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y Story/끼적끼적 일상나눔

창원, 길들여짐 & 구원의 책

카잔 2016. 12. 11. 10:40

1.

10분 넘게 택시를 잡지 못해, 아슬아슬하게 열차에 올라탔다. 창원행 새벽 기차다. 졸린 눈, 어두운 창밖. <그리스인 조르바> 26장을 몇 장 읽다가 잠들었다. 꿈을 꾸었다. 잠들기 전에 읽었던 "우리의 이별은 칼로 벤 듯이 깨끗했다"는 말이 나를 흔들어 깨웠다. 객실을 나와 출입문 앞에 서서 창밖을 바라보았다. 눈 앞의 모든 것이 빠르게 스쳐갔다. 우리네 인생처럼! 시선을 먼 산 쪽으로 던졌더니 풍광이 서서히 지나간다. 하루하루의 시간 같다! 어제 오늘의 하루는 눈으로 그려볼 수 있지만, 지나간 10년의 세월은 몇 조각의 흔적처럼 느껴진다. 삶의 의미는 어디에 있을가? 나는 어디로 가는 걸까? "의미를 모를 땐 하얀 태양 바라 봐."(이상은, 삶은 여행) 마산역에 도착했더니, 아침 햇살이 나를 반겼다.  



2.

열차 안에서는 한가로웠다. 그 여유가 좋았다. '거기'에서의 여유를, 내가 머무는 '여기'로 데려올 순 없을까. 무엇이 다를까. 인터넷 연결 여부, 창밖으로 스쳐가는 풍광, 흔들림과 덜커덩거림, 거주자와 여행자가 지니고 있는 마음의 차이?


3.

3시간이라는 이동 시간에 읽거나 쓰고 싶었지만, 졸음이 쏟아졌다. 어젯밤에 일찍 잠들었지만 새벽 4시라는 기상 시각은 만만찮았다. 그렇다고 해서 "사람은 6시까지는 자야 한다"라는 말로 결론 지어서는 안 된다. 기상 시각이야 길들여지기 나름임을, 먼 나라 여행에서 시차에 적응해가는 몸을 볼 때마다 생각한다. 누구나 새벽 4시 기상에 자신을 맞출 수 있다. 9시나 10시에 자면 되니까. 그저 절실하지 않거나, 단호하지 않을 뿐.


4.

이 책은 당신을 구원할 것이다. <그리스인 조르바> 원고 제목이다(아직은 가제다). 매혹적인 글귀로 유혹하고픈 마음도 담았지만, 선동의 마음 없이도 나는 저리 말할 수 있다. 위대한 두 영혼(화자와 조르바)이 만나 예술, 지혜, 감동, 혼란, 성장을 안기는 환상적인 책이니까. 그저께 지인과 얘기를 나누다가 "저를 알고 싶어요. 그래서 공부하려고요"라는 말을 들었다. 그는 나에게서도 배움을 구했다. "책 한 권 깊이 읽어볼래요?" 라고 했더니 반색했다. 어떤 책을 염두에 둔 말은 아니었는데, <그리스인 조르바>여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이 책이 제격일 것 같다.


5.

어젯밤엔 일찍 자야 했고, 일찍 일어나야 했다. 택시를 잡느라 새벽 공기를 마셔야 했다. 창원행이 싫지 않았지만, 여러 가지를 신경쓰기는 해야 한다. 이런저런 수고로움이 마산역 에스컬레이터를 올라가면서 잊혀졌다. 청랭한 공기가 상쾌했다. 아침 8시인데, 서울에서 멀리 떨어진 마산까지 왔다는 사실이 역동적인 기분을 안겼다. 세상에는 새벽을 깨워가며 일하는 사람들도 무지 많겠지, 하는 생각이 스쳐갔다. 역동적인 에너지, 펄떡이는 숨소리, 새벽 공기를 내 일상에도 채워 넣고 싶다고 생각했다. 일주일에 한 번 만이라도! 창원역을 빠져나와 활기차게 걸었다. 이른 아침에 오픈한 스타벅스에게 고마움을 느끼며, 따뜻한 아메리카노와 베이글을 먹었다. 오랜만에 잠시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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