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예술 영화 한 편을 소개합니다. 대중영화와는 다르니, 다르게 접근해야 합니다. 어떻게 다르게 감상해야 하나, 저도 고민 중입니다. 2) 물과 기름은 섞이지 못하는 법이죠. 마법을 부린다면 또 모르겠지만! 깊은 외로움과 희망도 잘 섞이지 않을 겁니다. 평범한 의식과 사유로는 말이죠. 지혜와 예술은 그 일을 해냅니다. 예술과 지혜가 삶의 마법인 셈입니다. 3) 9월말에 개봉한 영화라, 전국에서 세 극장(부산, 광주, 서울)에서만 상영 중입니다. 


1.

인생 영화를 보았다. <태풍이 지나가고>가 ‘올해의 영화’라면 <다가오는 것들>은 ‘인생 영화’가 될 것 같다. 잔잔한데, 강력하다. 괴로운데, 희망적이다. 분명히 잃었는데, 새로운 걸 발견한다. 영화가 보여주는 결론적 사건은 없는데, 이 영화를 본 것이 하나의 사건이었다. 엔딩 크레딧은 올라가는데, 눈물이 흘러 내렸다.

  

2.

‘모든 것’을 상실한 사람은 없다. 그것은 죽음이니까! 살아 있다면 ‘많은 것’을 상실했을 뿐이다. 영화는 ‘모든 것’을 상실했다는 느끼는 이들의 절망과 좌절을 위무한다. ‘모든 것’이 아니라 ‘많은 것’을 잃었을 뿐이라는 말은 진실임에도 불구하고 지혜롭게 전달되지 못하는 바람에 상대에게 상처가 되기도 한다. 영화에 서투른 충고는 없다. 부드럽고 아름답고 따뜻하게 삶의 진실을 건네는 영화다. 

 

3.

그리고 ‘남은 것’들을 보여준다. 그것은 가족, 자유, 희망이다. 전혀 시시하지 않은 것들인데도 슬픔과 분노에 휩싸여 있노라면 눈에 보이지 않는 가치들이다. 영화는 괜찮은 위로의 차원을 넘어선다. 부드러운 치유의 영역까지 나아간다. 고통은 삶의 일부다. 고통을 당하는 우리에겐 위로를 얻을 안식처가 필요하다. “고통의 상처에서 얻은 지혜만이 진정한 안식처”다. <다가오는 것들>은 그 안식처로 안내한다. 깨달음과 지혜가 곧 안식처다.


4.

베스트 장면은 수없이 많다. 나탈리(이자벨 위페르)가 자동차 조수석에 앉아 자신의 상실과 새롭게 얻은 것에 대해 제자에게 말하는 장면("딸은 독립했고, 남편과 엄마도 떠났지"로 시작되는 말), 가족과 함께 일상을 보내는 마지막 장면은 압권이었다. 관계의 상실을 태연하게 받아들이려는 그녀였지만, 이제 곧 헤어지게 될 남편의 별장에서 흥분하는 장면도 인상 깊다. 카메라를 어깨에 메고 뒤를 따라 뛰면서 찍은 것처럼 보이는 이 장면은 분노가 맺힌 그녀의 걸음을 효과적으로 보여주었다. 흔들리는 화면, 고뇌하는 나탈리!


5.

상실이라는 사건과 그로 인한 외로움이 스토리를 이끌어가는데도, 영화는 희망적이다. 이것이야말로 <다가오는 것들>이 이뤄낸 미학적 아름다움이다. "나 힘들어!"와 "내일을 희망해"라는 양극의 감정이 부딪칠 때 빚어지는 긴장감이 영화를 떠받든다. 이쪽으로 치우치면 신파가 되고, 저쪽으로 치우치면 순진해진다. 시계추처럼 오가면서 균형이 흐트러지지 않을 때에 아름다운 미학이 된다. <다가오는 것들>이 그렇다.


6.

영화는 다소 지적이다. 여주인공이 철학 선생이기에 그렇다. 첫 장면에서 가족은 샤토브리앙의 묘를 찾아가지만, 그에 대한 설명은 없다. 상황마다 레비나스, 아도르노, 쇼펜하우어, 루소가 등장한다. 학교 장면에서는 알랭의 <행복론> 읽기가 과제로 주어진다. 그녀의 외로움을 극한으로 몰고 가는 제자 역시 철학책을 써낸 인물로 지적 논쟁을 즐긴다. 개인적으로는 가슴에 남는 지적인 열망(말초적인 호기심과는 다른)이 남기는 영화였다.


7.

(나탈리가 엄마에게 받아 키우게 된) 고양이의 이름이 ‘판도라’다. 그리스 신화에 따르면, 희망은 판도라의 상자에 들어 있다. 불의로 인해 판도라의 상자가 열려 온갖 고통이 쏟아져 나왔지만, 희망만은 간직한 '판도라'의 상자! 영화의 내용과 절묘하게 어우러지는 이름이다. 영화 제목은 ‘다가오는 것들(Things to come)’이다. 영화 내용으로 제목을 짓자면 ‘떠나버린 것들’이어야 하지만, 영화는 상실을 치유하면서 시선을 돌린다. '다가오는 것들'에게로! (아, 이토록 아름다운 희망이라니!) - 연지원


Posted by 보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