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y Story/끼적끼적 일상나눔

두 번의 인문학 수업 단상

카잔 2018. 3. 13. 11:10

어제는 두 번의 인문학 수업을 진행했습니다. 둘 다 인상 깊은 시간을 보냈네요. 잠시 음미하고 싶을정도로 말이죠. 오전에는 소크라테스 특강이었는데 소수의 인원이었습니다. 지인이 당신의 독서모임에 저를 초대(?)한 거죠. 특강 부탁이라는 말이 더 맞겠네요. 강연료가 아주 적다고 어렵게 부탁하셨지만 저는 흔쾌히 응했습니다. 제 수업에 여러 번 참석했던 그의 진정 어린 태도가 제 마음을 움직였다고 하는 게 맞겠군요.


소크라테스는 제가 좋아하는 주제입니다. 강연도 여러번 진행한 터라 그의 시대, 소크라테스라는 인물, 그의 현재성 등 이야기할 컨텐츠도 다양했죠. 문제는 난이도입니다. 어느 정도까지의 디테일, 정교함, 깊이를 다뤄야 하는지가 고민인 거죠. (사실 일반 강연회에서는 늘 이것이 어려움입니다. 어떤 분들이 오실지 알 수가 없으니까요.) 어제는 만족스러운 분위기였습니다. 저도 진행하는 보람을 느꼈고 참석하신 분들도 공부의 즐거움을 느끼셨던 것 같습니다.


강연 후 식사 자리에서 한 분은 "대학원 수업 하는 느낌"이라고 말하더군요. 저로선 정확한 의미는 모르지만 긍정적인 뉘앙스였습니다. 다른 한 분의 피드백도 인상 깊었네요. 제가 소크라테스에 대해 이야기할 때마다 아주 즐거워하더라는 겁니다. 머릿속에서 뭔가 즐거운 이야기꺼리를 꺼내놓는다는 표현을 쓰셨던 것 같네요. "맞습니다. 사실 제가 소크라테스를 정말 좋아해서 <위대한 인문주의자>라는 책을 쓰는 중인데 첫번째 인물이 소크라테이기도 하거든요."


강사의 즐거움이 청중에게 전달된다는 사실이 고무적이었습니다. 생각해 보면 당연한 말인데 진행하는 저의 입장에서는 '내면의 기쁨이 전달된다'는 사실이 생경하고 신기합니다. '앞으로도 쭈욱 나를 설레고 황홀하게 만든 콘텐츠로만 강연해야지!' 이런 생각을 하게 만든 뒤풀이 자리였습니다. 무엇이 나를 가장 설레게 만드는가? 이 질문 앞에 나를 세워보는 것도 의미있겠다 싶었고요. 인문주의, 리버럴 아츠, 학습조직, 세계문학, 수잔 손택, 니코스 카잔차키스, 카프카 등이 떠올랐네요. 


저녁에는 <연지원의 인문정신> 2주차 수업이 있었죠. 이번 수업의 주안점은 감수성과 전달력 조절이었습니다. 3주차에는 지적인 내용들이 많아 이번 주에는 말랑한 내용을 다루자 싶었던 겁니다. 콘텐츠마다 깊이를 가미하는 것은 당연지사고요. 전달력 조절의 주안점은 유용성에 관한 내용을 대폭 강화하는 생각이었습니다. 이번 주의 주제였던 철학 쓸모있음과 철학적 사고의 일상적 실천거리들을 전하는 데에 초점을 맞췄습니다. 이는 모두 지난 주 수업에 대한 성찰의 결과였죠.


반응들을 보니 지난 주와는 많이 달랐습니다. 조금 과장되고 극적으로 표현하자면 지난 주에는 멘붕, 이번 주는 "어?! 인문학이 이런 거였어?" 였습니다. 조금 어려웠지만 도전적이었다는 지난 주와는 달리 어제는 인문학의 재미와 흥미 그리고 의미도 얻었다는 반응이 많았죠. 한 분은 "인문학과 썸타는 기분"이라고 소감을 말했습니다. 지난 주와 이번 주의 수업에서, 인문학이 그분께 밀당을 시도했나 봅니다. 내 것 같기도 하던 인문학이 멀어졌다가 결국 내 것이 되는 썸이라면 멋진 일이겠죠.


돌아오는 길이 피곤했지만 마음이 즐거운 하루였습니다. 그리고 나는 이곳에다 어제 일을 기록하면서 다시 한 번 기쁨을 음미했습니다. "고맙습니다. 어제와 같은 하루를 선사해 주셔서. 다음 주 수업도 아름답기를." 이런 기도도 드렸네요. 그리고 다시 제 일상으로 돌아갑니다. 진득하게 공부하고 인문 정신을 실천할 제 삶의 현장으로! '진득하게'라는 말은 페북과 일반 강연은 자칫 진득함을 놓치게 만들 수 있어서 스스로를 경계하고자 하는 바람을 담은 표현입니다. 진득한 공부, 이제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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