하다. (안전상으로도 가파른 길은 내려오기보다는 오르는 쪽이 낫다.) 구름이 하늘을 떠다녔고, 바람이 억새를 애무하는 날이었다. 와우들을 따라 간 곳인데, 예상보다 훨씬 흡족한 오름이었다.



둘째날 애월의 해안에서 만난 낙조다. 구름이 석양의 운치를 더하는 하늘이다. 나는 일몰을 좋아한다. 옛 연인이 생각났다. "오빤 왜 일몰을 좋아해요?" "떠오르는 태양이 주는 희망과 활력을 싫어하는 건 아니지만, 일몰이 주는 그윽함이 더 좋아. 언젠가 인생의 황혼을 맞게 될 텐데, 그때 저 석양처럼 아름답기를 바라는 소망을 갖게 되어서 좋기도 해. 하늘이 온통 사랑빛으로 물들면, 이제 낭만의 시간이 시작된다는 느낌도 들고."



협제해수욕장에 위치한 레스토랑 <에너벨 리>에서 전복 오므라이스를 먹었다. 1만 5천원이라는 부담스러운 가격이지만, 식사 시간 대에 혼자라는 점을 감안해서 주문한 메뉴다. 다른 메뉴(해물찌개)도 1만 2천원이긴 했다. 순전히 '애너벨 리'라는 이름 탓에 들어간 식당이었다. 문학도나 문학 청년이라면 끌렸을 법한 '애너벨 리'! 에드거 앨런 포(1808~1849)의 마지막 시로 알려진 '에너벨 리'는 사랑의 상실을 노래한 시로 아내의 죽음을 애도한다. 포의 아내는 젊은 나이에 병을 얻어 5년 간 투병 생활을 하다가 사망한다.


극도의 슬픔에 빠진 포의 건강과 삶은 피폐해졌고, 2년 후 아내를 뒤따르고 만다. 포의 나이 마흔이었다. 실연의 아픔 류의 생각을 하면서 밥을 먹은 건 아니다. 실연의 기분을 느낄 분위기가 따로 있진 않겠지만, 그럴 법한 인테리어는 아니었다. 낭만적인 이름과는 달리 식당 실내는 어수선했다. 중년의 도민들이 시끌벅적하게 술을 마셨고, 식당 곳곳에 상자와 포대가 쌓여 있었다. 맞은 테이블에 앉아 나와 같은 메뉴를 먹던 20대 아가씨는 음식을 남긴 채로 자리를 떴다. 나는 꿋꿋히 그릇을 비웠다. 실제로는 언제 읽게 될지 모르겠지만, '아...! 오에 겐자부로의 소설을 읽고 싶다'고 생각하면서.



협제해수욕장의 밤은 고요했다. 해안을 내려다볼 수 있는 전망 좋은 카페에도 손님이 거의 없었다. 카페에서 커피 한 잔을 마시고 싶었지만 비수기의 밤 영업이 언제 끝날지 몰라 바닷가로 나갔다. 두어 가족과 커플이 떠나자 나 홀로 남았다. 바다 건너 비양도의 불빛이 보였다. 사진은 협제해수욕장 해안도로를 따라 줄지어 선 가게와 주택들이다. 조금 쌀쌀하기도 했고, 약간 쓸쓸하기도 해서 15분 즈음 있다가 차로 돌아갔다. 별 다른 감흥 없이, 아무 생각도 없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