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y Story/끼적끼적 일상나눔

안주하면 나아갈 수 없다

카잔 2016. 12. 18. 23:07


1.

<라운드 리딩>이라는 독서 모임의 2주년 파티에서 『그리스인 조르바』를 주제로 특강을 진행했다. 가장 열심히 읽은 소설이고 이 책에 대해 쓴 글이 많은데도, 자평하자면 흡족하지 못한 강의였다. 무엇보다 시간을 초과했고 청중에게 어울리지 않은 방식의 진행이었다. 좀 더 청중들의 관점과 성향을 헤아렸어야 했다. 심해로 나아가는 잠수함처럼 한 주제를 깊이 파고들어가기보다는 시냇물을 건너듯이 여러 주제를 경쾌하게 다루어야 했다.

다른 책이 아니라 『그리스인 조르바』였기에 감동의 시간으로 만들고 싶었지만, 평범한 강연에 머물렀다. '정상'을 꿈꾸는 이가 '8할 높이의 산등성이'에서 안주할 순 없다. 또한 함께 등정한 이들과의 인연도 놓치고 싶지 않다. 몇몇 분들의 반짝이는 눈빛을 기억한다. 그분들 덕분에 즐겁게 진행했다. 아쉬움은 내 몫이다. 같은 실수를 반복하며 사는 게 범인의 인생이지만, 너무 자주 불만족에 이르지는 말아야지!



2.

대학로 아르코 미술관의 실내 천장 모습이다. "건물은 한국의 대표적 건축가 김수근이 설계하였고, 붉은 벽돌 건물은 대학로의 대표적 상징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홈페이지의 설명이다. 타임(Time)지가 '서울의 로렌초'(1977년 5월)라 칭했던 건축가 김수근(1931~1986) 선생은 건축과 예술계의 거장이다. 극찬을 받는 이의 작품이라고 해서 모든 이가 감동하지는 못하리라. 나 또한 수없이 아르코 미술관을 지나쳤지만, 그 건물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거나 감탄한 적이 없었다. 이유는 간단하다. 무관심했고, 제대로 들여다본 적도 없었다.

오늘은 달랐다. 외장재와 같은 내장재를 사용함으로 빚어지는 분위기, 벽돌의 들고남으로 표현한 건축 미학, 독특한 높이감의 창이 주는 느낌 등을 음미할 수 있었다. 혼자 왔더라면 지나쳤을 텐데, 건축가 한 분과 동행한 덕분이다. 그가 건물 곳곳을 바라볼 때마다 감탄이나 설명이 흘러나왔다. 아무런 감흥이 없는 구석도 그의 설명을 듣고 나면 흥미롭게 보였다. 찰나의 방문이었지만, 인상 깊은 시간이었다. '내가 강독회를 진행할 때에도 청중들은 이런 느낌이려나.' 아르코 미술관을 다시 찾고 싶어졌다.


진솔한 대화를 나눴던 갤러리카페모차르트


3.

사진은 대학로에 위치한 갤러리카페모차르트 실내 모습이다. 나는 클래식과 친밀한 편이 아니고(재즈를 많이 듣는다), 선호하는 인테리어도 아니었다(모던한 스타일을 좋아한다). 선호하는 것들이 있지만, 취향이 강하지는 않다. 물건이든 공간이든 고유함을 지녔다면, 나름의 가치와 분위기를 음미하는 것도 행복하기 때문이다. "와! 좋다." 좋아하는 재즈를 만날 때의 반응이다. "와! 좋네." 클래식 명연을 들을 때의 반응이다. 클래식 때의 반응은 때론 "음, 좋네"로 바뀌기도 하나, 모두 긍정의 반응들이다. 내 취향이 아니라고 해서 무관심해지지 않는다는 말이다.

오늘만큼은 카페의 실내 분위기나 음악에 무관심할 수밖에 없었다. 귓가에 울리는 음악이 있었을 텐데, 카페에 음악이 흐르고 있었나 의문이 들 정도다. 기억나는 인테리어도 없다. 함께했던 분들과의 대화가 우리의 시공간을 점령했기 때문이다. 같은 회사, 같은 팀에 소속된 두 분과 함께 HR 전반에 대해, 내년도 사내 교육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편안하고 정겹고 진솔하고 심오한 대화였다. 서너 시간이 흐르고 나니 신뢰와 친밀함이 우리를 감싼다는 느낌이 들었다. 주말 일정이 빠듯했는데, 심지어 전날의 숙취도 남았었는데, 귀갓길이 피곤하지 않았다. 정신적인 교감 덕분이리라. 아, 이런 대화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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