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y Story/자유로운 단상노트

3개월 후 누굴 찍어야 하나

카잔 2017. 2. 2. 10:06


반기문 대권주자가 대선 불출마(기사 클릭)를 선언했다. 결정이야 번복할 수 있다. 어떤 포기는 위대한 용기이거나 놀라운 지혜이기도 하니까. 반기문 님의 경우는 그 어느 쪽도 아니다. 결정 자체가 아니라, 포기의 이유가 실망스럽다. 블로그에 정치 이야기는 쓰지 않는 게 나름의 운영 원칙인데, 일년에 한 두 번은 예외로 두자고 생각하면서 글을 시작한다.


반을 향한 비호감의 시선들


귀국 후 연일 이슈를 낳았다. 안타깝게도 부정적인 시선 일색이었다. 그 대열에 참여하지 않았다. 반기문을 지지해서가 아니다. 정치적 리더십의 본질과 거리가 먼 비난이 대다수였고, 반기문을 비하하는 뉴스가 전파되는 방식이 선동적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누군가가 정치적 리더십을 갖추었다면, 퇴주잔을 마시든 버리든 주머니에 넣든 그를 지지할 것이다. 턱받이를 모자로 삼더라도 웃을 지언정 그것만으로 비난하지는 않을 것이다.


[생각하나] 아름다운 전통과 예절은 존중하고 지켜야 한다. 나라마다 전통이 다르고, 집안마다 예절이 다르다. 그러니 전통과 예절은 절대 기준이 될 수 없고, 오히려 상호를 이해하는 도구와 전파해야 하는 대상으로 다뤄져야 한다. 달리 말하면, 잘 지키는 자를 칭찬하고 추앙할 일이지, 전통과 예절을 지키지 못하는 것을 두고 예절과 전통을 모르는 사람 그 이상이나 그 이하로 평가해서는 안 된다.


팩트조차 무시된 슬픈 날들


반기문이 할머니 턱에 받쳐야 할 턱받이를 본인 목에다 걸었다는 턱받이 코스프레 사건은 팩트가 아니었다. JTBC 뉴스룸 <비하인드 뉴스> 보도(클릭)에 따르면, 반 전 총장 목에 걸린 것은 턱받이가 아니라 앞치마였다. 사진이 교묘한데, 동영상을 보면 완벽한 앞치마다. 턱받이 코스프레는 인터넷 상에서 엄청난 속도와 양으로 확대 재생산되었다. 퇴주잔 논란 역시 팩트가 아닌 거짓 기사(클릭)였다. 이번 반 총장과 관련된 뉴스가 유통되는 모습은 분명 생각해 볼 일이다.



대중이야 생업에 바쁘니 착각할 수 있다고 치자. 나는 슬펐다. 의식 있다는 분들도 팩트 체크 없이 비난 대열에 동참했다는 사실에 정말 마음이 아팠다. 경향신문의 네컷 만화 '장도리'를 쓰는 박순찬 씨의 그림(클릭)은 실망스럽고(꽃동네 영상을 보면, 그 누구도 "턱받이 착용하시라"고 말하지 않았다),  조국 교수님이 트위터로 팩트 아닌 내용들이 실린 '반기문 노답 시리즈 10선'(클릭)를 확산시킨 것도 아쉽다. (평소 좋아하는 분들인데, 옥 같은 분들의 티를 언급하는 것 같아 죄송스럽다.)


[생각두울] 해석은 어디에나 있다. 누구나 관점을 가졌기 때문이다. 어느 해석이 옳은가는 가늠하기가 어렵다. 해석만으로는 분열이 조장되기 십상이다. 이때 일차적으로 필요한 것이 팩트다. 어느 해석이 팩트에 기반하는가를 따져야 한다. 팩트로 무장한 글쓰기만으로도 일가를 이룰 수 있음을 리영희 선생이 증명해 주었다. (팩트에 예술을 덧입히면 얼마나 아름다울 수 있는가는 조지 오웰이 산문과 소설로 보여주었고.) 팩트가 전부라는 말은 아니다. 같은 팩트로도 해석에 따라 탁월한 통찰이 되느냐 마느냐에 갈리니까. 팩트와 의견의 구분이 의사소통을 돕는다.


반기문을 향한 아쉬운 마음들


반기문 대통령이 한국으로 돌아와 선택한 첫 선택은 '보여주기'였다. 이것은 새롭지는 못해도 (많은 정치인들이 걸어온 길이라는 점에서) 안정적이긴 했다. 다만 오랜 해외 생활로 민생과 민심을 읽지 못해 아기걸음처럼 어색했고 실수를 연발했다. 팩트를 구분하지 못하고, 가짜 뉴스가 남발된 점은 일부 국민들의 불찰이지만 '보여주기'를 '연속'으로 보여줌으로 비난의 목소리를 높인 것도 사실이리라. 반 전 총장의 정치적 판단 착오라고 생각한다. 이것은 아쉬움이 아니다. 정치 전략을 새로 짜서 나아가면 되니까. 어차피 대선 레이스는 풍파가 존재하기 마련이니까.


