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y Story/끼적끼적 일상나눔

따뜻한 맛의 초콜릿이라니!

카잔 2018. 3. 1. 12:50

일단의 외국인들이 웅성거리며 방향을 찾고 있었다. 일행 중 절반 이상은 ‘IOC’라는 영문이 새겨진 가방을 메고 있었다. ‘선수단 일행들인가? 선수들도 있는 걸까?’ 한 명의 눈이 나와 마주쳤다. 그녀는 손에 서울 지도를 들고 있었다. 그녀와 나 사이에 두어 마디가 오갔다. 그들은 지하철 서울역을 찾고 있었다. 시청역으로 가려고 했다.


마침 지하철로 향하던 길이라 내가 앞장 서 걸으며 안내했다. 그녀가 내 곁에 섰다. 뭔가를 묻고 싶은 눈치였거나 고마움을 표현하고 싶었나 보다. (내가 잘 생겨서는 아닐 테고.) 나는 이들의 여정이 궁금했다. “최종 목적지가 어디세요?” 나의 물음에 그녀는 지도에 표시된 지점을 손으로 가리켰다. 경희궁이었다. 시청역에서 걸어갈 거란다.

 

시청역에서 경희궁까지 걷기엔 어중간한 거리였다. 그렇다고 서울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경희궁에서 가까운 역까지 이동하기에는 동선이 복잡했다. 환승역(복잡한 종로 3가역)에서 헤맬 수도 있으니까. 그들의 계획대로 시청역에서 정동길을 따라 걷는 것도 괜찮으리라. 마침 따뜻한 날씨였다. 1호선 서울역을 향해 걸으며 갈등이 일었다. ‘경희궁까지만 안내해 드릴까?’


일반 관광객이 아니라 한국 동계올림픽에 참가한 우리나라의 손님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괜찮으시면 제가 경희궁까지만 안내해 드릴까요? 한 시간 정도 시간을 낼 수 있거든요.” 그녀는 반색했고 자신의 일행들에게 나의 의사를 전했다. 그들의 밝은 웃음을 본 것만으로도 기뻤는데 한 분이 가방을 열어 평창 올림픽 기념배지를 내게 선물했다. 나는 별 일 아니라는 뜻으로 두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Just One hour."

 

딱 한 시간만 할애할 생각이었는데 나는 그들과 5시간 동안 함께 여행했다. 얘기를 듣다보니 도와드릴 수 있는 여지가 많았던 것이다. 그들은 이튿날 새벽 6시까지 공항에 가야 하는 일정이었다. 오후 한나절 동안 서울의 핵심 명소와 쇼핑을 하려는 계획이었는데 동선이나 정보가 그리 효율적이지 못했다. 다른 궁궐에 비해 볼거리가 부족한 경희궁에 가겠다는 것만으로도 느낄 수 있었다.

 

결국 경희궁 입구에서 헤어지려던 계획은 점심식사(코리안 스타일의 음식을 원했다)로 이어졌다. 일행의 대장과 함께 식사를 하면서 그의 인격적인 태도를 느꼈다. 음식을 다 먹고서 매우 훌륭한 음식 선택이었다고 나를 추켜세웠는가 하면(비빔밥과 돼지고기 쌈을 먹었다) 한국의 음식 문화에 대해 이런저런 질문을 했다. 마윈은 “타국의 문화 존중이 친분을 쌓는 지름길”이라 말한 바 있는데 새삼 그 말을 절감했다.

 

일정은 광화문 광장과 경복궁 투어로 이어졌다. 경북궁 앞에서 헤어지려고 대장에게 의사를 전했다. 대장이 헤어질 분위기를 잡으려는 찰나 다른 팀원들이 이런저런 질문을 던져 무산됐다. 대장과 나는 눈빛을 주고받았고 나는 살짝 경북궁까지 함께 하겠다고 말했다.

 

다섯 시간을 함께하는 동안 두 명은 나의 가용 시간을 한 차례씩 물어왔다. “언제까지 함께 할 수 있는지”를 묻는 어조와 태도에서 고마움과 배려가 느껴졌다. 오늘 해야 할 일이 있긴 하지만 몇 시간 정도는 할애할 수 있다고 말하면서 본의 아니게 나의 직업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그들이 하는 일도 들었다. 대화와 상호 배려로 우리는 조금씩 친해졌다. 동양인들(한국인, 중국인, 일본인)끼리의 구분과 서양인들끼리의 구분법에 대한 얘길 나누며 크게 웃기도 했다.

 

오후 5시가 되었다. 그들은 이제 쇼핑을 위해 강남으로 가려 했다. 그들의 숙소는 서울역이었고 강남의 구체적인 장소를 정해 두지도 않았다. 계획을 바꾸는 게 낫겠다는 판단이 들었다. 나는 강남으로 오가는 동선과 종로 지역의 쇼핑 지역에 관한 정보를 제공했다. 그들끼리 잠시 얘길 나누더니 이내 결정했다. 인사동과 명동에서 쇼핑하는 것으로.