참으로 안타깝고 실망스러운 점은 불출마 선언의 내용이다. 일부 사람들은 반 전 총장이 남탓을 했다는데, 이것은 일부만 사실일 것이다. 사안이 그렇게 간단하지 않기 때문이다. 남탓을 한 부분이 있지만, 남탓을 할 만하다는 게 나의 생각이다. 만약 내가 대선주자가 되어 반 전 총장처럼 가짜 뉴스의 폭격을 받는다면 어떨까? 엄청나게 괴로울 것이라고 판단했다. 우리는 반 전 총장의 괴로움과 옹졸함을 동시에 사유할 수 있어야 한다.


반 전 총장의 옹졸함은 크게 두 가지다. 현실 인식의 빈약함과 정치적 기개의 결여. 우리에게는 원대한 의식을 소유한 리더가 필요하다. 정치판이 비루하기 때문이다. 겨울에 해수욕장을 찾아온 관광객이 "왜 이렇게 물이 차냐?"고 물러난 모양새다. 당연함에 대해 놀라는 그의 현실인식이 아쉽다. 누구나 이상을 품을 수는 있다. 하지만 현실의 어려움에 직면했을 때에야 사람이 구분된다. 어려움을 뚫고 나갈 기개가 있느냐에 따라.


현실 인식의 빈약함도 여러 종류가 있는데, 반 전 총장의 경우는 '오해에 대한 오해'도 한몫 거들었다. 괴테는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에서 이렇게 썼다. "오해를 받는다는 것은 인간의 운명이 아닌가." 의식 있는 사람들은 이를 안다. 지성인이든 예술가든 마찬가지다. 신중현은 2008년 자신의 음악을 결산한 앨범 <앤솔로지>를 발표하고서 가진 한 인터뷰에서, "이게 흔히 말해서 영화에서 '감독판 버전'인 셈인가?"라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신중현 : "그렇다. 내가 맨 처음에 의도했던 것이 결국 나올 때 보면 다르게 나오고. 그런 현상이 우리가 사는 세계 같다. 항상 부딪히고."


(못 보신 분들을 위해 아래에 반 전 총장의 불출마 선언 일부를 옮긴다. "저의 순수한 애국심은 인격살해에 가까운 음해, 각종 가짜 뉴스로 인해 정치 교체 명분은 실종되면서 오히려 제 개인과 가족, 그리고 제가 10년을 봉직했던 유엔의 명예에 큰 상처를 남김으로써 결국 국민들에게 큰 누를 끼쳤다. 일부 정치인들의 구태의연한 이기주의적 태도에 실망했고 이들과 함께 길을 가는 것은 무의미하다는 판단을 했다.")


[생각셋] 어디 정치판만 비루하던가. 우리네 사는 세상이 그렇다. 어떤 직업이라도 공공의 장으로 끄집어내면 정치판과 크게 다르지 않다. 명예와 권력을 추구하는 이들이 좀 더 몰리는 직업이 좀 더 비루할 수 있을 뿐. 얌전하게 보이는 교사들의 세계를 보라. 그곳에도 권력 다툼, 서열 논쟁, 성폭력, 교권 침해, 재정 비리 등이 난무하다. 이상(아름다움)과 현실(추함) 사이에서 우리가 어디에 가 있느냐가 관건이지, 이상과 현실은 모두 우리의 실존이다. 어떤 직업이든 그 직업을 비루하게 만드는 다수와 그 직업을 빛내는 소수가 존재한다.


3개월 후, 누구를 찍어야 하는가


나는 반 전 총장을 적극적으로 비난하지 않았다. 비난의 목소리가 잠잠해지고 이성적으로 판단할 자료들이 등장하기 시작하면 하나 둘 따져볼 생각이었는데, 돌연 불출마를 선언했다. 20여일 간의 '정치적 사건' 치고는 생각할 거리들은 많은 편이다. 대중과 언론의 불찰은 무엇이고, 반 전 총장의 국가 리더로서의 부족함은 무엇인가를 생각해 볼 일이다. 중앙일보 대기자 박보균는 반기문의 허망한 좌절을 두고 이렇게 썼다. "구호는 강렬했지만, 언어의 근육을 먼저 단련했어야 했다."(해당기사 클릭) 부지런히 다녔지만, 메시지가 허술했다는 지적에 적극 동의한다.


누가 대통령이 되어야 할까? 저마다 다른 생각을 가졌을 것이다. 나는 국가 수장으로서의 리더십, 정치적 통찰력과 혜안, 위기 대처능력 등을 갖추었지부터 따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식견 있는 오피니언 리더들이 대통령의 자격에 대한 메시지를 던져 주셨으면 좋겠다. 특히 누군가를 판단할 때 '역량'과 '가치'를 구분해야 함을 알려 주셨으면 좋겠다. 내가 바라는 대통령 말고, 국가를 번영으로 이끌 대통령을 뽑아야 하니까. 전자는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일 뿐이고, 후자야말로 모두에게 필요한 대통령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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