 

얼른 헤어져야 한다는 마음과 마지막까지 정성을 다하고 싶은 마음이 부딪칠 때마다 후자의 승리로 이어졌다. 3시에 한 번, 4시에 한 번, 이제는 정말 가야한다고 생각했는데 그때마다 ‘한 시간만 더’라는 생각으로 생각이 바뀌어졌다. ‘이 분들에겐 다시 못 올 수 있는 한국인데…’

 

사실 해야 할 일이 많은 날이었다. 오후 4시에는 동탄에 도착해야 했다. 이튿날 아침 강연을 위해 인근 호텔을 예약해 둔 것이었다. 호텔 투숙으로 컨디션을 조절하겠다는 계획이었다. 게다가 그들을 만났던 때 나는 안과를 향하던 길이었다. 치료 후에는 헤어컷도 하려던 외출이었다. 안과 치료를 미루면서, 호텔에서의 시간을 포기했는데도 피해의식이 없었다. 식사를 마치고 나왔을 때, 한 사람이 나의 호의에 고마움을 표현하며 물었다.

 

“왜 우리를 이리 친절히 도와줘요?”

“글쎄요. 제 천성인 것도 같지만 무엇보다 여러분들은 우리나라의 손님이잖아요. 한국에 대한 좋은 추억만 안고 갔으면 좋겠습니다. 그것뿐이에요.”

 

‘정말 그것뿐일까? 동남아인이라도 마찬가지로 행동했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꺼내어진 답변이었다. 모두가 따뜻하게 웃는 표정으로 내 말을 들어주었다(한 명은 조금 떨어져서 사진을 찍고 있었다). 내 의사를 어설픈 영어로 표현해서인지 아니면 자의식 발동이 내 주특기여서인지 모르겠지만, 대답하는 동안 머릿속에는 호기심이 맴돌았다. ‘이런 마음은 어디에서 나오는 걸까? 이것도 애국심일까?’ 그때 김영하의 단편 <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을까>도 떠올랐다.

 

사실 그 날의 결정과 행동 그리고 일거수일투족이 바로 나였다. 경희궁 입구에서 일행에게 물었다. “경희궁에서는 얼마동안 머물 계획인가요?” (시간 계획이 나와야 동선이나 관람 속도가 정해지니까.) 식당에서는 내 앞에 앉은 일행의 리더(사진 속 남자)에게 물었다. “왜 맨 끝에 앉은 저이는 식사를 안 해요?” (그녀는 배가 전혀 고프지 않으니 마음 쓰지 않다도 된다는 답변을 들었다.) 경복궁 내 경회루 앞에서는 이렇게 물었다. “멤버들에게 컨디션을 물어봐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여기서 경복궁 전체를 모두 둘러볼지 아니면, 중간 길을 돌아 나올지 선택하려고요.”

 

내가 컨디션을 물을 때마다 그들은 “우리는 평창에 다녀온 온 사람들”이라며 자신들의 신체적 건강함을 온 몸으로 표현해 주었다. 우리는 경복궁 주차장에서 헤어지기로 했다. 다음 일정으로 인사동을 결정한 직후였다. 걸어서 10분도 안 걸리는 거리였다. 인사동까지 다시 걸어야 하는데 괜찮냐고 했더니 얼마나 걸리는지 묻지도 않고 “Of course”란다. 우리는 안국동네거리까지 함께 이동했고 인사동 쌈지길 입구에서 헤어졌다. 호텔 프런트에 초콜릿을 선물로 남기고 싶은데 찾아갈 수 있느냐고 물었다. 이번에는 나의 “오브 코스”였다.

 

혼자가 되고 나니 그제야 마음이 분주해졌다. 월요일 오후 해야 할 일들을 모두 미뤄 둔 대가는 컸다. 안과 치료는 받았지만 약국 문이 닫혀서 처방약을 구하지 못했고(이로 인해 꽤 고생했다) 이튿날 강연을 위해 완료했어야 할 ‘출입승인’ 절차를 뒤늦게 처리하느라 2시간 가까이 애를 썼다. 호텔에서 보내려던 편안한 오후 시간은 통째로 날아갔고 오후 10시가 넘어서야 체크인을 했다. 그런데도 불만이 없었다. ‘왜 하필 오늘 같은 날에 만났을까. 한가한 날도 많은데!’ 하는 짧은 아쉬움이 있었을 뿐.

 

나는 지금 낯선 감정에 놀라워하는 중이다.

‘다시는 못 볼 분들인데(연락처조차 모른다)

5시간의 우정으로도 그리워할 수 있구나!’

 

이튿날 그들이 호텔 프런트에 남겨 준 초콜릿을 받아왔다. 커다란 스위스산 초콜릿 두 개였다. 아껴 먹는 즐거움, 줄어드는 아쉬움을 안기는 묘한 초콜릿이다. ‘세상의 맛 중에는 달콤하면서도 따뜻한 맛도 있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